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회서 1승 거둘 날 꿈꿔요”

의정부=임보미 기자 2023. 6.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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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고교야구 막내팀 서울자동차고 성장기
2021년 창단한 서울자동차고 야구부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경기 의정부 녹양야구장에서 연습 경기를 앞두고 야구 방망이와 공으로 학교 이름을 쓰고 남긴 기념사진. 선수 2명으로 시작한 서울자동차고 야구부는 출전 기회를 찾아온 이들이 하나둘 모여 이제는 정식 등록선수 39명을 비롯해 총 40명이 넘는다. 의정부=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고교야구 막내’ 서울자동차고의 1승 도전기

2021년 창단한 서울자동차고 야구부는 아직 전국대회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지난달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첫 승에 도전했지만 첫 판에서 탈락했다. 이들의 ‘1승을 좇는 모험’을 소개한다.》



“카센터인가?”

서울자동차고 야구부가 고교야구 주말리그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난해에는 이렇게 놀리던 상대팀 감독도 있었다. 고교야구 경기에서는 팀 이름을 쓸 때 학교 이름 끝에 있는 ‘고’자를 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면 서울자동차고는 ‘서울자동차’가 된다. 학교 이름을 세 글자밖에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동차’로 쓰기도 한다.

서울자동차고 선수단이 경기장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수군대는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다. 서울자동차고 유니폼은 현대자동차그룹이 모기업인 프로야구 KIA와 완전히 똑같다. 이 학교 이우종 감독은 “KIA와 연관은 1도 없다”며 웃은 뒤 “야구부 창단을 도맡아 주신 차상우 교무부장께서 KIA 팬이시다. 그래서 자동차가 연상되는 팀이니 똑같은 디자인으로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자동차고는 지난해와 올해 전반기 주말리그에서 총 6승(13패)을 거뒀지만 4대 메이저 전국대회(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봉황기)에서는 아직 1승도 없다. 반면 서울자동차고와 함께 ‘고교야구 막내 트리오’를 이루는 경민IT고와 덕적고는 지난해 황금사자기에서 각각 1승을 거뒀다.

그러나 주말리그 합류 2년 차가 되면서 서울자동차고는 이제 상대 학교에서 마냥 얕잡아 볼 수 없는 팀이 됐다. 서울 지역 대회인 선수촌병원장기에서는 4강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지금도 전력이 약한 것은 맞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상대 감독들 눈에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으로 비쳤다면 올해는 ‘이길 수는 있어도 쉽지는 않은 팀’이란 인식 정도는 생겼다”고 전했다.

● 꼭 하고 싶습니다. ‘전국대회 1승’

그런 의미에서 올해 황금사자기를 맞이하는 서울자동차고 선수들의 의지는 남달랐다. 대진운도 좋았다. 대진표 추첨 결과 부전승으로 1회전을 통과하면서 곧바로 32강에 합류한 것. 한 경기만 이기면 메이저 대회 16강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고교야구 선수 대부분은 프로팀 입단이 아니라 대학 진학을 꿈꾼다. 그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인 서울’ 대학 가운데는 야구 특기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자격 조건을 제시하는 일이 많다. 황금사자기에서 한 경기만 이기면 서울자동차고 선수들에게 인 서울 대학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었다.

서울자동차고 2루수 이재성이 지난달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7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2회전에서 8회 상대팀 세광고 투수 김연주의 견제 때 1루로 귀루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한 이재성은 “한 번 시작한 야구를 끝까지 해보고 싶어 전학을 왔다. 어떻게 끝나든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운명의 경기는 지난달 1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렸다. 상대는 1회전에서 충훈고를 4-2로 꺾고 올라온 세광고였다. 서울자동차고 선발 투수 이의태(3학년)는 이날 6회초까지 안타 1개, 볼넷 1개만 내주며 세광고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6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는 상대 1번 타자 김태현(3학년)이 때린 땅볼 타구를 잡은 뒤 직접 1루로 뛰어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기도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프로팀 스카우트는 “투수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 경기 1루심을 보고 있던 김찬민 심판이 ‘세이프’를 선언하자 이의태는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그러면서 결국 아웃 판정을 끌어냈다. 삼자범퇴로 6회를 마감한 이의태는 7회에도 첫 타자를 잡아냈지만 박지환(3학년)에게 안타를 내준 데 이어 박준성(3학년)에게 3루타를 맞으면서 점수를 허용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9회에도 1실점 한 서울자동차고는 결국 0-2로 패했다.

서울자동차고 이의태가 세광고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의태는 “애들과 정말 그 한 경기에 목숨 걸듯 간절히 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저도 중학교 1학년 시절 이후 처음 해봤다”며 웃었다. 그러고는 “주장 노상현(3학년)이 경기일 아침에 ‘7이닝 무실점을 해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걸 다 못 채운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 경기에 서울자동차고 1번 타자로 출전한 노상현은 “황금사자기 때 선수들의 집중력이 남달랐다. 이번 황금사자기 때는 정말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면서 “전국대회 8강 이후부터는 TV 중계를 탈 수 있다. 초중학교 때도 TV 중계를 탄 적이 있는데 두 경기 모두 실책을 범했다. 꼭 기회를 만들어 부모님께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 “경기 뛰려고 왔어요.”

