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사러 가니 서점, 책 사러 가니 와인…재미난 ‘팝업’ 세계 [ESC]

한겨레 2023. 6. 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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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ESC] 커버스토리ㅣ ‘브랜드 놀이터’ 팝업스토어
스테디셀러 과자·‘환경 생각’ 화장품·‘패션+서점’ 팝업
이야기·메시지 등 ‘새로운 경험’ 전달…유행·문화 선도
서울 성수동에 있는 ‘요즘 엄마들을 위한 브랜드’ 스티커(stickHER)의 ‘마마메이드’ 팝업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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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하지? 영화나 공연을 보거나 카페에 가거나 캠핑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죠. 대체로 그렇습니다. 요즘은 하나 더 있어요. 팝업에 갑니다. 정확하게는 팝업 스토어. ‘짜잔’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매장입니다. 상시 운영하는 매장이 아니라 며칠만 운영하는 거죠. 곧 사라지기 때문에 서둘러 보러 가야 합니다. 팝업 스토어 자체가 한정판 상품인 것이죠. 지금은 바야흐로 ‘브랜드의 시대’입니다. 많은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를 운영합니다. ‘짜잔’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보여줄 게 없어도 보여줄 걸 만드는 게 브랜드의 숙명이며, 좋은 브랜드는 결국 보여줄 걸 만들어냅니다. 브랜드의 시대답게, 요즘 브랜드는 그것을 매우 잘 만듭니다. 젊은 세대, 이른바 ‘엠제트’(MZ)라고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유행에 민감한 부류가 팝업 스토어를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팝업이 그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팝업 스토어에서 즐기고 응원하고

과자 브랜드 오레오가 111번째 생일을 맞았고,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는 것을 에스엔에스(SNS)에서 봤어요. 서울 성수동에서 이달 18일까지 열린다는군요. 오레오? 맞아요, 그 동그란 비스킷. 처음엔 ‘오레오 생일이 나와 뭔 상관’ 이랬는데, 피드 사진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2m 넘는 생일 케이크 사진, 자동차 타이어만한 오레오 비스킷 사진에 끌려버렸달까요. 그래서 갔습니다. 평일 오후 2시였는데,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외부에 설치한 오레오 로고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도 많았고요. ‘아니, 무슨 오레오 생일에 이럴 일이야?’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에 저도 한컷 찍었습니다.

비스킷 오레오 팝업 스토어. 오레오의 111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 모형을 거대하게 만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드디어 입장. 들어가자마자 오레오를 주었어요. 단것을 먹으니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케이크 모형은 2m보다 훨씬 거대했어요. 관객들이 사다리를 타고 케이크 2층에 올라갔고, 아래에서는 일행이 사진을 찍었어요. 팝업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사진 촬영이 필수입니다. 해야 할 게 있거든요. 에스엔에스에 올리기! 제 후배 중 한명은 ‘인플루언서’입니다. 흥미로운 공간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콘텐츠 하나 했다!” 이런 모습은 엠제트 세대의 특징 중 하나일 텐데요, 이 글의 핵심은 세대에 대한 것이 아니니 패스. 다만 그런 일군의 사람들 덕분에 팝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팝업은 놀자고 만들었고, 정말 놉니다. ‘헬퍼’라는 관계자가 노는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는 오레오 미니 골프 게임이 재미있었어요. 골프채로 공을 쳐서 퍼팅을 성공시키는 게임인데 오레오 비스킷을 우유에 풍덩 빠뜨리는 것을 형상화한 거더라고요. 농구공 크기의 공을 바닥에 튕기고 커다란 컵 안에 집어넣는 게임도 했는데, 역시 우유에 오레오를 빠뜨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거였어요. 커다란 볼 풀장도 흥미로웠어요. 들어가서 볼 사이에 빠져 노는 ‘성인’이 많았습니다. 볼은 당연히 흰색. 이것도 우유를 형상화한 것이겠죠. 한참 놀다 보니 머릿속에 두가지가 새겨졌습니다. 우유와 게임! 오레오의 캐치프레이즈는 ‘스테이 플레이풀’(stay playful)이라고 해요. 이 팝업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오레오를 즐긴다, 재밌게. 우유와.

브랜드를 만들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거리의 매장이나 홈페이지 같은 것 말입니다. 공간이 있어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에스엔에스가 생기면서 공간을 만들기가 쉬워졌습니다. 브랜드의 시대는 이러한 환경 덕분에 찾아왔습니다. ‘요즘 엄마들을 위한 콘텐츠 큐레이션’ 브랜드인 ‘스티커’(stickHER)도 에스엔에스를 기반으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마마메이드’라는 팝업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엄마가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엠제트 세대 엄마가 창업한 브랜드를 모아 소개했는데, 참여 모집 게시물을 보고 무려 200여 브랜드가 신청했다고 해요. 역시 브랜드의 시대! 이 중 28개 브랜드 제품을 소개했어요.

엄마가 만든 브랜드라고 해서 유아용품인 걸까, 궁금했는데, 제품이 다양했습니다. 저는 식물 영양제와 쟁반을 구매했습니다. 두 제품 다 예뻤고, 완성도도 높았어요.

안성현 스티커 대표에게 질문했어요. 이 팝업은 엠제트 세대를 위한 건가요? 아니면 엄마들을 위한 건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멍청한 질문이네요. 저는 엠제트 세대는 엄마가 아닐 거라고 막연히 인식하고 있었나 봐요. 엄마들이 만든 제품을 보면서, 정확하게는 아이가 있는 젊은 여성들이 만든 제품을 보면서,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실력과 ‘엄마’의 경험으로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티커의 에스엔에스에 들어가면 그 각각의 브랜드와 제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우문에 대한 답변은 이랬습니다. “응원하는 팝업이에요. 엄마들이 이렇게 멋있게 만들고 있다는 걸, 다른 엄마들도 와서 보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엄마들도요.”

