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산만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다고요!”[씬나는경제]

이명철 입력 2023. 6. 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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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룩업’ 대재앙 앞둔 미국 사회 풍자한 블랙코미디
북한 공습 우려 경계경보에도 지하철 타고 출근한 한국인
경기 침체 신호 곳곳에서…위기 경계한 선제 움직임 필요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화 속 장면 곳곳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담겨있습니다. 씬(Scene)을 통해 보이는 경제·금융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혜성 충돌을 알리기 위해 ‘미국판 아침마당’에 출연한 민디 박사와 케이트. 진행자는 “전처가 살고 있는 뉴저지에도 영향이 갈까요?”라는 유머 소재로 치부한다. (사진=넷플릭스)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어요. 망원경으로 직접 봤다고요. 에베레스트만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는데 그게 좋은 일이겠냐고!”

미국 최고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자 결국 폭발합니다. 당장 며칠 후에는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 그런데 왜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는 걸까요?

“지구 멸망보다 회사 주가가 더 중요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혜성 충돌이라는 대재앙을 앞두고 벌어지는 ‘대환장 파티’를 다뤘습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글로벌 금융 위기 상황을 그린 ‘빅쇼트’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을 다룬 ‘바이스’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천문학 박사 과정 수료자 케이트 디비어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처음 혜성을 발견하지만 이 혜성이 지구를 향하는 중이며 6개월 14일 후 충돌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담당 교수 민디와 함께 나사(NASA)와 백악관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대응을 촉구합니다.

이때부터 영화 등장인물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힙니다. 대통령인 제이니 올린(메릴 스트립)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선 지지율 하락을 걱정해 혜성의 존재 자체를 숨깁니다. 이후 본인의 불륜이 발각되고 선거에서 참패하자 공개적으로 혜성을 저지하겠다고 분연히(?) 일어섭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정치 전략은 99%대의 지지율이라는 성과로 나타나죠.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영화 ‘아마겟돈’을 연상시키는 우주선과 핵폭탄이 대대적으로 출발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에 지구로 귀환하고 맙니다. 그는 바로 글로벌기업 대표인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런스)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IT기업 대표들. 혜성 충돌을 막겠다고 나서지만 저마다 꿍꿍이는 따로 있다. (사진=넷플릭스)
피터는 혜성에 32조달러 어치(약 4경원) 광물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혜성을 잘게 쪼개 지구에 떨어지게 한 뒤 광물 독점권을 갖겠다는 욕심을 품습니다. 피터에게 거액의 선거 자금을 받는 대통령은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릅니다.

하지만 결국 피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피터와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고위층 2000명은 우주선을 타고 도망가버립니다. 마지막까지 혜성을 막기 위해 분투하던 주인공들은 차분히 일상을 지내다 최후를 맞이합니다.

‘돈룩업’은 대재앙은 안중에도 없이 저마다 계획을 펼치는 와중에 사회 갈등은 커지고 복장이 터지는 혼잡한 상황을 그리면서 블랙코미디로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왜 생기는 걸까요? 결국 ‘그래도 설마 혜성이 지구랑 부딪히겠어?’라는 안이한 인식 때문이겠죠.

지난달 31일 이른 아침, 서울에서는 갑자기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계경보 문자가 발송돼 큰 혼란이 났습니다. 북한에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는데 이를 두고 급히 경계경보를 발령했던 것입니다. 이후 ‘오발령이었다’고 수정하는 촌극이 빚어졌죠.

일부 시민들은 실제 지하주차장으로 대피하고 재난 키트를 준비하며 기민하게 움직였지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을 이어갔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자주 일어나는 터라 이번에도 별일 아니겠지란 생각을 한 것이겠죠. ‘공습 경보가 울려도 출근은 해야 하는’ 한국 직장인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경제 위기라는 경계경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영화를 보고 최근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그럼 경제 위기라는 경계경보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신호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2886달러로 전년대비 7% 가량 줄면서 2020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올해 1분기 경제 성장률은 0.3%로 0%대에 머물렀죠.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진입한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지구 종말 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혼란한 전세계. 주인공 일행들은 최후를 대비하고 쇼핑에 나설 뿐이다. (사진=넷플릭스)
미국은 좀처럼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잡히지 않고 있어 긴축 정책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고금리에 따른 경제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간 갈등 등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있죠.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과 이에 따른 원자재가격 폭둥, 반도체 업황 사이클의 하향 등으로 수출입 불균형은 커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난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료 출신 인사는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라고 하는데 각종 지표들을 보면 ‘상저하저’일 가능성이 높다”며 “현 정권에서 이러한 시나리오는 부담일 텐데 그에 맞춰 정책을 어떻게 짤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혜성 충돌’이 저마다의 키워드였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도 ‘경제 위기’를 각자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공고히 하고 지지기반을 다지거나 정쟁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불안감을 퍼트려 이익을 얻는 집단도 있겠죠.

사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경제 위기가 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계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넓게는 정부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으며 어떤 정책을 짜는지, 좁게는 우리의 금융 생활이나 자산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영화 평점 4.5점, 경제 평점 3.5점(5점 만점)]

영화 ‘돈룩업’ 포스터. (이미지=넷플릭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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