이의태(서울컨벤션고)와 노상현(우신고) 모두 다른 고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서울자동차고로 전학을 온 케이스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등록 절차를 마친 서울자동차고 선수 39명 가운데 61.5%인 24명이 전학생 출신이다.

이 가운데는 이 감독의 아들인 이병현(3학년)도 있다. 원래 장충고에서 야구를 했던 이병현은 2021년 3월 아버지가 서울자동차고 창단 감독을 맡기로 하면서 1호 영입 선수가 됐다. 2호는 이 감독의 봉천초 감독 시절 제자인 조재호(졸업)였다.

이 감독은 이후 서울·경기 지역 중학교 야구부를 돌아다니면서 부 창단 소식을 알리는 전단을 돌렸다. 이와 함께 고교 연습경기 현장을 찾아 ‘전학생 스카우트’ 작업도 병행했다. 이 감독은 “야구장에 가보면 경기는 못 뛰고 스피드건을 쏘거나 기록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가서 ‘너 총 쏘려고 야구부 왔냐? 나랑 가서 야구하자’ 이렇게 꼬셨다”며 웃었다.

이 감독은 그해 9월까지 선수 14명을 모은 뒤 조촐한 창단식을 열었다. 팀을 한 번 만들어 놓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수들이 찾아왔다. 포수 유석현(3학년)을 비롯한 충암고 동기 3명이 차례차례 서울자동차고로 학교를 옮겼고, 리틀야구 시절 유석현과 배터리를 이뤘던 정지호(3학년)도 덕수고를 떠나 서울자동차고에 합류했다.

이제 서울자동차고 연습 경기 때는 입단 테스트를 받겠다며 찾아온 학생이 신기하지 않은 존재가 됐다. 지난달 30일 상우고와 연습 경기를 치른 경기 의정부시 녹양야구장에도 서울자동차고의 붉은색 유니폼 사이에 홀로 남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한 학부모는 “(학부모회) 회장님이랑 저 학생 아버님이랑 전화번호 주고받는 걸 보니 전학 오기로 결정한 모양”이라며 “여기 학부모들은 선수들 얼굴만 봐도 어느 학교 출신 누구인지 다 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경기에 못 나가서 우리 학교로 오고 싶다는 선수는 실력과 무관하게 다 받아줬다. 다만 친구들을 괴롭혔거나 술, 담배 등으로 문제를 일으켜 전학을 알아보던 학생들은 선수 한 명이 아무리 급했던 때에도 다 돌려보냈다”며 “야구 못하는 선수는 가르칠 수 있어도 기본 인성이 안 된 선수는 못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 후회없는 야구

서울자동차고는 일반 고교와 다른 학력 인정 학교다. 이 때문에 학업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야구에 신경을 더 많이 쓸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재성(3학년)처럼 야구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이 학교를 찾는 선수도 적지 않다.

거꾸로 원래 다니던 학교가 학생이 너무 부족해 서울자동차고로 전학을 오는 케이스도 있다. 2루수 이재성은 설악고에서 경기를 너무 많이 뛰느라 몸에 무리가 왔다. 이재성은 “몸이 아파 쉬는 동안 야구를 아예 관두려 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고 싶어 전학을 왔다. 내 야구가 어떻게 끝나도 이제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배명고에 입학했다가 원주고를 거쳐 서울자동차고로 옮긴 우예준은 올해 ‘고교 4학년’이다. 3학년이던 지난해 기록은 1경기 출전에 3분의 2이닝 동안 7실점(6자책점)이 전부였다. 우예준은 “후회 없이 야구 생활을 끝내고 싶다”며 졸업 대신 유급과 전학을 선택했다.

순천효천고에 다니다가 원주고로 옮긴 뒤 우예준과 함께 서울자동차고로 전학을 온 이진용(3학년)은 “야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직 홈런을 못 쳐봤다. 서울 배명중 2학년 때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은 한 번 쳐봤는데 외야 담장 바깥으로 공을 날려본 건 ‘0회’다. 담장을 꼭 한 번 넘겨 보고 고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라고 이대로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다. 서울자동차고의 유일한 홈런 타자이자 125kg의 거구인 양재문(3학년)은 “야구를 오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고등학생쯤 되면 선수들도 자기가 바로 프로에 도전해볼 실력인지, 야구로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졸업하면 아예 다른 쪽으로 가야 할지 다 안다”면서 “우리는 같이 밥 먹고 같이 훈련하는 한식구니까 가족끼리 서로 돕고 이해하듯 같이 운동하는 동안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배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정부=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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