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24] Where is the groomzilla?
필리핀의 어느 섬, 결혼식 전야 파티가 한창이다. 신부의 엄마 르나타가 신부에게 슬쩍 다가와서 묻는다. “완벽주의 신랑님은 어디 계신다니?(Where is the groomzilla?)” 신부 달시(제니퍼 로페즈 분)는 엄마의 비아냥에 짜증이 난다. “톰은 완벽주의 아니에요. 세부적인 것까지 완벽하게 하려는 거지.(Tom is not a groomzilla, okay? He’s just committed to making every detail perfect.)” 달시는 말해 놓고도 뭔가 똑같은 소리 같아서 속이 답답하다. 영화 ‘샷건 웨딩(Shotgun Wedding∙2023∙사진)’의 한 장면이다.
‘샷건 웨딩(Shotgun Wedding)’은 혼전 임신한 딸의 아빠가 샷건을 들고 남자를 찾아가 결혼으로 책임지라며 윽박지르는 광경에서 비롯한 말로 종종 ‘속도위반 결혼’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달시는 혼전 임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톰(조시 더하멜 분)과 결혼을 앞두고 끝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결혼식 준비에 과하게 집착하는 톰에게 맞추느라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완벽주의 신랑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groomzilla’란 단어는 톰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결혼식을 지나치게 꼼꼼히 준비하고 예식과 관련한 모든 걸 혼자 결정하려고 하는 신랑을 말한다.
결국 갈등으로 감정이 폭발한 두 사람은 결혼식 직전에 파혼까지 치닫고 결혼을 취소하려 한다. 하지만 예식장으로 돌아와 보니 하객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해적들에게 잡혀 갇혀 있다. 달시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런 것들 다 상관없어.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이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None of it matters anyway. Because everyone we love could die.) 방금 전까지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이제 영화 제목처럼 샷건을 들고 하객들을 구하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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