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㉑北 그대로인데…40년 만에 되살아난 재외국민투표권

구진욱 기자 입력 2023. 6. 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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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원 선거 첫 시작…최근 코로나로 실효성 논란도
헌법불합치 '국민투표법'…여전히 입법 개정 無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제21대 국회의원 재외국민투표가 시작된 1일 호주 시드니 총영사관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곽세미씨 제공) 2020.04.01/뉴스1 ⓒ News1 이준성 프리랜서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표 차이는 24만7077표(0.73%p)에 불과했다. 득표율 차이로는 역대 최소였고 득표수 기준으로는 제5대 대통령 선거(15만6026표)에 이어 두번째였다.

선거 기간 중에도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면서 두 후보 진영 모두 재외국민 투표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개표결과 윤 후보가 3만4873표, 이 후보가 1만8600여표가 더 많은 5만3524표를 획득했다. 재외국민 유권자가 22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한쪽으로 몰표가 나왔다면 대선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었던 셈이다.

재외국민 투표가 도입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코로나19로 공관의 선거사무 중단으로 인한 투표권 제한은 물론 대선 후보 사퇴로 인한 '사표화' 논란도 제기됐다.

여기에 재외국민의 투표권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에서는 보장이 되지만 헌법 개정과 같은 국민투표는 보장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2007년 헌법불합치 결정…19대 국회의원 선거 '첫 도입' 재외국민의 투표권은 1972년 해외부재자 투표제도가 폐지되면서 40년 가까이 보장되지 않았다. 심지어 1999년에는 재외국민들의 투표가 제한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헌재는 북한의 선거 개입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분단 상황에서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교포 등의 선거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국가적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었다.

변화는 지난 2007년 시작됐다. 헌재 전원재판부(당시 주심 김종대 재판관)는 지난 2007년 6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외 체류자와 외국 영주권가 대통령 선거 등 참정권 행사에 제한을 받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위헌이지만 법률 공백이 초래할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주민등록 여부만을 기준으로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권을 규정한 선거법 37조1항 등의 조항, 선거법 15조2항 등의 조항, 국민투표법 14조1항은 국민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 불허를 합헌으로 판단한 1999년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더이상 북한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막연한 위험성 만으로 선거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기는 여렵다는 판단이다. 또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과제이지 특정 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논란이 됐던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납세나 국민의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 급부로 예정하고 있지 않다"며 "재외국민에게도 병역의무 이행의 길이 열려있고, 병역의무와 무관한 여성들도 있다"고 판시했다.

일본과 미주 지역 등 한인 사회는 일제히 헌재의 결정을 환영했다.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길 원했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의 사정을 잘모르는 장기 국외체류자들이 정치적으로 선동돼 한인 사회가 갈라치기 돼 분열할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입법 개정시한이었던 2009년까지 잡음도 많았다. 대선 판도 등 영향을 줄 수 있는 재외국민 투표권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의견과 즉시 참정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다행히 지난 2009년 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재외국민투표권은 비로소 법으로 보장됐다. 1972년 해외부재자 투표제도가 폐지된 이후 처음으로 2012년 4월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실시됐다.

◇재외국민 투표 코로나19로 다시 한 번 논란 '후끈'…후보사퇴도 변수

최근 재외국민 투표법은 그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유는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공관의 선거 관련 사무가 중지돼 재외국민이 투표를 할 수 없게 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재외선거인 등록을 마친 17만여명 중 절반에 가까운 8만여명이 지난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논란은 지난 대선에서도 발생했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선거일을 불과 6일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이미 안 후보에게 투표한 표는 무효처리 되면서 '사표화'됐다는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18조에 따르면 재외국민 투표는 본 선거일 4일부터 9일 전에 진행돼야 한다. 국외의 시차 문제 때문이다.

즉 재외국민 투표는 본 선거일과 사전 투표일 보다 이른 날짜에 시행돼 본국으로 회송되기에 이들의 참정권은 불가피하게 또 제한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재외 투표 시작 후 후보 사퇴를 방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입법 개정안들에 밀려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여전히 반쪽짜리 재외국민 투표법?

전문가들은 재외국민 투표법이 여전히 반쪽짜리 투표법이라고 지적한다.

공직선거법은 후속 입법이 이뤄지면서 투표권이 보장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중요 정책이나 헌법 개정안에 대해 주권자로서 그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권'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2007년 당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개정 시한인 2015년을 훌쩍 넘겨 8년째 입법 공백 상태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에 부쳐 표결을 하게 돼 있다"며 "현재 국민투표법이 개정이 돼 있지 않아 재외국민에 대한 투표 절차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헌 논의가 반복 될때 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투표법 개정을 입법부에 요청하지만 번번히 그 의무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낙태죄를 비롯해 헌재에서 위헌과 불합치 결정에도 입법 기한을 넘겨 여전히 개정되지 않는 법률들이 많은 것은 국회가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kjwowe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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