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보다 더 귀엽네…지자체 캐릭터의 ‘대변신’
지방자치단체 캐릭터들이 ‘키덜트’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과거 지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 하면 그 지역 특산품에 눈코입을 단 남녀 한 쌍으로 의인화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감한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성별과 나이를 버리고 개성과 창의력을 더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그럴싸한 세계관도 장착했다. 그들은 왜 변모하고 있을까?
■ 내 인기는 ‘한 지역’으로 국한될 수 없다
진주시 관광캐릭터 하모는 전국구 스타다. 간혹 외국인도 알아본다. 타 시·도 출장지에서도 ‘하모의 팬’이라 자처하는 이들에게 간식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다. 하모는 진주 진양호와 남강에 서식하는 수달로 머리 위에 조개껍데기를 얹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걸고 있다. 이름은 동의와 긍정을 의미하는 경상도 방언인 ‘하모~’에서 유래됐다. 성별은 미상이다.
진주시청 관계자는 “얼마 전 진주에서 개최된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현장에서 홍보 활동을 하던 중 한 일본인 팬이 하모를 알아보고 다가왔다”며 “일본 팬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춘 춤을 보여달라고 하모에게 부탁했고 하모는 역도 경기장이 쉬는 시간에 때아닌 장기자랑을 펼치며 환호를 받았다”고 인기를 자랑했다.
진주시 공무원들도 하모가 전국구 스타가 될 것이란 예상은 못했다. 애초 하모는 SNS 홍보를 위해 탄생한 캐릭터다. 활용한다면 남강유등축제 조형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 귀여운 외모의 하모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받자 진주시는 하모를 관광홍보대사로 정식 위촉했다.
향후 하모의 활동 계획에 대해 시청 관계자는 “하모는 대한민국 대스타가 되기 위해 방방곡곡 관광명소를 찾아다니며 활약할 것”이라며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하모~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격려가 담긴 힐링 영상을 주로 올리는 ‘진주덕후 하모TV’는 현재 8000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정선군의 ‘와와군’(와요와요 정선군에서 유래)은 지역 대표 캐릭터보다 더 유명한 정선 관광캐릭터다. 정선군은 12년 전부터 발 빠르게 세계관을 구축해 캐릭터 와와군을 만들었다.
와와군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찾아온 숲의 요정이다. 입을 살짝 벌리면서 배시시 미소 짓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하늘에서 도토리를 내리게 하는 ‘다도’(다람쥐 도토리), 상대방의 마음을 흔드는 ‘미토’(동강할미꽃 토끼), 썰렁한 농담으로 주위를 급속히 냉동시키는 ‘강새’(강아지 새싹), 치명적인 졸음을 선물하고 은폐하는 마법을 쓰는 ‘노버’(노란 병아리 버섯) 등 4명의 친구도 있다. 모두 정선의 울창한 숲을 떠올릴 수 있게 이름 지었다.
실제 정선군을 관광하다 보면 관공서뿐 아니라 일반 상점 간판이나 특산품 포장 등에서 와와군과 친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와와군 캐릭터는 정선군민에 한해 수수료를 면제해 판매 용도로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캐릭터는 같은 디자인으로 12년이라는 긴 시간 살아남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앞사람’의 치적이나 흔적을 지우는 과정에서 당시 만들어진 캐릭터와 엠블럼, 표어가 없어지는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 조태봉 회장은 “캐릭터에 정치적 이념을 씌우면 안 된다”며 “캐릭터를 개발하고 성장시키는 데 소비한 시간과 노동력을 따지면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드는 만큼 거시적으로는 국가 손실”이라고 지적한 조 회장은 “최근에는 공직 사회에서도 과거의 악순환을 벗어나 잘 만든 캐릭터를 제대로 잘 키워야 한다는 긍정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 ‘유명해져’ 고속 승진한 캐릭터들
하모와 마찬가지로 용인시가 지명에 있는 용(龍)에서 착안해 만든 캐릭터 ‘조아용’도 처음에는 SNS 소통 캐릭터였다. 이름도 SNS에서의 호감 표현인 ‘좋아요’와 용인의 ‘용’을 결합해 조아용으로 지었다. 요즘 캐릭터답게 성별과 나이는 미상이다. 2016년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진짜 용의 외양에 가까웠지만 2019년 새 단장을 통해 더 귀엽고 대중적인 모습을 갖췄다.
조아용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2020년 제3회 우리동네캐릭터대상에서 우수상을, 그 이듬해 제4회 대회에서는 대상을 받아내면서다. 이어 총 20만명이 받을 수 있는 조아용 이모티콘 이벤트가 8분 만에 종료되며 인기를 입증했다. 또 기흥역에 있는 ‘조아용in스토어’에서는 조아용 굿즈를 판매해 8개월 만에 매출 2억8000만원을 돌파했다.
용인시청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인기와 지지를 얻은 조아용은 2021년 12월 상징물 조례 개정을 통해 용인시 공식 상징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SNS 서브 캐릭터였던 조아용이 시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영전’에 성공한 것이다.
울산 중구 캐릭터로 공개된 울산큰애기는 2017년 4월 탄생했다. 가수 김상희가 1965년 발표한 노래 ‘울산큰애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동물이나 지역 자연환경을 형상화한 다수의 지자체 캐릭터와 달리 그는 ‘쫀드기’를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20대 여성이다. EBS 캐릭터 펭수처럼 인형 탈도 특정 인물이 도맡아 쓰고 있는데, 누구인지는 일급비밀이란다.
