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빨라지는 시계추…도민 결정권은 어디로?

강인희 2023. 6.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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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3월 8일 제주도 성산읍 지역에 공항 하나를 더 짓는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과 관련해 기본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는 공항시설법 시행령 제8조 규정에 근거해 제주도민 의견을 3개월간 수렴했습니다. 하지만 예정지의 공항 소음 피해와 지하수의 통로인 '숨골'(용암이 흘러갈 때 식은 용암의 지표가 갈라지면서 생기는 틈)의 환경적 가치, 항공기와 조류충돌 위험성 등 각종 쟁점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수렴은 마무리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 여부를 결정하기 전 제주도민 의견과 제주도지사의 의견을 국토부에 어떻게 전달하느냐입니다. 8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제주 최대 갈등 현안에 대한 제주도의 의견수렴 방식을 짚어봅니다.

제주 제2공항 도민 의견 수렴 마무리…"찬반 입장만 재확인"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안에 대한 제주도민 의견 수렴이 마무리됐습니다.

공항시설법 시행령 제8조 규정에 근거해 기본계획안에 대한 도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석 달 동안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도민들이 전략환경영향평가서와 기본계획안 등을 공람하도록 하고, 4차례의 경청회를 진행했습니다.

제주도 집계 결과, 경청회와 읍면동 주민센터 등을 통해 2만 5천7백여 명이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접수된 의견 90% 가량이 단순 찬반 의견들인 것으로 나타났고, 다른 지역에서 온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의견도 3천 건 가량 접수됐습니다.

지역균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2공항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난개발·환경 훼손·군사공항화 우려" 등이 주를 이루며 찬반 의견만 재확인된 겁니다.

제주도는 이 의견들을 도내 전문기관에 의뢰해 수치화하고, 유형별로 정리해 이달 말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제2공항 평가서 공람"어렵고 두꺼운 평가서, 누가 봐요?"

제주시내 한 주민센터에 도민 공람을 위해 비치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입지 타당성 평가와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 3월 6일 검토기관들의 부정적 의견에도 환경부의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조건부 동의 결과와 이틀 뒤 국토부가 전격 발표한 기본계획안 발표에 대해 "제주도와 사전 협의 없는 잇따른 발표"라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지방분권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고,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를 다양하게 검증하고 기본계획안이 어떻게 정리됐고, 어떻게 보완됐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갈등 해소와 제주도민 결정권을 위해 검증이 중요하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제주도 차원의 검증은 없이 의견수렴 기간이 마무리됐습니다.

그렇다면 의견수렴 방식에 제주 도민들은 만족하고 있을까요?

제주도는 도내 43곳의 읍면동 주민센터에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와 기본계획안·입지 타당성 평가와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서를 비치했습니다.

취재진이 지난달 22일, 제주시내 한 주민센터와 읍사무소를 가 보니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3천 페이지가 넘고, 다른 평가서도 두껍고 전문용어 가득한 책자로 6권이나 됐습니다.

해당 주민센터에선 제2공항 관련 평가서들을 공람한 주민이 거의 없었고, 현장에서 접수된 의견도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두껍고 어려운 내용을 누가 보냐?"고 반문했습니다.

한 읍사무소에서 만난 주민은 민원 창구 앞에 놓인 평가서들을 보며 "여기에 있는 줄도 몰랐고, 내용을 보니 너무 어렵다"며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제2공항 도민 경청회"고성과 욕설·찬반 입장만 재확인"

제주 제2공항 도민 경청회


제주 제2공항 도민 경청회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모습


제주도는 도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며 지난 3월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을 시작으로 4차례의 경청회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들간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가 하면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야유를 보내며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들을 해소하기보다 찬반 입장만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는 평가입니다.

제주시 연동에 사는 한 도민은 "찬반 싸움의 장이었고, 궁금증을 해소하지도 못했다."며 "국토부가 사업 목적만 얘기했다"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온 경청회 참석자 역시, "도민 경청회가 아니라 제2공항 건설을 목적으로 해서 진행되었던 사례 발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서 많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수렴 방식에 대한 제주도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 4월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경청회가 일부 파행이라고 할 부분도 있지만, 그 정도 주장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성공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찬반 갈등의 골이 깊은 현안에 대한 이 같은 제주도의 의견수렴 방식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했습니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제주 제2공항은 추진 과정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찬반 측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똑같은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며 "초기 단계에서 좀 더 정보를 공개하고, 논의 과정에서 투명성 확보에 시간을 투입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정영신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숨골의 지하수 영향과 조류충돌 위험성 등 현재 논란에 대해서 과학적 조사를 하고, 정확한 정보가 도민사회에 제공돼야 제2공항 개발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도민 결정권 확보는 이 같은 검증이 이뤄진 다음에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31일 제주도 제8기 사회협약위원회가 제주도에 제2공항 개발사업 관련 의견서를 전달하는 모습


제주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사회 갈등 해결을 위한 기구인 제주도사회협약위원회 역시, 제2공항 기본계획안에 대해 제3자가 참여하는 검증 방식을 오영훈 지사에게 요구했습니다.

