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원 늘어난다” 입시 업계는 벌써 ‘꿈틀’
“대입제도 개편도 함께 검토해야”
[주간경향]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검토에 나선 가운데 교육계에선 가뜩이나 심각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망대로 최대 500명가량 정원이 확대될 경우 의대 5~6곳이 신설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학과 등 인재 양성이 필요한 이공계 학과들의 학생 이탈은 물론 사교육 수요 증가, 공교육 붕괴 가속화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게 될 전망이다.
의대 입시의 경우 최근 4년간 정시 합격생 5명 중 1명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 나왔다. 의대 쏠림이 심화되면 지역 간, 계층 간 교육격차 역시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계에선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격차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입 정시 비중 축소, 수능평가 방식 변경 등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KY 자퇴생 1.5~1.7배 늘어, 의대 수요 추정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2020년 기준 의사 평균 연봉은 2억3070만원이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2020년 근로자 평균 연봉은 3828만원이다. 의사의 수입이 일반 노동자 대비 6배 이상 높다. 한번 의사가 되면 개원을 하든 월급을 받고 일하든 평생 직업이 보장된다. 높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 안정된 처우 등은 의사를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만들었다.
의대로 학생들이 몰리면서 입시 경쟁도 의대를 중심으로 개편된 지 오래다. 사교육 시장에선 ‘영어 유치원-사립 초등학교-특목중·고-의대’ 순으로 이어지는 ‘의대 코스’가 프로그램처럼 운영된다. 모 학원에서는 특정 고등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의대 입시 심화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강남 대치동 학원가와 입시 열기가 높은 일부 지방 학원가에서는 최근 초등학생을 위한 의대 입시반이 생겼다. 과학고 등 영재고에서는 학생 이탈을 막고자 의대 진학 시 불이익을 주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의대 입시 열기는 꺾이지 않는다. 최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경우 입학 직후 휴학을 하거나 재학 중 의대 시험을 치러 합격한 후 자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교육계는 추정하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공시자료를 보면 일명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에서 재학 중 학업을 포기하는 ‘중도탈락률’이 최근 5년 새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연세대는 2018년 444명이던 중도탈락 학생이 지난해 700명으로 1.57배 늘었다. 주목할 점은 중도탈락 사유 중 ‘자퇴’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미복학’으로 인한 탈락은 48명에서 28명으로, ‘학사경고’에 따른 탈락은 104명에서 75명으로 줄었지만, 자퇴는 260명에서 560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고려대와 서울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려대는 같은 기간 중도탈락 학생이 518명에서 866명으로 1.77배, 서울대는 234명에서 405명으로 1.73배씩 각각 늘었다. 카이스트는 최근 6년간 591명의 학생이 중도탈락했는데, 이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73명(46.2%)이 의·치학 계열 대학으로 진학한 것으로 학교 측은 파악했다.
입학 직후 휴학하는 서울대 신입생 숫자 역시 크게 늘었다. 다른 사립대가 1학년 1학기 휴학을 금지하는 데 반해 서울대는 신입생도 곧장 휴학이 가능하다. 서울대가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집계 자료를 보면 2018년 65명이던 신입생 휴학생은 지난해 225명으로 3.5배가량 늘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휴학생 중 의대 진입이 어려운 문과 비중도 상당히 되는 점을 감안하면 학점관리나 기타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휴학이 느는 것이지, 의대 진학이 이유라고만 볼 순 없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의 한 사립대학 교수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학업을 포기할 요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도탈락이나 휴학생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목표로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반도체학과 등 이공계 첨단학과조차 여러 번 신입생 추가모집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오히려 최상위권 학생들의 분산보다 집중 효과가 클 것”이라며 “의대 준비를 안 하던 학생까지 가세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의대 정시 5명 중 1명이 ‘강남 3구’ 출신
의대 쏠림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대입제도 개편을 통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사교육 없이 의대에 입학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됐다. 상대적으로 사교육에 더 큰 비용을 들일 수 있는 계층에서 의대 입학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2019~2022년 전국 의대 정시 입학생 출신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수도권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출신 중에서도 강남·서초·송파의 강남 3구 학생 비중은 전체 정시 입학생의 22%로, 5명 중 1명꼴을 차지했다. 수능 비중이 높은 정시의 경우 통상 재수생과 사교육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최근 2~3년 사이 의대 입시에 특화된 전문 사교육이 등장하면서 강남의 특정 학원이 의대 입시를 아예 석권하다시피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자체 집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39개 의대 정시 입시 합격생(941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470명(49.9%)이 이 학원에서 나왔다. 한 사교육 업계 관계자는 “누가 어느 의대에 갈지 이미 이 학원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장승진 사걱세 정책위원은 “의대 입시가 이미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변질된 현실을 고려해 정시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학생들 간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입시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며 “강남권의 ‘원정교육’ 대상이 된 지역인재 선발제도의 개선을 비롯해 수능평가 제도 개편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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