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긴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3. 6. 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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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제 좀 힘든 일이 지나가나 싶었는데 또 다른 힘든 일이 찾아오고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기는 등 삶은 힘든 일의 연속이다. 생각해 보면 걱정거리가 단 하나도 없었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해서 파도 후에 또 다른 파도를 맞을 뿐이라면 계속해서 버티는 것에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마음에도 굳은 살이 생겨서 처음처럼 무방비하지만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힘든 일을 겪은 후 인간은 과연 성장하게 되는가에 대한 응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더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자신을 갉아먹는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면 좌절에서 벗어난 것 같았지만 곧 다시 넘어지고 멀쩡해진 줄 알았는데 다시 앓아 눕는 일의 반복이다. 동화에서처럼 그 후로 영원히 행복했다거나 하는 간편한 줄거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를 조금 덜 넘어지게끔 또는 조금 더 빨리 일어나게끔 도와주는 요소들은 분명 존재한다. 다수의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 작은 위안과 휴식 누리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껴보기,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쌓기, 문제의 존재와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내가 겪는 어려움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자기 자신에게 따듯한 태도를 가지기 등이 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들 요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찾기 불가능한 머나먼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잠깐씩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꽃이라도 보면서 마음에 휴식을 주는 일은 언제든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힘든 일의 발생 여부는 나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내일 또 다시 무너질지언정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는 일은 어느 정도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들 응급처치들은 우리 몸과 마음에 굳은살처럼 자리잡곤 한다. 워털루대의 심리학자 도널드 마이켄바움은 이러한 현상을 연구해 스트레스 접종 이론(stress inoculation theory)을 만들었다.

우리 안에는 각종 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주는 면역세포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겪으면서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마음을 지켜주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이 존재해서 삶의 풍파를 통해 다양한 전투를 경험할수록 더 강력한 방어체계를 구축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일찍이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회복탄성력을 보인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또한 커플들의 경우 관계 초기에 어느 정도 갈등을 겪었던 커플들이 그렇지 않았던 커플들에 비해 더 이후의 어려움(결혼, 출산/육아 등)에 더 잘 대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외롭고 힘들고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들마저 우리 몸과 마음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고 그 전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한 무의미한 시간이란 없는 셈이다.

내가 무의미하다고 치부했던 시간들 안에서도 내 마음은 끊임없이 단련중이었고 더 단단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오면 물론 또 다시 힘들겠지만 마음이 훈련했던 흔적들 덕분에 이전보다는 조금 덜 아플 수 있다. 

파도가 몰아치면 다시금 허우적대겠지만, 이 파도가 사실은 별 것 아닐 수 있음을 이전에도 비슷한 파도를 이겨냈음을 떠올려보자. 파도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 같을 때에도 내 마음이 그간 훈련했던 경험들은 지워지지 않음을 기억하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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