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현대차도 제칠라...‘베트남의 삼성’이 아메리칸 드림 꿈 꿔보지만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3. 6. 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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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패스트의 전기차 세단 VF8. <빈패스트 홈페이지>
[신짜오 베트남-248]베트남 최대 기업 빈그룹에게 전기차는 단순한 사업 이상입니다. 빈그룹은 ‘베트남의 삼성’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죠. 건설, 병원, 레저, 학교, 마트 분야로 보폭을 넓히며 베트남 사람 삶 속으로 깊숙하게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빈그룹은 글로벌 기업을 나아가기 위해 몇 년전 두가지 선택을 합니다. 제조업 회사가 되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만드는 ‘빈스마트’와 자동차를 만드는 ‘빈패스트’란 기업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 알짜 사업이었던 마트(빈마트) 분야를 매각하는 강수까지 둡니다. 내수 기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으로 진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이후 야심차게 시작한 스마트폰 사업도 접어버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스마트폰 사업은 사실 태생 직후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을 스마트폰 생산 기지로 삼아 전세계에서 만드는 스마트폰 절반을 베트남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죠.

삼성이 하는 분야라서 베트남 기업이 하지 말아야 된다는 룰은 없지만, 굳이 베트남 1위기업이 자국과 시너지를 내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구도를 형성하는게 맞느냐는 지적은 있었습니다. 이같은 우려에 ‘이미 포화시장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먹을 게 없다’는 분석이 겹치며 빈그룹은 스마트폰 사업에서 조기 철수하고 맙니다.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들였던 비용을 생각하면 굉장히 신속한 결단이었습니다.

빈그룹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지기로 한건 또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업과 비슷한 시기 개시한 자동차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서였죠. 빈그룹이 베트남을 대표하는 1위기업인 것은 맞지만 동시에 두개의 제조업을 끌고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빈그룹이 핵심 역량을 기울이기로 결정한 자동차 분야, 특히 전기차 분야는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는 사업입니다.

제조업 육성은 빈그룹을 넘어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도 사활을 걸어야 하는 분야였습니다. 베트남이 ‘글로벌 하청 공장’에서 한단계 도약하려면 ‘메이드 인 베트남’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들고나갈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산업은 이미 선진국이 선점해 중진국 입장에서 치고나갈 동력을 찾기 힘듭니다. 빈그룹과 베트남은 이제 막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기회를 봤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관련 분야 육성에 나선 것입니다.

지금까지 빈패스트가 이룬 성과를 보면 어느 정도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베트남이 무슨 전기차를’이라 생각하는 독자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글로벌 시가총액만 보자면 빈패스트는 이미 현대차에 근접한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물론 미국 증시과 한국 증시 차이가 주는 착시 현상은 감안해야 합니다)

빈패스트는 스팩(SPAC)합병을 통한 우회 방식으로 나스닥 상장이 임박한 상황입니다. 최근 뉴욕증시 상장사인 ‘블랙스페이드애퀴지션(Black Spade Acquisition)과 합병 계약을 체결한 것이죠. 양사의 합병 기업가치는 약 270억달러(35조8000억원), 이중 빈패스트의 지분가치는 230억달러로 평가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상장 직후 이같은 기업가치를 유지한다면 빈패스트 시총은 5월 26일 기준 현대차 시총(43조 4697억원)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수준입니다. 물론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기아차그룹 시총을 다 합치면 상당한 격차가 나지만 현대차만 떼어놓고 보면 빈패스트와 기업가치가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빈패스트가 걸어온 길은 상당히 도전적입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15만대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항구도시 하이퐁에는 연산 30만대 규모 공장을 확보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강자 테슬라도 각종 이슈에 휘말리는 상황입니다. 신생업체 빈패스트가 처한 현실은 더 녹록지 않습니다.

얼마전 빈패스트는 미국으로 선적한 차량 999대를 전량 리콜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미국에 넘어간 세단 ’VF8‘ 대시보드 디스플레이에 소프트웨어 오류가 발생한 것입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리콜도 리콜이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사태로 인해 밝혀진 ’VF8‘ 판매소식입니다. 미국으로 넘어간 999대 중 700대 이상이 여전히 빈패스트 재고로 잡혀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포의 ’고향 마케팅‘을 통해 초기인도분이 빠르게 팔릴지 여부가 관심이었지만, 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기차를 사면서 ’애국 마케팅‘이 먹혀들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외에도 빈패스트가 갈 길엔 많은 험로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미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전기차를 낙점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빈패스트가 주력하는 미국에서 진검승부를 위해 칼을 갈고 있습니다. 여기서 빈패스트가 살아남는다면 베트남의 ‘제조업 드림’은 실현가능한 시나리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패배해 시장에서 사라진다면 당분간 베트남은 글로벌에 들고 나갈 새로운 제조업 먹거리를 찾기 위해 상당기간 절치부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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