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경 여행기’ 이나영 “‘공감하세요’란 말도 숙제···그냥 멍 때리며 봐주세요”[인터뷰]
“이 드라마로 ‘공감하세요’라는 말도 숙제처럼 느껴져요. 자기 안에 어떤 감정이 들든, 멍 때리며 쉽게 봤으면 좋겠어요.”
배우 이나영이 <로맨스는 별책부록> 이후 4년 만에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의 국어 교사 박하경으로 복귀했다.
박하경은 복도를 지나가다 교실에서 춤을 추는 학생들을 발견한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쭈뼛쭈뼛 따라해본다. 태어나서 춤이라고는 한번도 춰본 적 없는 몸짓이지만 그녀는 열심이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그 순간 멀리서 박수 소리가 들린다. 학생들이 쳐다보고 있었던 것. 딱 사라져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박하경 여행기>는 이처럼 일상의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걷고 먹고 멍때리는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기’다.
<박하경 여행기>는 맛집을 찾고, 유명 관광지에 가서 인증샷을 남기는 여행기와는 결이 다르다. 해남·속초·군산 등 각각 다른 도시로의 당일치기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이야기를 25분짜리 8회에 담는다.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드라마에서 ‘단발머리’ 박하경을 연기한 이나영을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나영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을 “모든 게 완벽했다”고 기억했다. “구성 자체가 엄청 독특했고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이 있어서 처음 보자마자 너무 하고 싶었어요. 고민없이 시작했어요.” 남편인 배우 원빈도 “잘 맞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드라마는 주인공의 서사, 주변인물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기승전결’ 형식은 아니다. 주인공이 각 도시에서 묵언수행 중인 사람, 예술가의 길을 걷지만 성공하지 못한 옛 제자, ‘요즘 것들’을 비난하는 어르신, 가는 길목마다 우연히 만나는 한 남자, 2인분 전골을 먹기 위해 합석하면서 만난 ‘최애 작가’ 등과 만나면서 느끼는 감정을 느슨하게 담아낸다.
“박하경의 히스토리나 캐릭터가 정해진 게 없었어요. ‘국어 선생님’ 설정 하나였는데, 캐릭터를 가둬놓는 경계가 없다보니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에 집중했어요. 그러다보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찍은 장면이 많아요. 예를 들어 (이종필) 감독님이 제가 촬영 중간에 손을 휘두르면서 갑자기 모기를 잡았다는데 저는 기억도 안 나요. 이게 바로 이 작품이 주는 편안함이 아닐까 싶어요.”
각 회차마다 찾아간 도시가 다르고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 흐름도 다르다. 배우로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이나영은 “굳이 연기 톤을 맞추지는 않았고, ‘뭘 하지 말자’ ‘덜어내자’라고만 감독님과 이야기했다”면서 “진짜 현장감으로 촬영을 많이 했다. 틀에 짜여지지 않게 현장에 많이 내던져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박하경 여행기>는 ‘이나영 여행기’로 바꿔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평소 저를 가까이서 보는 사람들도 ‘평상시 말투를 아는데 진짜 이나영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극중 박하경은 즉흥 여행을 한다. 목적지 없이 발걸음 닿는대로 간다. 실제 이나영은 여행을 가면 최소 2박 이상은 꼭 하고 계획을 짜서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다. “여행을 가면 (박하경보다) 계획적이에요. 최소 2~3박은 하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찍고 나니 이렇게(무계획적으로)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뭘 안 해도 되는 여유가 엄청 괜찮더라고요. 제주도도 당일치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숙제를 덜어내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하경은 5회에서 대전을 여행하던 중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시도한다. ‘평생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로 여긴 춤. 박하경은 ‘둠칫 둠칫’ 트로트에 몸을 맡기며 팔과 다리를 움직여본다.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한 맛집에선 혼자 온 낯선 사람 구영숙(길해연)과 합석을 하기도 한다. 이나영은 박하경처럼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일로 ‘복싱’을 꼽았다. “복싱 처음 배우면 너무 줄넘기만 많이 시킨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봤어요.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1998년 데뷔 이후 예능이나 토크 프로그램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던 이나영은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슈취타’에 출연했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 말 많이 했을 때 집에 가서 후회하는 편이라 엄두를 못 냈다가 ‘사람’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여행 다큐도 나온다고 하길래 출연했다”며 “공감이 가거나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처음 만났는데도 서로 어색함 없이 이야기가 잘 됐다”고 전했다.
이나영에게도 ‘여백’의 연기 기회를 준 <박하경 여행기>. “잠수교에서 멍 때리기 대회를 했다던데 정말 놀랐어요. 대회를 할 정도면 얼마나 멍 때리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건가요. 저는 그 대회 나가면 1등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하경 여행기>도 자기 안에 어떤 감정이 들든, 생각나면 하나 보고, 또 하나 보고, 강요되지 않는 드라마였으면 좋겠어요.”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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