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뭉게뭉게 구름, 유영하는 학… 병풍 안 신비한 숲으로 떠나요

벼룻물
이진희 지음·그림 | 고래뱃속 | 32쪽 | 1만5000원
방 안에 묵향(墨香)이 가득 스며 있었다. ‘아버지가 밤새 그림을 그리셨나 보다.’ 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와 함께 초겨울 새벽 산길을 오른다. 벼루에 먹을 갈 샘물을 뜨러 가는 길, 차가운 바람이 청량하다.
하얀 구름이 산과 계곡을 쓰다듬으며 타고 넘는다. 푸드득 소리에 고개를 드니 그 구름들 사이로 학이 날갯짓한다. 해 뜨기 전 깊은 산속, 옹달샘은 산의 기운을 담은 듯 푸릇푸릇 맑다. 물가에 꼬물거리던 거북이는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의젓하게 제 길을 간다. “영지버섯이 썩은 나무에서 자라요!” 놀라는 딸에게 아버지는 웃으며 말한다. “그래, 진흙탕에서 피어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도 닮았지.”

그리고 저 멀리 숲 속에서 바스락, 또 바스락. 금관인 듯 신비로운 뿔을 머리에 얹은 사슴과 눈이 마주친다. 멀리 해가 떠오르고, 산속 세상은 어둑하던 새벽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아버지와 딸을 반긴다.
세계의 신비는 ‘반지의 제왕’의 숲속이나 해리 포터의 마법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 산, 물, 바위, 구름, 소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이 책은 박물관의 오래된 병풍에서나 보던 장생도(長生圖) 속 우리 동식물과 자연의 풍경을 불러내 자유를 주고 숨을 불어넣는다. 조상들이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꼈던 우리 자연의 신비가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마음과도 공명을 일으킨다.

할머니는 자식, 손주 생일이면 건강을 빌며 산속 옹달샘 물을 떠다 미역국을 끓였다. 아버지와 딸은 그 할머니의 마음을 기억하며, 새벽 산에서 떠온 샘물을 벼루에 담아 먹을 간다. 그런 정성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정갈한 본문과 함께 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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