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지도에 '성당' '교회당' 북한의 종교 인식

문정실 작가 2023. 6. 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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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지난 시간 북한의 불교와 사찰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다른 종교들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북한 TV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죠. 오늘 자세히 알아봅니다. 함께하실 두 분입니다. 어서 오세요.

◀ 차미연 앵커 ▶

북한의 종교를 이야기할 때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내지는 자유가 제한된다.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처음에 한국에 오셨을 때 어떠셨어요?

◀ 강미진 ▶

저 처음에 왔을 때 이제 밤거리를 한번 걸어봤거든요. 전기를 왜 이렇게 쓸데없이 길거리에도 이렇게 환하게 비치냐 이러면서 마을 주변을 도는데 한 골목 지났을까 말았을까 하는데 십자가가 이제 높은 곳에 하나 딱 있는 거예요. 옆 골목을 들어가서 또 한 돌기 돌다 보니까 또 그런 게 또 보이는 거예요. 북한에는 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해서 주민들이 움직이는데 여기는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이 돌아가나 그런 느낌 초기에는 되게 혼란스러웠어요.

◀ 김필국 앵커 ▶

얼마 전 미국 국무부는 2022 종교자유 보고서를 공개하고 북한의 종교자유 침해가 심각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 변진흥 ▶

북한의 제헌헌법의 14조에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돼 있습니다. 국민은 신앙 및 종교 의식 거행의 자유를 가진다. 그런데 이 내용은 종교 관련 조항이 상당히 변화를 해요.

◀ 차미연 앵커 ▶

종교가 사회 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북한에 계실 때 종교 때문에 처형을 당하거나 이런 사람들 본 적 있으세요?

◀ 강미진 ▶

저희가 배웠을 때는 종교는 마약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종교는 사람을 허황한 말로 이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그런 걸 가지고 이제 사상이 좀 먹는다 의식을 흐리게 한다. 라는 거를 배웠었고 북한 내에 종교를 가져서 처형됐다. 이런 사람은 본 적은 없어요. 2000년대 초에 중국에 갔다 온 여성이 있었거든요. 중국에 갔다 와서 조사를 받잖아요. 뭐 이거 첫 번째로 물어본대요. 교회에 갔었냐. 그럼 모르고 교회에 갔었다고 그러면 엄청 두드려 맞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노동 단련대를 딱 1개월 갔다 왔거든요. 직접적으로 본 처벌은 그거예요. 그리고 소문으로는 무수히 많이 들었죠. 죽였다고 하더라 뭐 어쨌다고 하더라 이런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본 적은 없습니다.

◀ 김필국 앵커 ▶

강미진씨 옛날 말씀해 주셨는데 요즘 많이 달라졌다면서요.

◀ 강미진 ▶

그러니까 중학생들이 배우는 지도에 교회당을 따로 표시를 해요. 예전에는 평양의 장충성당이 있거나 봉수교회 칠골 교회에 있는 거 알 만한 사람들은 암암리에 다 알려졌지만 애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걸 지도에 실었다는 것은 북한이 종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들어가는 거지 않을까. 그런 변화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 변진흥 ▶

저도 장충성당을 가봤지만 그 대동강 대동교를 건너가가지고 쭉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꼬부라지거든요. 거기가 장충 2동인가 그래요. 그래서 장충성당이거든요. 동네 이름을 따가지고 장충성당인데 그래서 저도 깜짝 보고 놀랐어요. 장충성당 표시가 그렇게 돼 있고 봉수교에 표시가 있더라고요.

◀ 김필국 앵커 ▶

지도에서 보신 것처럼 봉수교회와 장충 성당 등 북한에도 여러 교회와 성당이 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보시는 곳은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의 모습입니다. 북한 TV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인데요. 신도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 김필국 앵커 ▶

2005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선종했을 당시 평양의 장충성당에선 추모 미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가정예배처소들에서 애도하는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 김필국 앵커 ▶

영상에서 가정 예배 처소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어떤 곳입니까?

◀ 변진흥 ▶

가정 예배의 처소는 사실은 이제 개신교회에 해당되는 용어고요. 그래서 교회 건물은 다 없어졌지만 가정에서 할 수도 있는거 아니냐 해가지고 가정 예배 처소는 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양성화 되기 시작했는데 그게 80년대 90년대까지는 사실은 안드러났었죠. 근데 이제 재미교포들 가운데 목사님들이 평양을 가시게 되면은 가정 처소를 몇 군데 가서 같이 동참해서 예배를 하신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제 최재영 목사님이라고 이분은 뭐 여러 군데에 가정 예배를 가서 보시고 그랬어요.

◀ 차미연 앵커 ▶

그러면 강미진씨 같은 경우에는 그런 가정 예배 처소라든지 교회나 성당에 가보신 적 있으셨어요? 북한에 있을 때.

◀ 강미진 ▶

종교 자체를 북한이 공식적으로 주민들한테 선전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험을 한 적이 있냐면 탈북 직전에 사실은 점집이라고 알고 찾아갔었거든요. 탈북하고 싶은데 어느 날 어느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나 이게 질문인데 이렇게 대놓고 얘기하면 신고하면 제가 잡힐 수 있잖아요. 있는 돈 긁어 모아가지고 장사 가려고 하는데 내 일생을 건 장사다. 어느 날 어느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나 제가 이렇게 물어봤어요. "언니 떠나는 날 하느님한테 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꼭 하고 꼭 하고 가"라고 이러는 거예요. 근데 그때는 기도도 전혀 몰랐고 이러는데 정말 탈북을 하려고 그러니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세 가지를 소원을 빌었었고 북한에는 동네 곳곳마다에 점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게 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 차미연 앵커 ▶

하느님 믿는 점쟁이 이야기이군요.

