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가입했지만”…전세금 돌려받는 과정 추적해보니 ‘고행길’
복잡한 법률 용어에... 제출 서류도 많아
대부분 변호사·법무사 선임...비용은 자비 부담
“과정 간소화·기간 단축 방안 찾아야”
272일. 지난해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모씨(29)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전세금을 변제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법원에 다녀온 횟수만해도 13회에 달한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임모씨를 직접 만났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만 해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가입해두길 정말 잘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막상 전세금을 돌려받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험난했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2021년 12월 14일 전세계약을 통해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 입주했다. 그는 계약 만료를 불과 6개월 앞둔 작년 6월 5일,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기는 TV에서나 나오는,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는 게 임씨의 얘기다.
그가 전세 사기 피해를 인지하게 된 계기는 집주인 앞으로 발송된 ‘신용카드 채무 우편’을 발견하게 되면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임씨는 바로 인근 주민센터에 달려갔고, 황급히 등기부등본을 발급 받아 봤다. 등본에는 임씨가 계약할 당시 집주인이 아닌 새로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가압류도 걸려 있었다. 임씨가 전세계약을 한 직후, 신용에 문제가 있던 당시 집주인에게 건물을 매각한 것이었다.
눈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임씨는 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어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보증금도 곧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7일 ‘보증보험 이행 절차’가 완료되기까지 9개월이나 걸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임씨는 우선 HUG 카톡 채널을 통해 받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유의사항 안내’를 따랐다. 집주인에게 갱신 없이 전세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미 잠적한 집주인이 연락을 받을 리 만무했다. 이에 HUG는 “집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라”고 안내했다.
집주인이 내용증명을 받으면 사실 보증금 반환 과정은 쉽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전세 사기에 연루된 집주인들은 대부분 ‘폐문 부재’라는 게 문제다. 2022년 6월 29일, 임씨가 두 차례 발송한 내용증명이 모두 반송됐다. 이에 임씨는 ‘공시송달’을 신청했다. 공시송달이란 주거 불명 등의 사유로 소송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에 법원 등에 일정 기간 동안 게시함으로써 송달한 것과 똑같은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임씨는 공시송달을 신청하기 위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을 찾아 민사 서류를 작성했다. 이를 위해선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내용증명서, 내용증명배달증명서, 피신청인 주민등록 초본, 등기사항전부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2022년 7월 18일, 법원으로부터 주소보정명령 등본이 도착했다. 집주인이 주소를 허위로 기재해놔 수취인 불명으로 공시송달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임씨는 반송된 내용증명을 들고 또 다시 주민센터를 찾아가니 집주인의 등기부등본 초본을 확보했다.
이후 임씨는 등기부등본 초본을 첨부해 보정서를 제출했고, 8월 10일이 돼서야 결정정본을 받을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공시송달처분이 결정된 것은 그로부터 6일이 지난 후였다. 이에 집주인에게 결정정본이 발송됐고, 집주인이 결정정본을 받은 날은 2주가 지난 8월 31일이었다.
사실 대다수 피해자들은 전세 만기를 앞두고 사기 여부를 인지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다 보니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법무사에게 맡기기도 한다. 선임 비용은 오롯이 피해자가 지불해야 한다. 임씨는 “HUG에서는 적어도 전세 계약 만기 1개월 전까지 의사표시공시송달 완료본을 요구하기 때문에 전세 만기 전까지 미리 이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 14일, 공시송달 결정 후 임씨는 이제 남은 과정인 임차권등기명령을 진행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이 명시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야 보증보험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임차권등기명령 진행에도 다양한 서류가 필요했다. 등록면허세 신고, 납부 영수증, 등기촉탁수수료 납부 등 10개 내외의 민사 서류를 준비했다. 새해가 불과 이틀 남은 그해 12월 28일, 임씨는 임차권등기명령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에 전세대출 연장도 신청해야 했다. 전세 만기 후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거주지에서 퇴거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임씨는 올 들어서야 보증보험 이행 신청을 했다. 보증보험 청구 신청은 계약 만기 1개월 후부터 가능했다. HUG에서는 계약 만기 한 달 뒤부터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났다고 인지하기 때문이다. 앞서 제출했던 각종 서류도 또 다시 준비해야 했다. 추가 서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어 통상 보증보험 이행 심사는 1~2개월이 걸린다.
지난 2월, 보증보험 이행 신청 접수 1개월 만에 HUG에게 연락이 왔고 임씨는 지난 3월 27일에 겨우 월세집을 구해 이사를 하면서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대주택퇴거사진·관리비산정 및 완납내역·번호키 인계내역 등을 HUG에게 발송했다. 보증청구 이후 HUG의 동의 없이 임차권등기 말소를 하면 안 되며,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약관 위배사항이 있으면 보증이행이 취소될 수 있다는 조건도 붙었다.
업계에서는 보증보험 이행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서 진행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법률 용어가 많은데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일반인에겐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고령의 피해자에겐 더욱 어려운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사는 “전세사기의 경우 집주인이 잠적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의사표시 과정부터가 임차인에게는 과도하게 복잡하다”라며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HUG 관계자는 “임차권 설정 등기 등 보증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은 시간이 소요된다. 공사는 임차인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계약 만기 약 1개월 후부터 보증보험 청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통상 보증보험 이행 심사는 4~6주가량 걸리지만, 최근에는 8주 이상 걸린다.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신청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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