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에 앞선 인권”…이주노동자, ‘밥상 나눔’ 말하는 이유

조일준 2023. 6. 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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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한겨레S] 커버스토리ㅣ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코이노니아’
쇳가루 작업장 ‘간질성 폐질환’…회사는 해고 통지
손가락 잘리고 각막 찢겨도 산재 신청·승인 방해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목사)의 ‘밥상 코이노니아’에 참여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한국 젊은이들이 지난 5월27일 경기 포천시 한 음식점에서 식사하기 전 김 목사의 말을 듣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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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의 마지막 주말이자 사흘 연휴의 첫날이던 지난달 27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빗방울이 뿌렸다. 경기도 포천에도 온종일 비가 왔다. 포천시 소흘읍 죽엽산로 길가에는 새길교회가 있다. 안팎을 경계 짓는 울타리도, 하늘로 치솟은 십자가 첨탑도 없는 단층 건물이 꼭 마을회관 같다. 이날 오후, 김달성 목사가 일찌감치 와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론대 앞 탁자에 놓인 팻말에 두줄 글씨가 또렷했다.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김 목사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다. 예배실 옆 작은 별실이 사무실이다.

모임 예정 시각보다 30분가량 늦게 승합차 한대가 도착했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보성교회 청년부 소속 한국인 5명과 이주노동자 3명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김 목사가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느라 조용하던 교회에 활기가 돌았다. 아지트(38)와 사나브(가명·37)는 경기 안성에서, 프라호르(가명·32)는 서울 구로에서 왔다. 모두 방글라데시 출신 남성이다. 한국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에 따라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해 공장에서 일한다.

김 목사가 마련한 이날 모임의 명칭은 ‘밥상 코이노니아’. 한국인 취업 기피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연대의 뜻을 밝힌 한국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동료들과 힘들고 외로운 타국살이의 고충을 위로하며, 법적 권리를 비롯해 유용한 정보도 얻는다. 매달 한차례 열린다. 김 목사가 페이스북에 미리 올리는 공지를 보고 참가 신청을 하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코이노니아(Koinonia)는 고대 그리스어(헬라어, κοινωνία)로 ‘친교, 나눔, 참여, 관대함’이란 뜻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현대 그리스어에서 ‘사회집단, 성찬 의례, 교회 일치’ 등으로 말뜻이 바뀐 유래다.

김 목사는 참가자들에게 밥상 코이노니아의 의미를 설명했다.

“성경에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하나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깊고 강렬한 말씀이에요. 지극히 작은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 지극히 낮고 약한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과 똑같이 봤다는 뜻이거든요. 오늘날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등입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은 누구일까? 저는 이주노동자들이라고 봅니다. 포천 인구가 15만명인데 그중 약 2만명이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한국 전체로는 130만명쯤 됩니다. 이주노동자를 환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 이주노동자를 헤이트(hate·혐오)하는 건 곧 하나님을 헤이트하는 거예요. 아지트씨, 전에 소방호스 공장에서 일할 때 사장 처남이 멍키 스패너로 마구 때리고 발로 짓밟았죠? 그거 특수폭행입니다. 처벌이 아주 무거워요.”

코이노니아가 개방된 모임이다 보니, 최근엔 수사기관이 편법적인 정보 수집과 함정수사를 벌이는 수단으로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3월 코이노니아에 서울의 한 경찰서의 경찰관이 신분을 감추고 참여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 알게 된 이주노동자 ㄱ에게 5월 초순께 두차례 따로 만나 20만원을 주고, 이주노동자들의 ‘불법 송금’ 실태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이 경찰관은 또 ㄱ의 통장으로 50만원을 입금하고 그 돈을 다시 브로커를 통해 본국으로 보내도록 시켜 돈의 흐름을 추적하려 했다. ㄱ이 협조하면 생활비를 계속 주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브로커가 송금은 하지 않고 돈만 가로채는 바람에 ‘함정수사’는 실패로 끝났다. 이주노동자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정보원 활동을 압박한 셈이다. 김 목사는 “경찰의 이런 행태는 종교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에 심각한 불신을 퍼뜨리며, 이주노동자센터를 교란하는 사악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목사, 앞줄 맨 오른쪽)와 ‘밥상 코이노니아’에 참여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 연대의 뜻을 밝힌 한국 젊은이들이 지난 5월27일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네팔 이주노동자가 차려준 카레밥

김 목사가 코이노니아를 시작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베푼 뜻밖의 ‘환대’가 계기였다.

