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戰場’서 살아남은 이 여자 “능력 보여주고, 약속 철저히 지켰죠”

이옥진 기자 2023. 6.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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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美싱크탱크 장벽 넘었다
워싱턴의 파워우먼 오미연
오미연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소장은 세계 모든 국가가 날마다 전쟁 같은 외교를 펼치는 미국 워싱턴에서 손꼽히는 한국 전문가다. “한국의 이익을 늘리려면 가능한 한 많은 이해집단과 교류해야 한다. 워싱턴을 움직이는 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는 북한과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전제조건 없이 첫 만남을 할 수 있다.”

2017년 12월 12일 렉스 틸러슨 당시 미 국무장관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아무 조건 없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국내외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당시 CNN은 “미국이 공개적인 초대장을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틸러슨 장관이 발언한 자리는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이 워싱턴DC에서 주최한 토론회. 윌버 로스 상무장관도 참석했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포럼에 미국 현직 장관들이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 기획자는 오미연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이었다.

그는 이듬해 애틀랜틱 카운슬의 전략·안보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이 됐다. 이 싱크탱크에 합류한 지 2년 만의 초고속 승진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워싱턴 싱크탱크 사회의 높은 장벽을 뚫었다” “‘아시아계’와 ‘여성’이라는 두 허들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에서 손꼽히는 한국 전문가인 그는 현재 애틀랜틱 카운슬 국장,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국학 프로그램 소장, 랜드연구소 겸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5월 중순 랜드연구소 일정으로 방한한 그와 연락이 닿았다. 외교 이슈에 대해 말할 땐 눈빛이 날카로웠지만, ‘세계 무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표정이 풀렸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단 도전하기를! 설령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성공의 밑거름이 될 테니까.”

오미연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소장./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韓외교 좋은 성과 올리고 있다”

-4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외교 일정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숨가쁜 나날이다.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 G7 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까지…. 우선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미 동맹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 계획 메커니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 현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줬다고 본다. 협력 폭도 안보를 넘어 공급망, 테크놀로지 등으로 확장됐다. 지금은 새로운 차원의 동맹 개념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한·일 관계가 정상화된 것도 한·미·일 협력 틀이 복원됐다는 점에서 뜻깊다.”

-야당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굴종 외교’라고 혹평했는데.

“나는 최근 외교 무대에서 한국이 굉장히 좋은 성과를 올렸다고 본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 정책의 핵심 축은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의 다자 협력 구축인데, 여기서 한·미·일 협력이 매우 중요한 ‘키(key)’다. 이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건설적 비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을 보는 시선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많은 ‘코리아 워처(Korea watcher)’가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봤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회의적 시각이 팽배한 상황에서 나온 첫 해답이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워싱턴 선언이다. 또 과거에 비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대만 문제 등 국제 안보 주요 이슈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주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성적을 매긴다면.

“곤란한 질문이다. 다만 이번 방미 때 윤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아메리칸 파이’ 열창은 반응이 정말 좋았다. 미 관리들이 내게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대통령의 개인기는 확실히 인정받은 것 같다. 또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려운 국내 정치 여건에도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의지를 갖고 결단했다는 호평이 나온다.”

-365일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워싱턴에서 우리나라 입지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외교에 투입되는 자원도 그렇고, 효율성 면에서도 그렇다. 대사관 직원 수만 봐도 일본이 한국의 두 배다. 워싱턴에 있는 다양한 이해집단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오진 않더라도, 진짜 곤경에 처할 때 (맺어 놓은) 그 네트워크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워싱턴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의명분, 가치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서 ‘외교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입장에서 집권당이 바뀌지 않는 일본은 외교하기 편한 나라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여당이 바뀌면 확 바뀌는, 변수가 많은 나라다. 세부 정책은 바뀔 수 있지만, 노선은 일관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

◇토종 한국 여성, 워싱턴에서 살아남다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오미연은 연세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국제 무대를 꿈꿨지만, ‘미국 싱크탱크에서 일해야겠다’는 결심이 든 건 2014년 브루킹스연구소에 몸담았을 때라고 했다. “브라운백 런치 미팅(간단한 점심식사와 함께 토론을 하는 회의)을 하는데, 세계 지도를 탁 펼쳐놓고 하더라. 한반도 지도만 봤던 한국 시절이 생각나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국 싱크탱크는 ‘권력의 제5부(府)’라 불리며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동양인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무모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말도 안 된다며 말렸다. 그런데 원래 성격이 도전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하하. 2016년 당시 아시아 관련 프로그램이 아예 없던 애틀랜틱 카운슬에 아시아 태평양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하게 됐다.”

2017년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주최한 콘퍼런스. 가운데가 오미연이다. /애틀랜틱 카운슬

-싱크탱크에선 어떤 일들을 하나.

