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없어도 좋아...싱그러운 녹음 가득한 신비한 우화정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3. 6. 3. 10:33
케이블카 타고 내장산 전망대 연자대 오르니 서래봉 한눈에/짙은 녹음 가득한 우화정 돌다리 걸으면 한편의 영화/내장산생태탐방원 솔티숲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고 쌍화차 한잔하면 건강한 기운 몸에 가득
돌다리를 건너는 연인들. 마침 날이 맑고 물은 투명해 데칼코마니로 담긴다. 단풍은 없지만 단풍처럼 불타는 붉은색 난간과 기둥 위에 파란 지붕을 올린 운치 있는 우화정. 그리고 초록 단풍나무까지 거울처럼 담는 신비하고 작은 호수까지. 마치 영화 속 예쁜 수채화 같으니 가을이 아니어도 좋다.
◆초록의 싱그러움 가득한 내장산
내장산은 만추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온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인 단풍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니 말이다. 요즘 가면 뭐 볼 것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나선 전북 정읍시 내장산 여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순간, 편견이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산자락 위에 장엄하게 우뚝 선 기암괴석 서래봉이라니. 여기에 뭉게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과 보일 듯 말듯 수줍은 숲속의 작은 호수까지 더해지는 풍경들. 오르지 못하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에 심장이 두근대며 케이블카처럼 마음도 한껏 날아오른다.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전망대까지는 300m. 짙은 녹음이 터널을 이룬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 전망대인 연자대에 오르자 탄성이 저절로 쏟아진다. 내장산의 암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에 정신이 아찔하다. 옛 조상들이 추령에서 떠오르는 달을 맞이했던 월영봉(427m), 삐죽삐죽 솟은 바위들이 농기구 ‘써레’를 닮은 서래봉(624m), 부처가 출현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불출봉(622m), 날씨가 맑은 날에는 서해를 볼 수 있는 망해봉(679m), 동진강의 근원이 되는 물이 솟아나는 연지봉(670m)까지. 그리고 서래봉 아래 산 중턱 숲속에 아담하게 숨어 있는 벽련암, 원적암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가을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야 보이는 망원경엔 ‘서래봉 정상을 보면 부처님이 배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형상으로 보인다’는 안내문이 적혔다. 요즘 휴대전화 렌즈가 달 표면을 촬영할 정도로 성능이 워낙 좋다 보니 망원경이 필요 있으랴. 손에 잡을 듯 가까워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기기묘묘한 바위절벽이 커다란 하나의 암봉을 형성하며 1㎞가량 이어지는 서래봉 아래에는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펼쳐져 가을에는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 것 같은 자태를 선보인다.
벽련암에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벽련암 석축대를 쌓을 때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이 이를 받아 쌓아 올렸단다. 원래 ‘백련암(白蓮菴)’이었는데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벽련암(壁蓮菴)’ 이름으로 바꿀 것을 권하고 서액을 써서 걸었지만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서래봉과 벽련암이 불타는 단풍과 어우러지는 가을에는 또 얼마나 예쁠까. 만추에 이곳을 찾는 이유를 충분히 알겠다. 신선봉(763m)이 주봉인 내장산은 봉우리마다 독특한 기암으로 이뤄져 ‘호남의 금강’으로 불린다. 산 안에 감춰진 것이 무궁무진해 ‘안 내(內)’ ‘감출 장(藏)’을 써 내장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 편의 영화 속 풍경 우화정을 거닐다
전망대에서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또 하나의 신비한 풍경이 기다린다. 내장산 계곡에 고인 아주 작은 호수에 연꽃처럼 떠 있는 우화정이다. 짙은 초록숲에 파란 물감을 꾹 찍어 누른 듯한 예쁜 지붕은 케이블카로 내려가자마자 달려가게 만든다. 우화정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앞에서 서면 전망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동화 같은 풍경을 만난다. 돌다리를 걷는 연인과 하늘, 단풍나무를 거울처럼 그대로 투영해서다. 소문난 인생샷 명소답게 호수 주변을 당단풍, 수양버들, 두릅나무, 산벚, 개나리, 산수유, 복자기 등이 완벽하게 둘러싸고 있어 대충 찍어도 화보를 얻는다.
