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과 인류애… 사람 냄새 나는 ‘DEI 경영’이 성공 이끈다

김민정 기자 2023. 6.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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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직 심리학자인 저자, 기업 9곳 CEO 인터뷰·사례 모아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엘라 F. 워싱턴 지음|이상원 옮김|갈매나무|332쪽|2만1000원

메신저 및 협업 툴 개발 회사인 슬랙의 CEO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지난 2020년 5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감정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무릎에 눌려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 뒤였다. 기업 내 흑인과 유색인종 직원이 받았을 충격을 감안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준 것이다. 심리 상담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의 조직 심리학자이자 컨설팅 회사 운영자인 엘라 F. 워싱턴이 쓴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슬랙 직원들은 경영자의 공감 어린 조치에 “내 직장은 안전지대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다정함’ ‘인류애’ ‘우정’ ‘자기다움’…. 이런 인간적인 단어들이 앞으로 기업이 지향할 새로운 혁신의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선 낯설기만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일터에 ‘포용’이라는 사람 냄새 나는 덕목을 장착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 경영이다.

이 책은 DEI를 통해 일하기 좋은 기업인 동시에 성장하는 기업이 된 9개 기업의 사례와 경영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DEI를 안내한다. 슬랙을 비롯해 세계적인 회계 컨설팅 기업인 PwC,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소매업체 베스트 바이, 인도에서 둘째로 규모가 큰 IT 기업 인포시스, 미국 최대 체인 식당 데니스, 미국 위스키 제조업체 엉클 니어리스트, 프랑스의 식품 서비스 회사 소덱소 등이 DEI를 경영에 적용하며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DEI는 기존 기업들이 강조해 온 ‘다양성’과 ‘형평성’이라는 덕목에 ‘포용’을 더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포용’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직원의 삶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직원이 일터에서 더 자기답고, 가치를 존중받으며,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경영자가 다정하고 세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서구 사회에선 이런 ‘다정한 조직’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으며,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80%가 목표로 DEI 또는 D&I(다양성과 포용)를 언급하고 있다.

직장을 ‘일하기 위해 모인 조직’ ‘성과로 말하는 곳’으로만 보는 기존 관점에선, “학교 동아리도 아니고 왜 직원에게 다정하기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왜일까?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다.” 저자는 기업이 처한 진짜 위기는 매출 감소가 아니라 ‘조용한 퇴직자’ 증가 같은 내부 위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회사를 다니긴 하지만 회사의 목표를 내 일로 여기지 않고 최소한의 일만 하며 내 삶에 집중하는 ‘조용한 퇴사’가 늘며 기업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눈길이 가는 건 ‘포용’의 덕목을 적용한 경영자들의 접근법이다.

첫째는, 인류애를 가지고 직원을 대한다. 저자는 “DEI의 중심은 인류애다. 이를 일터에 도입하는 일은 늘 도전이지만, 직장은 우리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핵심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는 직원들이 집에 있을 때처럼 자기답고 솔직할 수 있어야 한다. 휴버트 졸리 전(前) 베스트 바이 CEO는 “회사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개인들이 모인 인간적인 조직이다. 모두가 소속감을 느끼며 본래의 자기 모습이 될 수 있고 거기에 회사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아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직원들과 우정 혹은 유대감을 쌓는 것. 폰 위버 엉클 니어리스트 창업자는 “회사 문화는 맥주를 사주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다”며 기업에 필요한 것이 ‘우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적인 조직을 만들면 업무가 느슨해지는 건 아닐까. 이 우려에는 마지막 넷째 항목이 답이 될 수 있다. 조직이 다정해지는 것은 방치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크리스 슈미트 전 모스 애덤스 CEO는 “적절한 교육과 코칭, 비공식적 멘토링을 제공하면서 충분히 지원받고 있는 느낌을 준다. 돛단배에 태워 망망대해로 내보내 표류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한다”고 했다. 베스트 바이는 졸리 전 CEO가 경영을 맡기 전인 2011년 부진을 겪으며 회사 주식 가치가 크게 하락했으나, 졸리의 ‘인간적인 경영법’ 도입 후 몇 년 만에 이직률이 떨어지고 부진을 털어내며 부활에 성공했다.

저자는 “우리는 살면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으며 따라서 그 공간에서 진정으로 번영하는 것이 인간적 권리”라며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일터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꿈꾸고 꿈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피고용인이 나서서 직장을 바꾸고 ‘유토피아’를 만드는 일이 과연 우리 현실에서 가능할지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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