◀ 김필국 앵커 ▶

가정 예배소 보다 점집이 더 많은 것 같아요.

◀ 김필국 앵커 ▶

북한 주민들은 종교에 대해서 거부감이 좀 있는 편인가요? 어떤가요?

◀ 변진흥 ▶

거부감이 있는 것은 당연하죠. 왜냐하면 그렇게 교육을 받았었으니까. 이제 미신이나 마약이나 이러한 그 용어로 세뇌됐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기대하는 거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처럼 북한 사회에서도 일반적인 그런 종교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우리의 바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 종교 정책의 변화가 여러 가지 형태로 정치적인 그러한 차원에서 있다 손 치더라도 일반적인 신도들의 이러한 의식 변화로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 김필국 앵커 ▶

북한 TV에서 종교라는 단어를 만나기 어려운데요. 그런데 천도교는 다릅니다.

◀ 차미연 앵커 ▶

2021년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주요 인사들 중에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소개됩니다.

"리명철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수철 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지부 대표가 주석단에 초대됐습니다."

◀ 김필국 앵커 ▶

북한에서 천도교는 일제강점기 광복을 위해 쓴 민족 종교로 인정받습니다. 천도교 청우당은 이런 배경을 토대로 생겨난거죠.

◀ 차미연 앵커 ▶

2016년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장례식이 사회장으로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동지의 존함을 모신 화환이 묘에 진정됐습니다."

◀ 김필국 앵커 ▶

천도교가 이렇게 다른 종교에 비해서 특별 대우를 받는 듯한 이런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 변진흥 ▶

천도교가 일제강점기 때 실질적으로 민족 독립투쟁의 선봉에 서셨고 이제 해방 당시에 북한에서 천도교는 남쪽보다 더 큰 규모였습니다. 북쪽에서 해방 직후에 노동당 만들기 전에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이라고도 하고 그 다음에 개신교 쪽에서 민주당을 만들고 뭐 이렇게 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든 게 청우당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개신교 쪽의 경우에는 노동당으로 흡수가 돼 버리게 되고 거기에 반대하는 목사님들은 다 남쪽으로 오셨죠. 그러나 이제 청우당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도 우리도 다당제다 청우당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조선종교인협의회를 만들고 조선종교인협의회에는 조선기독교도연맹 그다음에 불교도연맹, 천도교, 청우당, 조선가톨릭교협회까지 같이 들어가 있는 거죠.

◀ 김필국 앵커 ▶

종교 단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겁니까?

◀ 변진흥 ▶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기독교연맹이나 불교도연맹이나 이거는명칭은 남아 있는데 그것이 남북관계가 발전을 하고 북한이 나름대로 공산권이 이렇게 와해되는 걸 보면서 자기네들도 국제사회와 이렇게 연결되어야 되겠다. 해서 우리도 종교가 있다고 하는 것을 표현을 하는 게 기존에 있었던 그러한 상부 구조로서의 종교 단체들을 갖다가 양성화 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성당도 그다음에 교회도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차미연 앵커 ▶

강미진 씨 북한에서는 단군릉도 있잖아요.

◀ 강미진 ▶

고난의 행군 시기 그때 90년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엄청 크거든요. 그리고 단군에 대해서 교과서에도 구체적으로 다 나오고 있고 단군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단군 제사를 지내는 거 테레비로 이제 방영을 하거든요.

"조선민족 된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 가득히 안겨주며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고 있는 민족의 시조릉, 단군릉."

◀ 김필국 앵커 ▶

약간 민족 종교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것 같네요.

◀ 변진흥 ▶

2002년도에 개천절 행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단군릉 앞에서 했습니다. 단순히 단군을 일시적으로 해서 하는 어떤 정통성도 정통성이지만 실질적으로 항일무장투쟁 그다음에 민족 종교의 근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연결시키는 중요한 도구로 볼 수가 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말씀 들어보니까 예전에는 이 남북한의 종교 교류도 꽤 다각적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런 기회가 올지 잘 모르겠지만 다시 이런 교류의 장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이할 수 있을까요?

◀ 강미진 ▶

일단 분단이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가지고 있잖아요. 반세기가 넘어야 되는 그런 기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니네가 틀렸어 이게 아니라 다르다는 걸 서로가 인정을 해가면서 한민족이라는 그런 부분에서 좀 서로가 양보를 해 주는 면에서는 좀 양보를 하고 서로가 합쳐지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섞어 가면 어느 순간에는 정말 우리도 몰랐던 그런 일들이 좀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종교의 그런 역할은 상당히 좀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변진흥 ▶

우리는 남과 북의 샴쌍둥이와 마찬가지로 공동 운명체인 거예요. 같이 생존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민족적인 공존 평화적인 공존 화해 이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남북 종교 교류도 역시 민족 화해와 평화적인 공존을 위한 그러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우리가 접근을 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차미연 앵커 ▶

북한 사회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종교는 더 그런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 김필국 앵커 ▶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자비와 사랑은 소중한 덕목이죠.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다시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오늘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90058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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