“2018년 봄이었어요. 아무런 연고가 없는 포천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들을 찾아다닐 때입니다. 네팔에서 온 농장 노동자 2명이 비닐하우스 안의 움막 같은 숙소에서 직접 만든 카레밥을 차려줬어요. 제가 처음 만난 이주노동자들이었죠. 이건 특별한 사건입니다. 자연스럽게 친밀감과 신뢰가 생겼지요. 그 경험이 이주노동자 권리 찾기 운동의 밑거름이자 힘이 됐습니다.”

김 목사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들과 친분이 쌓이자 2020년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밥상 코이노니아’를 시작했다. 정기 모임이 아니어도 신청자가 5명 이상이면 언제든 밥상이 차려졌다. 김 목사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을 듣고,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설명하고, 포천 지역의 공장과 농장 등 사업장 몇곳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돌아보며 연대를 다지고, 이주노동자 숙소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2021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격리가 엄격해지자 김 목사는 코이노니아를 1년가량 중단했다가 2022년 6월부터 재개했다. 매주 한차례가 매월 마지막 주말 한차례로, 식사 장소는 시내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이날 참관한 일터와 주거시설은 석재공장과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였다. 거리가 먼 석재공장을 먼저 찾아갔다. 교회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을 달렸다. 공장은 포천시 영중면의 야산 밑자락에 있었다. 사리프(가명·42)와 나야브(가명·35)가 일하는 곳이다. 두 사람도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공장은 사흘 연휴 기간 동안 기계를 멈추고 쉬었다. 완만하게 비탈진 공장 터에는 여러개의 작업장과 사무동, 이주노동자가 사는 ‘기숙사’가 있었다. 철제 컨테이너 2개를 2층으로 포개놓은 불법 가건물이다. 컨테이너 숙소 앞의 비 맞은 흙바닥 곳곳이 질퍽질퍽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사리프와 나야브가 따끈한 커피와 간식을 일일이 나눠주며 환영했다. 비가 계속 왔지만 노동자 기숙사에 열댓명이 함께 비를 피할 만한 장소는 없었다.

컨테이너에는 공간을 잘개 쪼개고 가벽을 만든 여러개의 ‘방’이 있다. 채 한평(3.3㎡)도 안 돼 보이는 방은 성인 한 사람이 편히 눕기 힘들 만큼 비좁았다. 벽걸이형 전기히터 2개가 한겨울이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를 버텨내는 유일한 난방시설이다. 2층의 공동주방은 천장 마감재가 떨어져 빗물이 새고, 벽면과 바닥까지 곳곳에 새까맣게 곰팡이가 슬었다. 사리프와 나야브는 이곳에 살면서 전기와 수도, 인터넷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비용으로 한달에 12만원(여름)에서 20만원(겨울)을 낸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작업장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회전톱으로 석재를 자르고, 납작하게 가공된 석판을 한장 한장 들어내 쌓고, 지게차에 실어 운반한다. 석재 절단 중 발생하는 뿌연 돌가루는 물을 뿌려 씻어낸다. 여느 육체노동자들처럼 이들도 요추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과 어깨 통증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이날 만난 이주노동자 5명도 모두 일터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산업재해(산재) 피해자들이었다.

“산재 지정 병원, 고용주 편들기 일쑤”

경기 포천시 영중면의 한 석재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지난해 12월 추락 사고를 당했던 당시 슬레이트 지붕이 깨진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꼭 다섯달 전인 지난해 12월27일, 사리프는 회사 관리자의 지시로 눈이 가득 쌓인 작업장의 얇은 슬레이트 지붕을 고치다 슬레이트가 깨지면서 추락했다. 오른쪽 갈비뼈 8개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보호장구 따위는 없었다. 사리프는 포천시의 한 산재 지정 ㅇ병원을 거쳐 의정부 ㅅ병원에서 넉달이나 치료를 받았다. 회사 쪽은 사리프가 완치되기도 전에 업무 복귀를 재촉했다. 산재 신청에는 대놓고 어깃장을 놨다. 포천 ㅇ병원도 교묘하게 산재 신청 접수를 회피했다. 결국 이주노동자센터가 나서서 산재 승인을 받아냈다. 김 목사는 “지역의 소규모 산재 지정 병원은 환자를 데려오는 고용주 편을 들기 일쑤다. 둘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라고 했다.