“기본적으로 싱크탱크는 국내외 주요 이슈를 연구·분석해 아이디어를 만들고 정책을 제안하는 기관이다. 콘퍼런스나 포럼을 열어 여러 정책 이슈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한국 관련 일로 좁히면, 한국국제교류재단 등 한국 기관들과 파트너십으로 연례 콘퍼런스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한국에 들어와 정부 기관과 면담하고, 반대로 한국 주요 인사가 워싱턴에 왔을 때 면담한다. 한·미 양국 정부 관리들의 소통 창구 역할도 한다.

-애틀랜틱 카운슬에 합류한 직후 공저한 전략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미 행정부에 제언하는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담은 보고서였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안보 동맹을 새롭게 정비, 강화하고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 냉정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북 전략으론 적극적 외교 노력과 억지력 강화라는 투트랙 노선을 제안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아태 외교 구상이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7년 토론회에 현직 장관을 두 명이나 불렀는데, 비법이 무엇인가.

“첫째는 ‘그냥 해보자’고 생각한 것? 너무 싱거운가, 하하. 사실 한국 관련 토론회에 핵심 장관이 두 명이나 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토론회 주제가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이었기 때문에 국무·상무 장관이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밀어붙였다. 둘째는 워싱턴의 인적 네트워크를 정확히 안 것이다. 장관 오피스에 초청장을 보낸다고 장관이 (토론회에) 오지는 않는다. 어떤 루트로 초청장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참석했을 때 실익이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를 낼 수 있는지 등을 소상히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측근이 누구인지 파악했고, 그를 통해 초청장을 전달했다.”

-그 측근 인사가 누구인가.

“비밀이다(웃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바깥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활용하는 편이다.”

-바로 이듬해 국장으로 승진했다.

“승진하기까지 정말 치열했다. 싱크탱크는 성과를 정책 반영과 펀드레이징(모금)으로 측정한다. 내가 낸 성과를 토대로 상부와 협상했다. ‘사실상 내가 국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왜 국장을 시켜주지 않느냐’고 따졌고, 마지막엔 ‘승진시켜주지 않으면 떠나겠다’고까지 했다. 그야말로 쟁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국장이 되고 나니 더 싸울 일이 많더라. 백인 남성 위주 사회에서 나는 원래 그들의 경쟁자가 아니었는데, (국장이 되고 나니) 갑자기 경쟁자가 돼버렸다. 그들이 당연히 갖는 것을 나는 싸워서 이겨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차별을 많이 겪었나.

“백악관에 브리핑을 하러 갔는데 나하고만 눈을 안 마주치던 관리가 있었다.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반대로 동양인 여성이라서 여러 곳에서 다양성 및 포용위원회(DIC)와 같은 곳의 장(長)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본업이 바빠 다 거절했다.”

-워싱턴에서 살아남은 비결이라면.

“사람들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신뢰를 쌓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능력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아무튼, 주말>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미연.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2021년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임명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모교로부터 기회가 왔다. ‘한국학 프로그램’ 소장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 출신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주로 (한국학을) 공부했다면, 요즘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공부하고 있다.”

◇마음에 새긴 아버지 말씀 “세상은 넓단다”

그는 한창 바쁠 때 하루를 15분 단위로 쪼개서 썼다고 했다. “싱크탱크는 미팅, 미팅, 미팅의 연속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모든 미팅이 화상회의로 대체되면서 더 바빠졌다. 낮에는 미국과, 밤에는 아시아와 소통했다.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9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바쁜 일상이 지치지는 않나.

“전혀. 내 기질 자체가 바쁘게 사는 걸 즐기는 타입인 것 같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외교 정책을 설계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실제 정책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는 것도 뿌듯하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쉴 때는 무조건 머리를 비운다. 남편과 운동도 하고, 요리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한다.”

-대학까지 한국에서 나왔는데, 언어 장벽은 없었나.

“내 영어가 원어민처럼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영어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싱크탱크의 일이란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갖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참고서나 문제집을 갖고 하진 않았다. 유학 시절 사람들과 대화하고 부딪치면서 배운 게 머리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아무튼, 주말>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미연.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소위 ‘금수저’인가. 유년 시절은 어땠나.

“금수저는 전혀 아니다.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여자라고 꼭 결혼할 필요 없다. 세상은 넓으니까 큰물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아버지 말씀 덕분인지, 언제나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남편의 전폭적 지지도 항상 큰 힘이 됐다.”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로서 당신의 역할은.

“워싱턴과 서울을 잇는 가교자. 한·미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일조한 전문가로 남고 싶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한국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도전 자체가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한 뒤에, 둘의 공통분모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실패하더라도 일단 도전하라. 실패에서 배운 것이 나중에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

-10년 전처럼 지금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

“최근 랜드연구소 일을 새로 시작했다. 미국의 군사 관련 연구를 가장 깊이 있고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그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또 여태까지는 외교 정책을 연구하는 위치에만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직접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 외교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한 뭔가를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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