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위기감 오죽했으면… 봉화·영양 ‘인구 50명’ 쟁탈전
‘인구 50명’을 놓고, 경북 봉화군과 영양군 사이에서 한바탕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29년 전 지어진 50명 수용 규모의 군(軍) 관사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일월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붙어 있는 봉화군과 영양군은 최근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봉화군은 한때 인구 10만명이 넘는 경북의 대표적 농업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점차 줄어 지난 4월 기준 3만39명으로 급감했다.
영양군은 울릉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 1970년대까지만 해도 7만명 수준이었는데, 지난 4월 기준으로 1만5920명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전국 시·군·구 22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산업연구원의 지방소멸지수(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에서 봉화군은 0.451, 영양군은 0.473으로 두 곳 다 0.5 미만이어서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문제의 군 관사는 1965년 영양군 일월면에 들어선 공군 레이더 기지의 장병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1994년 관사 14동과 간부 숙소 28동 규모로 지어졌는데, 부대에서 22.5㎞나 떨어져 있는 봉화군 춘양면에 지어졌다. 당시 군은 장병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철도와 역(驛)이 있는 봉화에 지었다고 한다.
최근 30년 동안 가만히 있던 영양군이 먼저 도발했다. 지난 3월 공군참모총장 앞으로 ‘공군 군인 관사 영양군 이전 건의’ 공문을 보낸 것이다. 새 관사 부지를 영양 읍내에 마련해 주고 관사 신축 건립비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봉화군 관사를 매입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관사도 없이 부대만 있어, 58년 동안 개발 제한 등 불이익을 감내했다”며 “군장병은 그냥 인구 유입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유입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봉화군은 발끈했다. 인구 3만 벽이 붕괴될 위기에 있는 봉화군 입장에선 장병 50명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봉화군의회는 지난달 25일 ‘춘양면 군인 관사 이전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방부와 공군사령부는 군인 관사 영양군 이전 계획을 전면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춘양면 주민 50여 명은 관사 이전 반대 결의 대회를 열었고, 주민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옆동네에 있는 인구를 빼내 인구를 늘리려는 영양군의 발상은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성로 안동대 행정학과 교수는 “봉화와 영양의 다툼은 지역 소멸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비슷한 처지의 지자체들 사이에선 앞으로 이런 인구 확보 전쟁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두 군은 정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1조~2조원이 투입되는 양수발전소 유치전도 펼치고 있다. 양수발전소는 환경 훼손과 개발 제한 등을 불러오는 기피 시설인데도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 꼭 유치해야 한다고 서로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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