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엔데믹 시기에 다시 본 ‘로그 인 벨지움’

현화영 2023. 6. 3. 14: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감독 유태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이 하향되면서, 사실상 엔데믹으로 전환되었다. 지난 3년 팬데믹 상황에서 영화도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제작 영화, 개봉 영화, 관객 모두 크게 줄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와 노력이 진행 중이다. 관련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팬데믹 시기에 만들어져 개봉했던 영화 ‘로그 인 벨지움’(감독 유태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의 몇 가지 의의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 코로나19 팬데믹을 담아낸 영화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땐 그랬지’라는 회상에 빠져들었다. 불과 몇 년 전의 이야기인데, 어느새 낯설어지다니 꽤 묘한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첫 번째 의의다.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역사적 현장을 담아낸 영화다. 앞으로도 ‘로그 인 벨지움’은 다시 볼 때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영화 초반 자막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유태오 배우가 해외 드라마 촬영을 위해 벨기에 앤트워프에 머물다가 급작스럽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맞았던 당시를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이 중단되면서, 동료 배우들과 스탭들은 영국, 독일 등 집으로 돌아갔지만, 유태오 배우는 호텔에 고립되고 말았다. 비행편은 무더기로 취소되고, 직장과 학교는 폐쇄되었다. 외출마저 하루 몇 시간으로 제한되면서, 불안과 외로움 속에 홀로 지내며,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감독 유태오)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언제까지 고립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며 이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애초에 개봉을 목표로 여러 사람이 함께 기획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 시기 벨기에 앤트워프의 호텔 안팎의 모습이 담겼고, 그곳에 고립된 배우의 이야기가 담겼다. 

- 홀로 만들어 낸 기록영화이자 극영화

이 영화의 두 번째 의의는 만들어진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 전반부는 벨기에, 후반부는 한국에서 촬영되었는데, 벨기에 장면은 모두 유태오 배우 홀로 촬영했다. 그러니까 연출, 연기, 촬영 등을 모두 혼자 해낸 것이다. 스마트폰, 삼각대, 셀카봉, 그리고 아이디어로 꽤 다양한 시도도 해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기록영화는 아니다. 유태오 배우의 내레이션이 들리고, 텅 빈 거리와 텅 빈 마트 진열대가 보이는 식이 아니다. 

요리 과정, 먹방 ASMR 등을 비롯해 중간중간 유태오 배우와 또 다른 자아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도 보여준다. 독백이 아닌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배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1인 2역 대화 장면은 태블릿 pc, 그림자, 편집 등을 활용해 완성됐다. 나중에 두 사람은 음식을 해주고, 맛있게 먹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유태오 배우는 벨기에 장면들에서 1인 2역을 연기했고, 유태오 감독은 연출과 촬영을 모두 해냈다. 

‘로그 인 벨지움’의 대부분은 기록영화지만, 1인 2역 장면은 어느 정도 극영화이기도 하다. 본인을 역이다 보니, 허구의 연기라고 하기 어렵지만, 가상의 혹은 상상의 본인이 등장해 대화하는 설정은 소위 말하는 초현실주의 영화에도 가깝다. 시간과 공간, 꿈과 현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설정이 꽤 매력적이다. 몇몇 쇼트는 미국 초기 실험영화 마야 데렌의 영화를 소환하기도 한다. 

영화 ‘로그 인 벨지움’(감독 유태오)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종반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모습이 펼쳐진다. 이제훈, 천우희 배우 등도 출연하는데, ‘이런 장면이 들어가면 좋겠어’라고 이 영화에 대해 아이디어를 말하면, 곧장 그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로그 인 벨지움’은 기존의 틀로 규정하긴 어려운 영화다. 지극히 사적인 영화라서, 관찰 예능을 닮은 것도 같다. 그러나 기록영화와 극영화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형식 덕분에 실험적인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든다. 따라 해 보고 싶은 장면도 좀 있다. 

아직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이런 영화도 있었다. 유럽에 홀로 고립된 배우가 만들어 낸 영화 ‘로그 인 벨지움’을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도 궁금하다. 

자신의 자리에서 팬데믹 상황을 지나온 모두를 응원한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