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가야 하는데 애는 어떻게 해요”...선택지 없는 엄마들, 긴급보육은 권리입니다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입력 2023. 6. 3. 06:33 수정 2023. 6. 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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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부터 버스와 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 안에서도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 되면서 ‘팬데믹의 공포’가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다. 팬데믹의 시대는 통금 등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 휴원을 맞닥뜨려야했던 직장인 부모들에게는 ‘육아공백’으로 인한 괴로움이 가득한 시기였다.

직장은 쉬지 않는데 갑자기 아이들을 돌봐주는 기관이 문을 닫는 충격적인 현실이 이제는 지나간 과거라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보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철렁하다. 빌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빌 게이츠 이사장이 20년 이내에 ‘넥스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50%라고 말했듯,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언젠가는 닥쳐올 감염병, ‘디지즈X’의 공포는 상존하고 있다.

남의 죽음은 제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팬데믹의 많은 우려와 공포 중에서도 워킹맘의 고민과 걱정은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였다. 2021년 어린이집은 날이면 날마다 긴급 휴원 공지를 돌렸다. 확진자 발생과 밀접 접촉 등 여러 이유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날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재택 근무는 ‘재택’이지 ‘근무’ 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내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팬데믹 기간에 내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재원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집은 긴급 휴원도 있지만, ‘긴급보육’도 존재한다.긴급보육이란 어린이집이 방학을 하거나 휴원을 할 때도 아이를 돌봐줄 교사를 배치해 맞벌이 부부 등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봐주는 제도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긴급보육제도가 잘 되어있어 맞벌이 부모들의 선호도가 높다.

내 경우는 가정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팬데믹 대부분의 기간동안 어린이집은 긴급 휴원 상태였다. 하지만 당당하게 긴급 보육을 요청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지 않으면 업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어린이집의 눈치가 보이지 않았냐는 질문도 있었다. 물론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대안이 없는 엄마는 직진 뿐이다.

눈치가 보이지만 최대한 예의바르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의 권리를 행사했다.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보호자의 긴급보육 수요에 대응해야할 의무가 있다. 영유아보육법 제 43조 2항에는 어린이집 휴원 시 보호자가 영유아를 가정에서 양육할 수 없는 경우 등 긴급 보육 수요에 대비해 긴급보육 계획을 가정통신문 등을 통하여 보호자에게 미리 안내하는 등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어린이집 분위기 상 긴급 보육이 가능해서 요구했던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어린이집 정원 20명 중 긴급보육기간 등원한 아이는 두 명 뿐이었다. 말하기 조금 머쓱하지만, 이 두 명은 나의 딸 둘이다.

팬데믹에도 부득이하게 아이를 기관에 보내야하는 엄마의 마음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하지만 팬데믹 기간 아이를 온종일 대신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어차피 그들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아이를 봐주러 오시는데, 이들에게 전적으로 아이를 맡겨 놓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코로나19 감염을 비껴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직진뿐인 워킹맘은 다시 긍정 회로를 돌린다. 긴급 휴원과 긴급 보육 중에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전원 출근을 하고 있었다.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나의 아이 둘을 무려 다섯 명의 교사가 성심 성의껏 돌봐준다. 이 얼마나 좋은 보육 환경이란 말인가. 어린이집에서는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오전 오후 간식과 점심 식사도 나온다. 과연 내가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만큼의 시간과 관심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친구 없이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내심 미안했지만, 집에 있어도 어차피 친구를 만날 수는 없다고 아이들과 나 자신을 달랬다.

외로웠던 긴급 보육의 기간을 한 달 여 보내고 나니, 가정 보육에 지친 엄마들이 하나 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직장인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해 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당당하게 긴급 보육이라는 권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직장맘들의 연대가 생겼고, 팬데믹 이후에도 어린이집에 의견을 내기가 수월해졌다.

여담으로 지난해 말 나왔던 뉴스를 덧붙인다. 안타깝고 속상한 조사 결과이지만, 팬데믹에도 어린이집에 매일같이 아이들을 등원 시켜야만 해 마음이 무거웠던 엄마들에게 조금은 다르게 읽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혹시나 색안경은 거둬주길 바란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포스트코로나 영·유아 발달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겪은 0~5세 영·유아 3명 중 1명은 통상 연령에 맞는 발달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어린이집 대신 가정에서 교육 받은 영·유아의 경우 언어 발달 지체를 겪고 있는 경우가 조사 대상자의 1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코로나19 확산기 성인들의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 저하가 예상된다는 우려도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어린이집 통원 영·유아 조사 대상자의 7.9%는 언어발달 지체를 겪고 있었다. 가정 양육 영·유아 중에서는 언어발달이 지체된 영·유아 비율이 17%로 어린이집 통원 영·유아보다 2배 이상 높은 비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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