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압수수색이라 쓰고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배준우 기자 입력 2023. 6. 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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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팬데믹] ⑤ 처벌 VS 치료 : 해묵은 논쟁


압수‧수색‧검증 영장(이하 압수수색 영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마 커다란 파란색 상자를 들고 주요 건물을 드나드는 수사관들의 모습이 떠오르실 겁니다.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 전의 피의자 단계이지만 주변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의자는 상당한 압박감과 굴욕감을 느낄 것이고, 이미 사회적으로는 유죄 또는 유죄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입니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의 경우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1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회복 속도가 빠르고 교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벌에 방점을 둬야 할까요, 치료에 방점을 둬야 할까요.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수사기관의 답변이었습니다.

 

"압수영장 집행하러 왔습니다"


지난달 24일,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수사계 형사들이 사무실을 급히 뛰쳐나왔습니다. 이들의 목적지는 경기도의 한 주택가였습니다. 합성 대마와 케타민을 투약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10대 마약 투약자와 관련된 건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SBS 취재진은 이들과 함께 현장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경찰은 장소를 특정한 뒤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고지했습니다. 경찰은 투약자가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압수수색 장소, 대상 등 범위에 대해 일일이 부모 동의를 구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액상 대마로 의심되는 물품 등이 압수됐습니다. 압수수색 종료 절차 후에는 해당 투약자와 투약자의 부모를 동행시켜 투약 혐의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 사건 피의자들을 다루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추천해 주는 병원 가보자"


피의자 조사가 끝났으니 조서 열람 후 도장 찍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일반적인 절차이죠. 하지만 경찰은 이 투약자가 10대라는 점을 고려해 조사 종료 후 상담 절차까지 진행했습니다. 경찰이 이 투약자를 치료해 줄 수는 없으니, 병원이나 상담 센터 쪽을 연결해 주는 게 치료 후 상담의 주된 목적입니다. 마약 투약 사실을 적발하고 입증한 뒤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마약 중독 증상 = 질병'이기 때문에 처벌 단계에서 더 나아가 치료가 필요합니다. 처벌한다고 해서 중독 증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약 투약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은 뒤 마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10대 청소년들도 많겠지만, 다시 손을 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끊기 위한 노력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승현 경위(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수사계)는 투약자와 상담 과정에서 먼저 신체 이상 반응 유무를 체크한 뒤 투약자의 언어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투약자는 거울 앞에 비친 자신에게 두 손으로 빌며 마약을 끊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마약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조 경위는 "그런데도 다시 손을 대게 되는 건 마약의 중독성이 그만큼 심하기 때문"이라며 "아저씨는 너 잡아 가지고 구속시키려는 마음이 '1'도 없다. 아저씨가 추천해 주는 병원에 가보자"라고 계속 설득했습니다.

 

마약 중독자는 어디서 재발하는가

"투약자들끼리 모였을 때 재발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조 경위가 이토록 마약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 내원을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 끊겠다는 다짐만으로도 이미 큰 진척이 있는 것이지만 주변인과 환경의 유혹 앞에 수없이 흔들리는 투약자들을 조 경위는 많이 봐 왔습니다. 복수의 중독치료전문의들에 따르면, 투약자들이 단약을 결심하더라도 투약자들끼리 모여 투약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는 뇌를 투약 당시 상황으로 되돌리며 상상을 통해 투약 당시만큼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는 효과로 이어진다는 게 의료진들의 설명입니다.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이를 흔히 '말뽕'이라는 말로 바꿔 표현하기도 합니다. 말을 통해 흥분시킨다는 겁니다.

천영훈 마약중독치료전문병원(인천 참사랑 병원) 원장은 "마약 중독자끼리 모이는 순간 재발한다. 그게 장난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 원장은 "그래서 중독자들은 관리가 힘들다"라며 "몰려다니면서 상선을 서로 소개해준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숨어버린 10대를 찾아서 : 시간과의 싸움


앞서 조승현 경위를 비롯한 경찰 수사팀이 사무실을 급히 뛰쳐나와 서둘렀던 데에는 결국 이유가 있습니다. 해당 10대 투약자가 지난 5월 8일부터 잠적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추적망을 피해 휴대전화도 꺼놨습니다. 2주 넘게 잠적해 버린 투약자. 경찰이 가정했던 최악의 상황은 그 사이에 이뤄졌을지도 모를 추가 투약이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집행은 투약자의 범죄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추가 투약을 막고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기 위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숨어버린 10대를 찾아내고 교화·치료가 가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배준우 기자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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