인기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주인공들이 물수제비를 뜨며 내기를 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정자에 서면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오른다는 전설이 깃들어 우화정(羽化亭)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늘빛과 물빛이 구분이 가지 않으니 돌다리에 서면 마치 하늘로 솟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승군과 왜적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1482년 무렵 내장산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만 현재 산성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우화정을 나서 내장사 가는 길에는 65년 전에 심어진 유명한 단풍터널이 400m가량 이어진다. 불교의 ‘108 번뇌’를 의미하는 108개의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뤄 가을뿐 아니라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한눈에도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비틀어지며 자란 단풍나무는 커다란 몸통을 자랑한다. 길 양옆에서 가지를 뻗어 서로 껴안으며 인사하듯 완벽한 터널을 이룬 풍경이 장관이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을 위한 아름다운 숲 가꾸기 국민운동이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했다.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년) 영은조사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약 50여동의 전각을 세워 ‘영은사’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하지만 내장사로 들어서면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작은 가건물이 서 있다. 내장사는 정유재란, 한국전쟁에 화재로 전소됐고 2012년 원인 모를 화재에 이어 2021년엔 방화로 대웅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오른쪽 극락전이 뒤로 우뚝 솟은 서래봉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빼어나다. 8∼9월에는 상사화도 만난다. 2∼3월에 돋은 잎이 6월에 시든 뒤에야 긴 꽃대가 올라오며 주황색 꽃이 뭉쳐서 핀다. 꽃과 잎이 절대 만나지 못해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애절한 사랑, 슬픈 추억이란 꽃말을 지녔다.
◆어슬렁 걸으며 힐링하는 솔티숲
내장사에서 원적골자연관찰로가 시작된다. 코스가 완만해 노약자와 어린이도 걷기 좋은 길이다. 내장사∼원적암∼사랑의다리∼벽련암∼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약 3.9㎞ 코스는 약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내장사를 중심으로 두금선폭포, 용굴을 거쳐 내려오는 금선계곡과 이연지봉, 망해봉, 불출봉에서 시작한 원적계곡 등 두 개의 계곡이 있다. 원적계곡은 굴곡이 뱀의 허리와 비슷하고 예전에 뱀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먹뱀이골’로 불렸다. 물줄기는 약 3.2㎞ 이어지며 1급수여서 가재, 버들치, 수서곤충 등 다양한 생물이 살아간다. 금선계곡과는 달리 지형이 완만하고 암벽이 없어 옛날에는 정읍으로 넘어가는 통로로도 이용됐다.
내장산생태탐방원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내장산을 좀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환경성질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나누리캠프가 인기. 1박2일과 2박3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참가비용은 무료다. 가족과 함께 숲길을 걸으며 힐링하고 산야초밥상으로 건강한 식단을 꾸리는 방법도 배운다. 또 숲밧줄놀이, 명랑운동회, 해먹 쉼 명상 등으로 꾸며진다. 내장호·단풍생태공원 트레킹, 나만의 도마 만들기 체험,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심신안정을 돕는 승마체험, 정서적 교감과 마음 치유에 좋은 향기테라피, 모험과 협동심을 기르는 총댕이마을 서바이벌 등도 즐길 수 있다.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호응을 얻고 있다. 솔티숲 옛길에서 진행되는 ‘어슬렁어슬렁 산책’으로 쉼이 있는 피크닉 코스로 꾸며진다. 솔티숲으로 들어서자 대나무숲길이 여행자를 반기며 운치 있는 소나무숲길로 이어진다. 생태놀이터에 도착하니 인근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솔티회관에서 출발해 내장생태탐방마루길∼내장산조각공원∼편백나무길∼초빈(진노랑상사화 군락)∼연터∼솔티숲으로 이어지는 1.5㎞의 40분 코스부터 2.5㎞, 1시간20분 코스까지 다양하다.
내장산조각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게 펼쳐진 내장저수지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천천히 걸으며 피톤치드로 샤워하고 숲속에 앉아 정읍에서 인기 있는 구수한 쌍화차를 마시면 다시 삶을 힘차게 살아갈 건강한 기운을 얻는다.
정읍=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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