광우병 교훈 벌써 잊었나…또 진영논리 무한 반복 [유창선의 시시비비]

유창선 시사평론가 2023. 6. 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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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과도한 공포 조장 방식 낡은 것이지만,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우리 편’이란 믿음 줄 수 있어야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시찰단부터 한번 먹어보고 그 전에 대통령 내외부터 먹어보시라."(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민주당은 아직도 광우병 괴담 향수를 잊지 못한 것인가."(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

일본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놓고 여야의 날 선 대치가 격화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이후 녹아버린 원자로 노심을 냉각시키기 위해 사용된 약 130만 톤의 물이 현재 탱크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오는 7월부터 30년간에 걸쳐 오염수를 희석해 방류할 계획임을 밝혔다.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정화 처리한 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로 인한 위험성에 대한 정치적·과학적 논쟁이 뜨겁다.

5월2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모습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이 5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과학적 분석·판단은 뒷전, 정치적 예단만

물론 원전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일차적으로 과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학자나 전문가들의 견해부터 엇갈린다. 정화 처리를 해도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와 세슘 등으로 인해 혈액암을 비롯한 중대한 질병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삼중수소라고 해봐야 그 양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제대로 처리만 하면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견해들이 맞서고 있다. 실제로 2011년의 원전 사고 직후 방사성 물질이 걸러지지 않은 오염수가 그대로 해양으로 방류되어 우려를 낳았지만, 태평양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해양 오염이 심각해졌다는 측정 결과가 나온 것은 없었다.

그래도 야당인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방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총공세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5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을 열었다. 서명운동에 돌입한 민주당은 이어 부산에서 장외집회를 여는 등 주요 권역을 순회하며 장외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다.

민주당의 대정부 비판은 과거 광우병 정국을 떠올릴 정도로 날이 서있다. "국민 불안은 일본 정부와 짝짜꿍이 돼 모든 것을 일본 뜻대로 맞춰주는 윤석열 정부가 키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민주당의 시각이다. 민주당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 문제에 당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력하게 대처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총력 투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주당을 수세로 몰아넣었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김남국 코인' 논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전략적 판단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입장은 정반대다. 민주당에서 윤 대통령 부부가 직접 오염수를 마셔보라는 말까지 나오자 국민의힘은 "악플러인지 국회의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저급한 막말들"(이철규 사무총장)이라고 맞비판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장외집회까지 열어 비과학적 괴담을 유포하며 혹세무민하고 있다"(권성동 의원)며 이명박 정부 시절의 '광우병 괴담'과 똑같은 거짓 선동임을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국민 불안 해소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어

원전 오염수에 대한 논란이 극과 극을 달리니 지켜보는 국민으로서는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위험성 여부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와 판단의 과정을 건너뛴 채 정치적 주장만 앞서가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오염수 방류는 인체에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인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양극단의 주장만 부각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 정치적 진영논리에 따른 예단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광우병을 둘러싼 논쟁이 있은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우리 정치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있었을 때 '뇌 송송 구멍 탁' '미친 소 너나 먹어' 등의 구호가 광화문광장을 뒤덮었다. "주저앉는 소는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다" "한국인의 94%가 광우병 걸릴 위험이 있다"등 사실과 다른 보도가 공영방송을 통해 나왔다. 이를 믿은 시민과 학생들은 광화문에 모여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세계 1위 국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사실상 소멸되면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데 따른 결과다. 이제는 마트에 가도 식당에 가도 미국산 소고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거나 먹곤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당장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했던 학자·언론인·유명인 가운데서 자신의 판단 오류를 인정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를 기억한다면 구체적인 근거 없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포심만 조장하는 '괴담'들에 대한 경계심은 분명 필요하다. 그래서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민주당식 대응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과도한 정치적 대응은 팩트가 아니라 감정으로 국민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 정부에 있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을 상대하기 이전에 국민을 상대로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입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현장 시찰단 명단조차도 처음엔 단장을 제외하고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파동도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임에도 미국과의 협상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데 따른 국민 감정의 악화가 큰 영향을 주었다. 이번에도 정부가 국민에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의 방류가 시작된다면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고 나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도 우리 정부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노무라 데쓰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얼마 전 우리 정부 시찰단의 활동을 거론하며 "수입제한 해제도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과 외교채널로 논의되거나 수산물 수입 재개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지만, 정부가 과연 수입 재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남는다. 야당의 공포 조장 방식도 낡은 것임은 분명하지만,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우리 편'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과 대책 마련은 국민 건강, 나아가 국익과 관련된 사안이다. 그렇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야 할 일이다. 이런 사안마저도 진영에 따라 입장이 갈려 정치 대결로만 치닫는 모습은 구태의연하다. 원전 오염수 방류의 위험 여부에 대한 판단도 진영에 따라 이렇게 갈라져야 하는 일인가.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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