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달러 석유 없었다면 반군은 카다피 못 이겼다
채민기 기자 2023. 6. 3. 03:04
얼굴 없는 중개자들
하비에르 블라스·잭 파시 지음|김정혜 옮김|알키|604쪽|2만5000원
세계 최대 석유 중개 업체 비톨의 최고경영자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리비아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다피와 대치한 반군에 연료를 공급하는 거래를 타진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금은 원유로 받을 계획이었다.
카다피 축출 이후 리비아는 다시 내전에 휘말렸다. 블룸버그뉴스의 원자재 담당 기자인 두 저자는 그런 결과와 별개로 반박 불가능한 사실이 있다고 강조한다. “10억달러어치의 연료유가 없었다면 반군의 패배는 확실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으로는 독재자에게 맞서 군사작전을 벌일 수 없다.
리비아뿐 아니다. 2014년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자 원자재 공룡들이 미래의 석유 유통권을 대가로 러시아에 돈을 댔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불투명한 광물 거래를 통해 특정 정치 세력의 선거 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원자재상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의 세계는 은밀하다. 직접 진행한 관련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여러 사람의 기억이 엇갈릴 땐 그 사실을 밝히는 방식으로 퍼즐을 맞춰 나간다. 영화 같은 박진감이 있지만 오직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원자재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면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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