스티커 팝업에는 엄마를 응원하는 엄마가 옵니다. 엄마가 아닌 젊은 여성도 옵니다. 제품이 예뻐서, 흥미로워서, 실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옵니다. 그리고 저같이,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는 남자도 옵니다.

여성복 매장 안 서점

화장품 브랜드 비욘드의 팝업 스토어. 종이 리필팩에 제품을 담아 판매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올바르게 배출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죠! 그래서 들르는 팝업 스토어도 있습니다. ‘지구를 위한 공간’ 같은 거죠! 엘지(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비욘드’는 18일까지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 ‘레스 플라스틱, 페이퍼 이스 이너프’(Less plastic, Paper is enough)를 운영 중입니다. ‘플라스틱을 줄이자, 종이로 충분해’라는 의미 정도 되네요.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에 공감해 이 스토어에 들어갑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먼저 입장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공간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저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다는 메시지가 좋아서 들어왔어요. 플라스틱 분리배출 하는 체험을 해봤는데 지금 반성 중이에요. 제가 그동안 잘못 버렸더라고요.” 굳이 반성까지?

유심히 보니 플라스틱을 올바르게 배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퀴즈 풀듯이, 직원이 건네주는 플라스틱 용기들을 직접 버려보는 것인데, 음, 쉽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생수통과 화장품 파운데이션 케이스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같지만, 버리는 방법은 다릅니다. 저는 몰랐어요. 생각해보니, 파운데이션 케이스에 거울이 달려 있으니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리면 안 되는 거였네요. 내용물을 제거한 뒤 일반쓰레기 봉투에 버려야 합니다. 생수통은 비닐을 제거한 뒤 일반 플라스틱과 분리해서 페트(PET)병 전용 수거함에 버려야 하고요. 저는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버린 게 없었어요. 반성할 수밖에!

반면 즐거운 순간도 있습니다. 퀴즈를 풀며 이 과정을 잘 배우고 나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줍니다. 기분 좋은 선물을 받는 건 팝업 스토어를 가는 이유 중 하나예요. 저는 종이 리필 팩에 들어 있는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집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아서 사용하려고요. 레스 플라스틱!

문학 서점 고요서사의 팝업 스토어. 백화점 여성복 매장들 사이에서 패션에 관한 책을 모아 소개했다. 고요서사 제공

그냥 좋아서 가는 팝업도 있습니다. 저는 ‘고요서사’를 좋아합니다. 2015년 서울 남산 해방촌에 문을 연 작은 서점입니다. 경제, 경영, 자기관리에 관한 책 말고 문학 책을 팝니다. 고요서사가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팝업 스토어(4월26일~6월1일)를 연다는 소식을 에스엔에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문학 서점은 백화점에서 어떤 팝업을 열까요? 심지어 팝업이 열리는 장소는 여성복 매장 한가운데. 찾아보니 ‘패션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40여종의 책을 선별해 소개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의류 매장만 있는 곳에 서점이 들어오니까 재미있어 보이긴 하나 봐요. 관심을 많이 가지시더라고요.”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의 말입니다. 책과 와인을 페어링해서 소개하는 ‘북스 앤 코르크’ 진열장도 신기했습니다. ‘아, 이렇게 해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차 대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사실 북스 앤 코르크 프로그램은 2016년부터 서점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해오던 거예요. 어제 백화점 고객 대상으로 행사를 했는데 다들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하나의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이 바뀌면 개념도 확장됩니다. 팝업과 서점이라는 낯선 단어를 붙여 놓으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이 팝업 서점에 다녀오고 나서 저도 ‘뭔가 재미난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학 서점 고요서사의 팝업 스토어. 책과 와인을 페어링하는 ‘북스 앤 코르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고요서사 제공

‘새로운 경험’은 ‘소비자 중심’에서

프로젝트 렌트, 줄여서 ‘알’(R)은 2018년 성수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알은 오프라인에서 고객을 만나고 싶어 하는 온라인 기반 브랜드에 장소를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에서 많은 팝업이 열렸고, 알의 대여 공간은 무려 8개가 되었지요. 최원석 대표는 “작은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였어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가 꽤 멋진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팝업 스토어 열풍은 작은 브랜드가 이끌었습니다. 알이 일조했죠! 문구 전문 오롤리데이 같은 작은 브랜드들이 성공적으로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을 보고 동서식품이나 아모레퍼시픽, 엘지생활건강, 농심, 삼양식품, 롯데제과, 삼성물산 등 큰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팝업 스토어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권한을 큰 브랜드가 독점할 수 없게 된 것은 팝업 스토어의 굉장한 순기능입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문화를 다양하게 합니다.

팝업 스토어 공간을 대여하거나 기획하는 서울 성수동의 ‘프로젝트 렌트’.

물론 팝업 스토어가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원석 대표는 대답합니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카페보다 많을까요?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팝업이 많아졌다는 게 문제죠.” 왜 하는지 모르는 팝업이란 어떤 걸까요? “팝업은 소비자에게 즐거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게 본질이죠. 그런데 요즘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 중심의 팝업이 많아요. 그러니까 지겹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즐거움을 느낄 만한 콘텐츠가 없으니까.” 재밌게 잘하면 많은 게 뭐가 문제냐는 말. 맞는 말입니다. 맛집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또한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힙스터’인데, 제 관점에서 말하자면, 팝업이 많다고 투덜거리는 이들은 뭐든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순간이 오면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들이 ‘아, 이제 지겹다’라고 말하는 때는, 그것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팝업 스토어의 시대입니다. 저는 재밌게 가고 있습니다. 엠제트 세대는 아니지만, 가고 있습니다.

글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사진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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