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강경대응이 ‘적극행정’일까?[이슈분석]
당정, 야간 및 불법 전력 단체의 집회 제한 추진
법원 “경찰 배치 등 위법한 공무집행” 판례 주목
[주간경향]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이 최근 집회·시위에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집회·시위를 제한 및 진압하기 위한 여러 방안도 잇따라 내놓았다. 이들이 꺼낸 ‘대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집회·시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내용이다. 야간 및 출퇴근 시간대나,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시위 등을 제한하는 것이다. 집회의 신고 단계에서부터 금지·제한 통고를 통해 걸러내겠다는 얘기다. 당정은 지난 5월 24일 이런 내용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위배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이런 방안들은 국회의 법안 심사나, 가처분 신청에 따른 법원의 심리 등을 통해 견제할 수는 있다.
다른 하나는 사후 대응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5월 25일 집회·시위 진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적극 면책하겠다고 밝혔다. ‘적극행정’이란 표현까지 썼다. 특진 등 포상도 거론했다. ‘과해도 좋으니 적극 막으라’는 신호를 일선에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조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간 자취를 감췄던 최루액의 일종인 ‘캡사이신’이 지난 5월 31일 민주노총 집회 현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실제 사용되지 않았지만 ‘엄포’만으로도 집회의 위축 효과는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과잉 대처 등 위법한 공무집행을 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법원이 민·형사 사건에서 경찰 대응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시간이 다소 걸린다. 집회의 자유를 침해당한 시민들의 즉각적인 피해 복구가 불가능한 것이다.
대법원 앞 문화제 강제해산, 정당한가
강경대응 기조는 현장에서 곧바로 실현됐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야간 문화제를 개최하려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법원 앞에 모인 이유는 기업의 불법파견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대법원에는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등의 불법파견 등 사건이 수년째 계류돼 있다. 문화제에 참석한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지회장의 말이다. “아사히글라스는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등 3개 사건이 대법원에 있다. 대법원에만 2~5년째다. 총 9년째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한국지엠의 불법파견 사건도 3년째 대법원에 걸려 있다. 심지어 지난해 7월 최종 선고가 난 포스코의 불법파견 사건은 전체 소송 기간이 총 11년이었다. 그사이에 정년퇴직해 피해를 복구 받지 못한 노동자도 나왔다. 판결이 늦어질수록 기업은 이익을 보고 노동자는 피해를 보게 된다.”
이 문화제는 지난 3년 동안 간헐적으로 20여 차례 진행됐다. 그간 경찰의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그런데 경찰은 이날 문화제를 집회로 규정했다. 경찰관 수백 명을 투입해 봉쇄에 나섰다. 문화제가 시작되자 경고방송을 했고 집회 참가자들이 이에 불응하자 강제로 해산시켰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인 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에 따라 대법원 주변 100m 이내에서 집회가 금지된다는 점을 해산의 근거로 들었다. 차헌호 지회장은 그러나 “예전에는 경찰이 문화제 공간에 질서유지선을 쳐서 진행을 보호해줬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는 인도에 철제 펜스를 설치하고 경찰관들이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라며 “대통령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불법이 됐다”고 했다.
집회 주최 측은 이번 행사를 집회로 보더라도 경찰의 해산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미신고 집회라고 해서 경찰이 무조건 해산명령을 내리거나 이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순 없다는 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면 미신고 집회도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구현한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헌재는 집회의 신고제를 두고 “경찰 등이 집회의 순조로운 개최와 공공의 안전 도모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협력의무로서의 신고”라고 규정한다.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집회를 사전에 신고하는 것은 일종의 호의다. 그런데 경찰은 신고를 받는 게 권리인 줄로 착각한다”라며 “부당한 해산조치는 외려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회 주최 측은 집시법 제11조가 대법원 주변 100m 이내라도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한다는 점도 거론한다.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법관이나 재판관의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이다. 당시 문화제 참가자는 50명 안팎에 불과해 규모가 크게 불어날 가능성은 적었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문화제의 주요 주제와 발언은 불법파견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취지와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등 일반적인 내용”이라며 “구체적 사건과 법관을 특정해 어떤 요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시법상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문화제가 대법관 등이 퇴근했을 수 있는 일과시간 이후에야 열렸다는 점도 강제해산이 위법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요소이다.
