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에 봉인된 귀물…수백년 ‘공덕’ 쌓은 마음을 돌아보다

한겨레 2023. 6. 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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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
‘만월의 빛 정토의 빛’
불상 안에 귀한 물건 넣는 ‘복장’…복장유물 공개
중생 구제·나라 평안 소원담은 10m ‘발원문’도
충남 청양 장곡사의 금동약사여래좌상. 1346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약합을 받쳐 든 손이 인상적이다. 신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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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조계사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은 다른 박물관들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흐르는 곳이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저편에 보이는 보살상은 이 박물관이 모시는 원불(일생 동안 섬기는 부처)이다. 조선 후기 목조보살상으로, 박물관을 돕는 이들이 뜻을 모아 최근 머리에 쓰는 관(보관)과 받침(대좌)까지 갖춘 깨끗한 모습으로 보존처리를 마쳤다. 아홉 마리 용이 정교하게 조각된 보개천장(불상을 보호하는 덮개 형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천장) 아래 빛나는 보살상 앞에 서면, 이곳에서 만나는 불교 문화재가 오늘날에도 신자들의 예경의 대상이 되는 성보들임을 자연히 깨닫게 된다.

올해 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막이 열린 ‘만월의 빛 정토의 빛’(오는 6월25일까지)은 사찰 두곳의 불상과 복장 유물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다. 불상을 만든 뒤 사리나 불경 등의 귀한 물건을 몸 안에 넣고 봉인하는 것을 ‘복장’이라고 한다. 발원문과 불경, 향주머니, 비단 조각 등 평소라면 가볍게 보고 지나쳤을지 모를 크고 작은 유물들도 수백년 동안 불상이 품고 있던 것임을 알고 나면 그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장곡사 불상 조성에 1078명 참여

불상과 복장 유물을 한자리에서 직접 보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봉인을 다시 여는 일도 드문데다, 복장 의식은 20세기까지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므로 일반인들은 어깨너머로라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전시실에 반듯하게 펼쳐진 유물들을 돌아보고 불상을 마주하는 때는, 그 상이 단순한 조각품이 아닌 살아 있는 부처로 탄생하던 순간으로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셈이다. 게다가 전시에 나온 두 불상 모두 복장물까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이어서 전시에서 만나는 그 의미가 더욱 깊다.

1부 ‘만월의 빛’은 약사부처가 머문다는 동쪽 ‘만월세계’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지난해 여름 국보로 승격된 장곡사(충남 청양군)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복장 유물을 공개했다. 전시실 가운데에 길게 펼쳐진 붉은 비단에는 ‘귀한 불상을 만든 공덕이 중생 구제와 나라의 평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발원문이 담겼다. <직지심체요절>을 쓴 것으로 잘 알려진 고려의 고승 백운화상이 썼다.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나온 발원문. 조성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적혔는데 몇몇은 비단 조각을 덧대고 꿰매 돋보이게 했다. 신지은 제공

발원문 말미에는 불상을 지을 때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소원을 적었다. 공을 보탠 이들을 행여나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행간과 뒷면에도 촘촘히 써넣었다. 몇몇의 이름은 색이 다른 비단 조각에 써서 꿰매기도 했는데, 마치 ‘포스트잇’을 고려시대에 재현한 듯하다. 그렇게 기록된 이들이 모두 1078명, 발원문 전체 길이는 무려 1058㎝다. 레드카펫처럼 길게 펼쳐진 발원문의 끝을 따라가면 그 시선 끝에 부처가 있다.

고려 후기인 1346년에 만들어진 약사여래상은 길고 갸름한 눈썹 아래 깊이 내리뜬 눈매와 둥근 약합(약상자)을 받쳐 든 고운 손이 인상적이다. 약을 든 모습은 ‘약사’라는 이름 그대로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임을 나타낸다. 전시에서는 불상 뒤 벽에 둥근 조명을 비춰 후광을 연출했다. 불상이 있는 전시실의 중심 공간은 유물과 조명, 설명만 있다. 그 홀가분함이 관람객의 눈을 편안하게 부처의 모습에 머물게 한다.

길이 10m가 넘는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 유물 발원문.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개운사 불상엔 ‘충선왕 귀환’ 기원

복장은 불상을 처음 만들 때뿐만 아니라 차후에 보강되기도 한다. 2부 ‘정토의 빛’에 전시된 서울 개운사 아미타불좌상 앞에 펼쳐진 발원문은 불상이 완성된 지 50여년 뒤 금칠을 고칠 때 넣은 것이다. 승려 천정과 혜흥이 적은 10가지 소원이 담겼다. 원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충선왕이 어서 귀국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덕 닦은 보람을, 인연 맺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누리길 바란다’는 내용도 있다. 내 덕을 내게 귀한 사람에게만 열어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텐데, 그 반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악연도 있을 터. 이 넓고 두터운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촘촘함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개운사 아미타불은 넓은 어깨부터 든든한 무릎까지 묵직한 위엄이 서려 있지만, 입가에는 선선한 미소가 살짝 감돌고 있다. 저 아미타불이 있다는 서쪽 극락정토는 살면서 좋아했던 이들만 추려 놓은 곳이 아니라, 좋음도 미움도 없어 자유로운 곳일 것이다.

이렇게 발원문에 적힌 글들을 읽다 보면, ‘이것이 곧 부처가 품은 사람들의 마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픔을 치유해주는 부처, 불안을 붙들어주는 부처 모두 믿음에 기댄 긴긴 소원과 약속들로 이뤄진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불상을 만들게 되었을까’라는 오랜 의문은 그것을 만든 이들의 마음을 함께 읽으며 비로소 풀리는 듯하다.

불교에서 ‘공덕’은 어진 일을 행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힘을 가리킨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언제 나타날지는 선택할 수 없다. 그저 살아가며 계속해서 좋은 일을 베푸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야 마음이 놓이는 ‘당일배송’의 시대라서일까. 누구에게 득이 미칠지 모를 공덕을 정성스레 쌓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은 무엇일까. 산중턱을 지날 때 만나는 작은 돌탑들을 떠올린다. 큰 눈이 내린 다음날, 길가에서 만나는 조그만 눈사람도 생각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장소에 마음을 얹고 떠나는 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선한 것 하나를 더하고 잊어버리는 일. 어쩌면 그런 일이야말로, 부처님의 자비를 닮은 가장 극진한 마음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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