진희종 제주도 제8기 사회협약위원장은 "이번 의견수렴을 위해 공람된 제2공항 평가서들의 전문적인 내용들을 도민들이 알기 어려웠다."며 "누군가가 그 역할을 보완하는, 전문가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도지사에게 "항공수요 예측과 숨골의 환경적 가치, 조류 충돌 위험성과 서식지 보호와 동굴 분포 가능성, 그리고 군사 공항 전용 의혹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선 제주도가 국토부에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할 것과 제주도·도의회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 도민 결정권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경청회는 형식적 절차"…"시민과 권한 공유해야"

8단계인 해외 시민참여제도(PI)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간략히 표현함


우리보다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한 갈등을 앞서 경험한 해외에서는 어떻게 의견수렴을 하고 있을까.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도로개발과 도시계획 과정에서 '시민참여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행정당국이 사업의 필요성을 알리고 설명회를 여는 단계를 '요식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도가 하는 의견청취와 설득 과정도 형식적인 절차로 보고 있는 겁니다.
실질적인 시민 의견 수렴과 참여는 행정당국과 권한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사실상 검증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주도처럼 현안에 대해 경청회 등 의견 수렴까지만 할 경우,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행정당국이 시민과 사업 결정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는 게 시민참여제도의 핵심입니다.

캐나다 "공공기관이 검증 지원"…일본 "검증 토론만 3년"

그렇다면 실질적 의견수렴의 과정에 포함되는 검증을 해외에선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캐나다에선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다루는 과정에 시민들이 전문가 단체에 사업 평가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의뢰했습니다.
검증 비용은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 격인 'Canadian Nuclear Safety Commission'(CNSC)가 부담했습니다.

시민들은 공청회에 참석하기 전에도 전문가 도움을 받아 내용을 충분히 확인한 뒤 참가해, 내실 있는 토론이 가능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외곽지역 도로 개설 관련 시민참여제도 운영 모습


일본의 사례도 살펴보면 2018년 요코하마의 외곽 마을에선 3.9km 길이의 4차선 도로를 건설하며, '오픈 하우스'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완성 후 모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 안내되고, 주민들이 언제든 사업자 측을 만나 문제점을 확인하고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착공 전 주민과 행정당국이 도로 개발의 필요성과 부작용을 토론한 시간만 3년이었습니다.

한 주민은 "행정당국에서 도로를 만들 테니 주민들에게 토지를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왜 만드는지를 알아야 한다. 편리함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주민참여제도에 만족을 나타냈습니다.
제주처럼 기한을 정해 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들이 사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검증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 사례는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이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각종 문제점과 의혹은 해소되지 못한 채 절차가 진행되며 8년 넘게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는 제주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가감 없는 제주도민 의견 전달이 정답?…제주도지사 의견 주목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시계추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관심은 이달 말 국토부에 제주도민 의견을 전달하는 것과 함께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제2공항 의견서에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입니다

공항시설법 제4조 제4항을 보면 국토부 장관은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반드시 자치단체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주도 측은 "제주도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넣는 게 바람직한지, 도민들의 뜻이 가감 없이 전달되는 게 바람직한지, 다각도로 검토를 해서 전달할 계획입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국토부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찬반 위주의 도민 의견을 잘 반영해달라"는 형태의 의견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고시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만큼 도지사가 제2공항을 추진할지
말지를 표명해야 하며, 적어도 기본계획안에 나온 공항운영방안에 대한 제주도의 의견이나
분야별 구체적인 개선안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주도는 줄곧 도민 결정권과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기본계획안의 검증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정권을 위한 방안 마련이나 쟁점 검증 절차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있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각종 쟁점들을 보완해가면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는 기본적으로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 중점적으로 볼 뿐 제2공항이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타당성 부분은, 지금 진행중인 '기본계획안' 절차에서 다루게 됩니다.

사실상 지난 석달이 진짜 '도민의 시간'이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이윱니다.

제주 미래에 대한 도민결정권은 권리이자 역량의 문제인 만큼, 신중하고 공정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앞두고 찬반의견만 주를 이루고 있는 도민 의견을 가감없이 국토부에 전달하겠다는 제주도의 선택이, 8년간 이어진 갈등의 해법인지 도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이제 제주도가 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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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희 기자 (in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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