회사 쪽은 사리프의 사업장 변경 요구도 묵살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일터를 옮길 수 없도록 묶어둔다. 다만 “불법 기숙사 제공,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그러나 사리프에게 이런 조항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사고 뒤 사리프는 힘든 일은 못 하고 지게차 운전을 한다. 사고가 난 작업장의 슬레이트 지붕은 지금도 구멍이 뻥 뚫린 채 방치돼 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철판 가공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프라호르(가명)가 지난해 12월 작업 중 쇳조각에 오른쪽 눈 각막이 찢어져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모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서울 구로구의 한 철판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프라호르는 지난해 12월 작업 중 오른쪽 눈 각막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앞서 이주노동자 최장 체류 기간인 4년10개월 동안 일한 뒤 귀국했다가 성실 근로자 재입국 특례로 들어온 지 넉달 만이었다. 프라호르는 “공장장이 쇳조각을 잘못 던져 눈에 맞았다”고 증언했다. 회사 쪽은 과실 책임을 줄이려 ‘프라호르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는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프라호르는 서울 이화여대 목동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다. 전에는 쓰지 않던 안경을 맞춘 이유다. 회사 쪽은 프라호르의 산재 신청도 방해했지만 김 목사의 도움으로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사나브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와 경기 안성의 한 금속 가공공장에서 일한 지 두달 만에 한 손가락 끝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고용주가 자신을 불법 파견한 다른 공장에서 그라인딩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한국인 작업반장이 일을 다그칠수록 금속 부품을 깎는 속도가 빨라졌고, 결국 왼손 네번째 손가락이 부품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그나마 산재 승인을 받은 게 다행이다. 작업 중 사고는 산재 심사에서 대부분 승인을 받는다. 그러나 질병 산재는 신청 대비 승인률이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심사 기간도 턱없이 길다. 질병 발생이 비교적 천천히 진행되는데다, 노동과 발병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게 쉽지 않고 사업주들의 은폐와 반발이 심해서다.

폐암 위험 있는데 산재 인정은 아직

공장에서 일하다 심각한 폐병을 얻은 아지트의 사례는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직업환경의학 학회에도 보고됐을 만큼 주목받았다. 그러나 산재 승인 여부는 16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아지트는 산재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치료비까지 빚을 내 부담하고 있다.

아지트는 2021년 2월부터 경기도 안성의 한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금속 표면을 매끄럽게 깎는 그라인딩 작업을 했다. 미세한 쇳가루가 날려 수북이 쌓일 정도였지만 회사 쪽은 얇은 면 마스크만 주고 일을 시켰다. 아지트가 여러차례 방진 마스크를 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관심이 없었다. 8개월 만에 호흡기에 심각한 이상이 왔다.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고 지난해 12월 서울삼성병원에서 큰 수술을 했다. 간질성 폐질환은 폐포(허파꽈리)와 폐포 사이의 조직인 간질이 두꺼워지고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되는 난치병이다. 발병하면 폐가 뻣뻣해지고 위축되면서 호흡이 가빠지는 폐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한국 의료진은 아지트가 한국에 오기 전 호흡기 질환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지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냈다. 그러나 회사 쪽은 아 지트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 아지트는 여전히 가슴에 통증이 있고 가래와 잔기침이 나와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아지트가 일했던 경기 안성시의 한 농기계 제조업체 공장에 미세한 금속 분말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이 회사는 금속 표면 그라인딩 작업 노동자들에게 방진 기능이 없는 면 마스크를 주고 일을 시켰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지금 약 먹어요. 병원은 한달에 두번 세번 왔다 갔다 해요. 우리 외국인 일 안 하면 (함께 있는) 가족들 없어 (생활하기) 힘들어요. 공장이 책임을 져야 해요. (그런데 나를) 한번도 도와주지 않고 해고하고 싶어(해)요. 그러면 나는 갈 데가 없잖아요. (한국 정부가) 산재를 조금 빨리빨리 조사해서 결과가 빨리 나오면 좋겠어요.”