세계관에 ‘진심’이라 울산큰애기가 사는 집 ‘울산큰애기하우스’도 있다. 2층 큰애기 방은 침대·옷장·화장대 등 온통 분홍빛으로 꾸며져 있다. 1층에선 울산큰애기 굿즈를 판다. 인형과 머그잔·우산 등 100여종이 있다. 펭수 부럽지 않은 팬덤을 보유해 팬사인회까지 할 정도다.
울산큰애기는 2019년 우리동네캐릭터대상에서 대상을 받고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관광전에서 우수캐릭터상을 수상했다. 9급으로 공직자 생활을 시작한 울산큰애기는 2019년 8급, 2021년 7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공공 캐릭터들의 ‘발랄한’ 변화는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시도다. SNS 홍보가 필수인 시대 공공기관이 정보를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면 전달 매개체가 있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양방향 소통을 위해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인의 캐릭터가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 인기 캐릭터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일찍이 대중의 시선을 끈 지자체 캐릭터로 고양특례시의 고양고양이가 있다. 2011년 SNS 홍보 캐릭터였던 고양고양이는 당시 예산이 없어 SNS 홍보팀 담당 공무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온라인상에서 인기가 치솟으며 2013년 시 대표 캐릭터가 됐다. 2019년에는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의 사백안을 따라 하며 퇴물 연습생 ‘괭수’로 분장해 ‘숟가락 얹기’를 시도, 웃음을 자아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공공 캐릭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공공기관과 지자체 캐릭터 작업을 다수 협업해온 업체 엑스포디자이너의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먼저 인간적인 요소와 유머감각이다. 공공 캐릭터의 주요 활동은 기관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더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와 유머는 대중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마치 친한 친구처럼 솔직하고 가감 없이 감정을 표현하거나 말을 건네는 모습을 통해 대중과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EBS 캐릭터 펭수가 좋은 예다. 공영 교육방송 이미지가 강했던 EBS는 펭수의 등장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는 효과를 얻었으며 강력한 메시지 전달력을 갖게 됐다. 캐릭터 전문가들은 MZ세대의 마음을 훔친 펭수의 ‘파격’은 공공 캐릭터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디자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것. 코로나19 이후 SNS 홍보·마케팅 등 온라인 매체의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캐릭터는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앱),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제작된다. 복잡한 라인의 형태나 그러데이션 표현은 활용성이 낮고 여러 매체로 확장하기도 어렵다. 인형 탈이나 굿즈 등 실사 제품을 만들어낼 때도 비용적으로 효율이 떨어진다.
세 번째는 겉모습이다. 최근 새롭게 단장되고 있는 지자체 캐릭터를 보면 큰 눈, 균형 잡힌 몸, 짧은 몸통 등 귀여움에 힘을 준 요소들이 돋보인다. 또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젠더리스 캐릭터로 성별을 지운다. 지역 캐릭터인 부산시 부기, 부천시 부천핸썹 등은 MZ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SNS에서 공공기관 ‘궁서체’는 버리고 둥글둥글한 서체와 톡톡 튀는 MZ언어를 쓰며 재미를 유발하고 있다.
네 번째는 소재의 확장성이다. 과거에는 많은 지자체 캐릭터가 해당 지역의 상징물을 형상화해 만들어졌다. 시조나 시화, 시목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식이었다. 이와 달리 최근에는 미래 지향 가치를 반영한 추상적인 형태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캐릭터 ‘봉공이’는 도정 표어인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가치를 담은 추상적인 이미지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의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느냐’다. 단순히 귀엽기만 한 이미지를 넘어 캐릭터의 서사도 주목받고 있다.
■ 캐릭터는 곧 문화다
성공한 지자체 캐릭터로 빠지지 않는 한 사례가 이웃 나라 일본 구마모토현 캐릭터 구마몬이다. 2010년생 구마몬은 구마모토의 ‘구마’(곰)와 사람을 뜻하는 ‘몬’이 합쳐져 이름 지어졌다. 기존 공공 캐릭터와는 달리 ‘무표정’과 ‘사백안’으로 개성을 살렸고 그것이 구마몬만의 매력 포인트가 됐다. 저작료가 무료에 가까워 각종 구마모토 관련 물품은 물론, 기업 캐릭터 상품에도 쓰여 다양한 곳에서 구마몬을 볼 수 있다. 이젠 게임,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하며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됐다.
구마몬 사례처럼 애니메이션의 바탕이 되는 캐릭터 산업은 지식재산권(IP)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여성캐릭터협회 양지혜 회장은 “캐릭터는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도구”라며 “처음부터 전문가들과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그는 지자체 캐릭터들의 진화에 대해 “전 세계에서 부는 K컬처 바람으로 이제 캐릭터 저작물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똑똑한 캐릭터 하나면 해외 나가서 웹툰, 애니메이션이 되고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까지 확장성을 갖기 때문에 지자체도 점점 그 가치를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조태봉 회장은 “열 마디 말 대신 캐릭터 표정 하나로 표현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캐릭터는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있어야 소통이 된다. 상징에 머무는 과거 캐릭터로는 절대 할 수 없다”며 “캐릭터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문화가 된 만큼 관련 시장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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