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8명 배출 비결? 천재 1명 아이디어보다 동료 협업과 국제 교류

김연주 기자 2023. 6. 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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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그펠트 스웨덴 웁살라大 총장
지난달 30일 본지와 만난 안데르스 하그펠트 스웨덴 웁살라대학 총장은 “노벨상을 받으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연구자가 자기 흥미와 창의성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초 연구비가 필수”라고 말했다.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인 하그펠트 총장은 2014년부터 노벨 화학상 선정 작업에 참여해 왔다. /이태경 기자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 이목이 스웨덴을 향한다.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訪韓)한 스웨덴의 웁살라대학 안데르스 하그펠트(Anders Hagfeldt·59) 총장은 노벨 화학·물리·경제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2014년부터 노벨 화학상 선정 작업에 참여해 왔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실무 작업은 분야별 5명 규모의 노벨위원회(Committee)가 하는데, 이들은 1년간 전 세계 학자들이 추천한 사람들을 파악하고 심사해 후보를 추린다. 이때 위원회는 학자 수십 명과 심사 과정을 공유하며 의견을 나눈다. 하그펠트 총장도 자문 역할을 하는 학자 그룹에 속해 있다. 학기당 3차례씩 만나 노벨상 관련 회의를 한다고 한다.

하그펠트 총장이 2021년부터 이끌고 있는 웁살라대학은 1477년 설립 이래 노벨상 수상자를 8명 배출한 명문 대학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난 하그펠트 총장은 ‘노벨상 수상의 비결’을 묻자 “노벨상 수상자가 어떻게 선정되는지는 50년간 비밀이기 때문에 말할 순 없다”면서도 “내가 노벨상 선정 과정에 참여하며 알게 된 건 ‘좋은 연구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벨상은 천재 한 명이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러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 환경 속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은 자기가 흥미 있는 것을 연구하다 보니 상을 받게 된 거지, 애초에 상 받기 위해서 연구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또 중요하게 꼽는 건 ‘장기적으로 기초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비’다. 그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아이디어로는 응용 분야 연구 지원금은 따기 쉽지 않다”면서 “연구자가 자기 흥미와 창의성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초 연구비가 필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미국·유럽이 넉넉한 기초 연구비를 댔고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뜻이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로도 “장기적으로 연구비 걱정 없이 기초 연구를 할 연구 환경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학자들이 국제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들었다. 새로운 연구를 위해선 한국 학자 혼자선 안 되고 해외 학자들과 국제 협력을 활발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외국 학자들을 한국에 초빙할 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 박사 후 연구원들을 외국으로 내보내고 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국제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그펠트 총장은 앞으로 더 다양한 국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갈수록 특정 국가에서 연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연구가 늘어나고, 국가별 연구비 투입 상황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묻자 “매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구체적 예견은 조심스럽다”면서도 “한국 정부는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은 예산을 연구에 투입하고 있고, 흥미로운 연구도 많이 하고 있으니 당연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에서 노벨상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지 않으냐”면서 “한국의 기술 발전은 1950년대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진짜 훌륭한 사례”라고 했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그펠트 총장은 “10년 전과 비교해 한국은 K팝·K드라마로 굉장히 인기 있는 국가가 됐다”면서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스웨덴 학생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그펠트 총장은 ‘챗GPT’ 등 AI(인공지능) 등장으로 ‘대학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데 대해 “그럴수록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갈수록 가짜 뉴스, 프로파간다(이념 선전)가 넘쳐나는데, 그걸 사람들이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 사회에 두려움이 퍼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정보에 의문을 품고, 재차 확인하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걸 대학에서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이 무엇인지 항상 의문을 품고 여러 번 테스트한다. 과학이 만들어지는 이런 과정을 대학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전 방문 학자로 한국에 머물기도 한 하그펠트 총장은 이번에 웁살라대가 주관하는 ‘린네 메달’을 한림대의료원 윤대원(78) 이사장에게 주려고 방한했다. 윤 이사장은 2007년부터 웁살라대와 한림대의료원 간 교류를 이끌어 양국의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린네 메달 수상자로 결정됐다. 코로나로 수여식을 못 하다 이날 한국에서 수여식이 열렸다. 린네 메달은 동식물 분류법을 처음 만든 생물학자 칼 폰 린네(Linnaeus)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2006년 만든 상으로, 매년 과학 분야에서 우수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준다. 린네는 웁살라대 총장을 지냈다.

안데르스 하그펠트는…

웁살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웁살라대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EPFL) 물리화학부 교수를 지냈다.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태양연료를 주로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2021년부터 웁살라대 총장을 맡고 있다. 스웨덴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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