김현주 이화여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김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아지트 사례를 발견하고 관심을 기울였다. 김 교수는 “아지트의 폐에 흉터는 남았지만 기능은 상당히 회복된 상태다. 문제는 아지트가 결정형 실리카라는 발암물질에 단기간에 고농도로 노출됐다는 사실이다. 폐암 발병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아지트가 수술을 받은 직후, 김 교수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직업병 발굴 사례 보고’를 했다. 아지트의 건강 이력과 작업장 환경, 노동 시간, 임상의학적 판단, 전문가 의견 등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아지트가) 관련 유해물질에 질병을 유발할 만큼 충분하게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어,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지난 2월에는 한국산업보건학회 ‘2023 동계학술대회’에서 <한 농기계 제조업 쇼트/연마 작업자의 간질성 폐질환의 업무관련성 평가>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아지트가 수술을 마치고 병세가 어느 정도 회복된 2월에 아지트에게 회사 제출용 소견서 2개를 써주었다. 하나는 ‘호흡기 유해 인자에 노출되지 않는 가벼운 일은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 다른 하나는 ‘요통은 6주가량의 ‘보존적 치료’(증상을 다스리며 질병의 호전을 기대하는 치료)를 한 뒤 상태를 지켜보자’는 내용이었다.

회사 쪽 반응은 뜻밖이었다. 4월7일, 회사는 아지트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근로기준법과 취업규칙상 “건강 장애로 인하여 업무를 감당할 수 없을 때”라는 사유를 들어, “5월6일자로 해고”하겠다는 통보였다. 김 목사와 노무사가 업체에 강하게 항의해 아지트의 해고는 일단 유보됐다. 김 목사는 아지트가 울분에 차서 “한국에 휴머니티가 어디 있나요?”라고 물어봤다고 했다. 그 말 속엔 한국에 대한 그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심정이 담겼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아지트의 사례를 역학조사 중인데, 우리나라 산재 판정은 몇개월에서 길게는 몇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질병 산재는 승인율이 낮은 게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고위험 작업을 하는데도 산재 신청 자체가 어려워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고, 대부분 산재보험 제도 자체를 몰라요.”

김 교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게 뭐냐는 질문에 곧바로 “노동 3권의 보장!”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그들이 노동 환경의 위험에 대해 말을 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겠죠.”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대하나

경기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석재공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 가건물. 방이 몹시 비좁고 공동주방은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 위생 상태가 나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코이노니아 참가자들은 석재공장에서 다시 자동차로 한시간을 달려 포천시 가산면의 비닐하우스 농장 지대로 향했다. 한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기숙사를 방문하자 네팔에서 온 빈투나(가명·35)와 베트남 출신 노동자 2명이 김 목사를 반갑게 맞이했다. 김 목사의 일행 소개에 이어, 빈투나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서툰 한국말로 몇마디 나누더니 금세 소통의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모두 인도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선 16명의 아시아인이 잠시나마 5개 국어로 담소를 나누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날이 궂은 까닭에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일행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포천시내의 한 추어탕 전문 음식점으로 옮겼다. 저녁 8시가 다 돼서였다. 김 목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추어는 ‘리버 피시’(민물고기)입니다. 돼지고기는 이슬람에서, 쇠고기는 힌두교에서 금기식이지만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니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했다. 모두가 추어탕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서울 보성교회 청년부의 유은지(30)씨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국적과 피부색·언어에 따라 많이 다르고, 사회적 위계에 따른 폭력이 사회적 약자인 아래로 내려올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의 복지가 좋아져야 한국인에게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로 일하는 남혜림(30)씨도 “이주노동자들도 우리를 찾아온 이웃인데, 작업장과 숙소를 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민권보다 앞서는 게 기본적 인권이고 안전은 건강권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보성교회 청년부는 2021년 12월부터 코이노니아에 참여하면서 이주노동자 권리 찾기를 돕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열악한 생활 환경을 알리고, 주변의 혐오와 편견을 바로잡고, 통·번역을 지원하고, 크리스마스 선물과 금전적 지원도 한다.

한편 김 목사는 지금까지 만난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원고를 책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앞서 2020년에는 ‘코리아 내부 식민지, 이주노동자 이야기’(부제)를 다룬 책 <파랑 검정 빨강>을 펴낸 바 있다. ‘푸른’ 꿈을 안고 한국에 와서 ‘암울한’ 노동 현실에 시달히지만 ‘붉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을 잃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담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목사)의 ‘밥상 코이노니아’에 참여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한국 젊은이들이 지난 5월27일 경기 포천시 한 음식점에서 식사하기 전 김 목사의 말을 듣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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