경찰은 이날 문화제에서 무대로 사용할 차량도 견인했다. 이 과정에서 차량 앞에 있던 참가자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집회 주최 측은 정부와 윤희근 경찰청장, 서초경찰서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법적 근거 없이 문화제를 봉쇄하고 강제로 해산시킴으로써 집회·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는 취지다. 주최 측은 오는 6월 9일 대법원 앞에서 다시 문화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집회 중인 시민을 곤봉으로 때려 다치게 해 ‘폭력 진압’ 논란도 일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월 31일 전남 광양제철소 포스코복지센터 앞 도로에서 7m 높이의 구조물에 올라 농성을 하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체포했다. 김 사무처장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하자 경찰은 곤봉으로 김 사무처장을 수차례 가격했다. 김 사무처장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김 사무처장의 주변에는 난간 등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다. 진압 과정에서 자칫 그가 추락할 위험성도 상존했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경찰의 강경 기류가 장기화된다면 경찰 내부에서도 강경진압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지고 이를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가 생겨 진압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라며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지는 사회가 되는 게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위법한 공무집행에 대항한 행위는 처벌 못 해
경찰의 집회 대응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 위법하다는 내용의 법원 판결은 수차례 나온 적이 있다. 이 가운데 경찰의 집회장소 침범에 따른 실질적인 집회 제약과 심리적인 위축감 등을 두루 지적한 판결은 현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3년 4월 서울 중구청은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 추모를 위한 분향소를 철거했다. 경찰은 이곳에서의 집회를 제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은 그해 7월 집회 통제를 규탄하는 취지의 집회를 진행하려 했다. 경찰은 역시 제한 통고를 내렸다. 민변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집회를 전면 허용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장소에 경찰관을 배치하고 플라스틱 폴리스라인(질서유지선)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폭 2.88m 가운데 0.9m 공간에서만 집회가 가능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 결정으로 인해 경찰은 그나마 1.5m 공간을 내줬다. 류하경 변호사 등은 정당방위를 행사한다며 집회장소에서 경찰관을 밀어내고 폴리스라인을 치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류 변호사 등 6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된 후 기소됐다.
법원은 그러나 무죄를 선고했다. 1심 법원은 경찰관과 폴리스라인 배치는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집회를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해야 할 질서유지선이 사실상 집회의 제한 통고를 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폴리스라인으로 인해 현수막이 가려져 의사표현이 방해받은 점, 경찰관과 폴리스라인이 집회 참가자들을 포위하는 형태를 이룬 점 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집회 참가자들이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경찰관들이 이들을 주시하고 채증 활동을 벌여 마치 삼엄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라며 “상당한 심리적 위축을 일으킬 수 있고, 집회에 동조하는 일반 시민의 자유로운 집회 참여를 제한할 우려도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류 변호사 등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이런 공무집행이 위법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항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2심 재판부는 특히 “집회의 자유를 현저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위법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했다. 류 변호사 등이 폴리스라인을 제거하려고 한 행위를 두고선 “집회의 자유 침해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2019년 1월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류 변호사 등은 정부와 경찰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 일부 승소했다.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야간집회로 민주주의 실천 가능”
정부와 여당이 추진키로 한 집회 제한 방안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0년 6월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집시법 제10조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한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야간에 ‘옥외집회’를 금지한 부분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0년 6월 30일을 법 개정 시한으로 제시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헌재는 또 2014년 3월 야간에 ‘시위’를 금지한 부분을 두고 한정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해가 진 이후부터 자정까지’의 시위를 금지하면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여당의 집시법 개정 시도에 반발한다. 공권력감시대응팀은 지난 5월 25일 성명을 내고 “집시법 제10조가 13년 동안 개정되지 않은 것은 개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야간 집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2016년 10월~2017년 3월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를 예로 들었다.
출퇴근 시간대나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사전에 제한하는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법에서 금지한 허가제처럼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또 경찰이 금지·제한 통고를 하더라도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 허용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의 방안이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정부와 여당의 공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집회는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시키고 집회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갈라침으로써 민주노총 등을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대포’ 부활하나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5월 19일 “물대포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를 못 막는다”고 말했다. 살수차 운용을 재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지난 5월 31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살수차 재도입 여부를 두고 “차차 시간을 두고 말씀드리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살수차는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이후 운용을 중단했다. 경찰은 2020년 1월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해 ‘소요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살수차를 쓸 수 있도록 제한했다. 기존에는 ‘불법 집회·시위’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를 쏘려면 이 규정을 바꿔야 한다.
헌재는 2020년 4월 백남기 농민을 향한 ‘직사살수’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헌재는 “물줄기가 일직선 형태가 되도록 시위대에 직접 발사하는 것이므로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며 “직사살수를 통해 억제할 필요성이 있는 생명·신체의 위해 또는 재산·공공시설의 위험 자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최대 20대까지 운용하던 살수차를 2021년 모두 폐차됐다. 경찰청 훈령인 ‘살수차 운용지침’ 또한 2021년 7월 폐기됐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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