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쉬운 글에 힘이 있다…‘글쓰기 천리길’의 시작

한겨레 2023. 6. 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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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한겨레S] 손소영의 짧은 글의 힘ㅣ시작이 반
중압감 피해 꾸준히 쓰기…딱 맞는 표현 하나 찾아보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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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송작가이고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언뜻 보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사물의 이치를 밝혀내는 데에도, 쉽고 간단하게 단순화하는 게 모든 것의 근본이자 원칙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고 간단함’은 모든 글의 기본입니다. 글이 꼭 어렵고 거창해야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글에 오히려 힘이 있으니까요. 짧고 쉬운 글이 좋은 글입니다. 읽기 쉬운 글이 쓰기도 쉽고 쓰기 쉬운 글이 읽기도 쉽습니다. 복잡한 건 머릿속에 남지 않고 읽기 힘든 글은 마음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죠. 글쓰기의 기본은 결국 같습니다.

“방송작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방송작가들끼리 하는 말입니다. 뛰어난 천재성이 없어도 꾸준히 필요한 스킬과 규칙을 익히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훌륭한 방송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건데요, 글쓰기가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가 되는 분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스킬과 규칙을 전하고 싶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글쓰기의 기쁨과 힐링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기도 하죠.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관계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힘이 되고 의욕을 샘솟게 해준다는 걸요.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연결되기 위해서,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아닐까요?

주술 호응이 기본… 욕심 버려야

그런데 말보다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요구와 욕구는 높아지는 반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막막함을 넘어선 공포를 느끼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가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무리 뛰어난 작가도 한번에 완벽한 글을 써내는 일은 드뭅니다.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중압감과 긴장을 내려놓는 겁니다.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고치면서 나의 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 요령과 테크닉을 저와 함께 하나씩 연습하면 됩니다. 제가 글쓰기 강의를 하고 많은 수강생들의 글을 첨삭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은 글처럼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것도 없다는 겁니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 배운다고 하죠. 꾸준히 열심히 계속 쓰다 보면 분명히 좋아지고 달라집니다. 단어 몇개로, 아주 짧은 문장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고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때로는 단어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우선 어깨에서 힘을 쫙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해볼까요?

일단 ‘짧은 글’이란 한자어로 하면 ‘단문’, 즉 한 문장의 길이가 짧은 글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어에서부터 마침표까지의 길이가 짧은 문장이에요. 문장들이 쉼표 여러개로 연결돼 있다는 건 단문이 아니라 장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짧은 글을 좋아하고, 짧은 글에 힘이 있어서, 짧은 글을 쓴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쉼표가 있는 부분을 하나씩 문장으로 끊어서 세 문장으로 나누면 짧은 글로 재구성할 수 있겠죠.(“나는 짧은 글을 좋아한다. 짧은 글엔 힘이 있다. 짧은 글을 쓰는 이유다.”)

문장이 길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한 문장 안에 너무 많은 걸 넣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한번에 하나씩만 담으세요. 한 문장 안에는 주어 하나, 술어 하나, 이게 기본입니다. 짧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계속 줄이고 쳐내고 다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문장의 길이가 짧아지면 주어와 술어의 거리가 가까워지니까 주술 호응이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술 호응이 문장의 기본이기 때문에 이것만 잘돼도 문장이 바로 서게 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문장은 기본적으로 주어로 시작해야 합니다.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부분은 주어가 생략돼 있어서일 경우가 많아요. 주어를 생략할 때는 딱 한가지밖에 없죠. 앞의 문장과 주어가 동일할 경우. 수강생 중에서 주로 업무 소통을 메일로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다는 불만을 자주 듣는 분이 있었는데, 주어와 조사 사용에 문제가 있어서였습니다. 조사 중에서도 특히 ‘은·는/이·가’를 제대로 사용하면 문장을 단단히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은·는’을 쓰는지, ‘이·가’를 쓰는지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어감이나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것도 염두에 두고 적절하게 사용하면 글맛이 무척 달라집니다.

어휘력이 아닌 늘어놓기

문장이 짧아지려면, 주어와 술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주어와 술어의 거리가 멀어지는 이유는 주어를 수식하는 형용사와, 술어를 수식하는 부사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용사나 부사 같은 수식어를 최대한 줄이는 게 짧은 글을 쓸 때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게 풍부한 어휘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딱 맞는 단어나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것저것 나열하거나 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단어를 선택하지 못해서 비슷비슷한 것들을 여러개 늘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짧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단어를 적재적소에 잘 골라서 정확하게 쓰는 것, 적확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짧은 글 쓰기는 많은 수식어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 딱 하나를 골라내는 것, 딱 맞는 단어 하나만 선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짧고 쉽게’가 대세인 듯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죠. 의외로 이 ‘짧고 쉽게’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뭔가를 설명할 때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잘 알고 있어야 ‘짧고 쉽게’ 말할 수 있죠. 정확히 잘 알지 못하니까 길고 장황하고 애매하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게 되거든요. 당연하고 기본적인 얘기지만 사전을 많이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막상 확인해보면 그 뜻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의도했던 것과 미묘하게 그 느낌이 달리 전달된 때가 있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방송작가

물리학을 전공한 언론학 석사. 여러 방송사에서 예능부터 다큐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짧은 글의 힘’, ‘웹콘텐츠 제작’ 등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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