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지는 왜 무용지물이 됐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입력 2023. 6. 3. 14:01 수정 2023. 6. 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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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지적 후 무용지물
성역 총책임 조심태의 설계·시공이 더 적합
성에서 가장 취약한 문은 문루, 옹성, 좌우 적대의 시스템 방어를 갖췄다.

 

장안문은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설물이다. 따라서 좌우에 적대를, 위에는 문루를, 앞에는 옹성을 배치해 입체적으로 방어한다. 옹성 문짝도 철판을 입혀 화공에 대비했다. 철은 원래 불에 약하므로 철엽은 방화보다 내화 개념이다. 시간을 지체시켜 나무 문짝에 불이 붙기 전에 불을 끄느냐의 문제다. 당시에도 이 점을 알고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오성지다. 옹성 문 위에 설치한 것으로 “모양이 구유처럼 생겼고 5개의 구멍을 뚫었다. 적이 불을 질러 문을 불사르게 되면 이 구멍으로 물을 흘려 넣는다”고 설명한다.

성역이 진행되던 시기에 정약용은 좌천돼 지방으로 가던 길에 화성을 지나게 된다. 이때 장안문 오성지를 보고 잘못을 지적한다. “오성지라는 것은 물을 퍼 내려서 적이 성문을 태우려 할 때 이를 막는 것이다. 그 구멍을 곧게 뚫어 바로 문짝 위에 닿게 해야 쓸모가 있다. 그런데 도면만 보고 구멍을 가로로 뚫었으니 이른바 그림책을 뒤져 천리마를 찾는 격이다고 한탄했다”이다. 한마디로 구멍을 옆면에 뚫었으니 물이 문짝에 직접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때부터 오성지는 무용지물이 됐다.

왜 아래 면에 뚫지 않았을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의 하나다. 먼저 구조를 알아보자. 의궤에 “홍예의 개판 위에는 회3물을 깔고 다시 여러 장의 벽돌을 쌓았다. 그 위에 오성지를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문 위에 나무 널빤지를 설치하고, 그 위에 회삼물과 벽돌을 깐 뒤 오성지를 놓아야 한다. 정약용 지적의 대상은 사실상 성역 총책임자 감동당상 조심태다. 필자가 조심태에 대해 변명을 하겠다.

오성지는 옹성 홍예문 위에 설치했다. (왼쪽부터) 남옹성, 북옹성.

■ 조심태를 위한 변명: 조심태는 구멍을 옆면에 뚫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 조심태는 정약용의 설계대로 공사했다. 설계의 바탕인 중국 무비지 도면에는 오성지를 외벽 면을 일치시키고 물이 나오는 구명은 옆면에 뚫려 있다. 조심태도 무비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공사를 했다. 정약용도 “성 쌓는 사람이 도면만 보고 구멍을 가로로 뚫어 놓았다”고 도면대로 한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약용의 말은 도면만 보고 그대로 하지 말고 목적에 맞게 조정해 가며 공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중국 무비지의 오성지를 보아도 화성 오성지와 똑같다.

둘째, 아래 면에 뚫을 수 없는 여건이었다. 문짝 바로 위로 물이 쏟아지게 하려면 나무 널판 위에 오성지를 놓아야 한다. 이 경우 개판은 무게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문짝과 오성지 구멍을 일치시키려면 문짝을 2척 뒤로 물려야 한다. 이 경우 문짝의 최대 취약부인 회전축이 적에게 노출되고 옹성 두께도 늘려야 할 판이다. 조심태는 이런 점을 감안해 무게가 개판에 전달되지 않도록 홍예석 위에 오성지를 설치한 것이다.

셋째, 옆면으로 구멍을 뚫어도 오성지 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정록에 “불을 질러 문을 불사르게 되면 구멍으로 물을 흘려 넣게 된다”에서 “흘려 넣게 된다”의 원문 ‘하수(下水)’에 대한 해석이다. 문짝으로 직접 물이 떨어져도, 문짝 앞으로 떨어져도 모두 ‘하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불 끄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른 근거도 있다. 정약용은 “수많은 적이 성문에 풀을 던져 언덕처럼 많이 쌓였을 때 불을 붙여 문을 태우면”이라고 발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불화살보다 성문 앞에 인화물울 던져 놓고 불을 지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봤다는 의미다. 문짝 앞쪽으로 물이 흘러 떨어져도 풀에 붙은 불은 끌 수 있어 오성지 구멍을 꼭 문 바로 위에 오도록 할 필요는 없다.

정리하면 조심태는 중국 문헌과 정약용의 설계를 잘 지켰고 옹성과 문짝과의 위치를 고려하고, 구조 안전도 감안해 오성지를 설치했다. 당연히 기능에도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반대로 필자는 정약용에 대해서도 변명하겠다.

■ 정약용을 위한 변명: 정약용의 지적대로 아래 면에 구멍을 뚫는 것도 가능하다.

필자는 오성지를 홍예석과 개판, 두 곳에 반반씩 걸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60cm는 홍예석 위에, 60cm는 개판 위에 놓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설치하면 정약용이 원했던 대로 오성지 물이 문짝으로 직접 쏟아지고 개판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성지를 홍예석에 60cm, 개판 위에 90cm 얹으면 구조상 안전하다.

■ 정약용과 조심태: 본래 오성지에 대한 고찰

두 사람을 비교한 것은 국내 유일의 화성 오성지가 정약용의 지적에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심태의 오성지는 원래의 제도에 맞게 정상적으로 설치됐음을 밝혔다. 조심태의 설계와 시공이 정약용의 지적보다 근본적으로 오성지의 목적에 부합한다. 조심태의 오성지는 흐르는 양이 균등하기 때문이다. 물은 한곳에 가두면 윗면은 평형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수평이다. 옆면에 뚫린 구멍 아래까지 물을 채워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위에 아무 곳에나 물을 부어도 5개 구멍에선 균등한 양의 물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아래로 뚫린 정약용의 오성지는 어떻게 물을 부어도 5개 구멍으로 물이 균등하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넘쳐 흐르는’ 상태와 ‘쏟아져 내리는’ 상태의 차이다.

지금까지 오성지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정약용의 지적’ 때문이 아니다. ‘정약용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했던 우리 때문이다. 정약용의 지적에서 허구를 살펴봤다. 오늘은 오성지를 되살려 낸 날이고 조심태와 정조가 누명을 벗은 날이다. 오히려 1970년대에 물통도 없는 기괴한 모습으로 복원한 지금의 우리가 죄인이다. 글·사진=이강웅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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