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06] 프로에 대하여

백영옥 소설가 2023. 6.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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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디자인랩·Midjourney

10년 전, 자기 분야에서 가장 일 잘하는 남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말미에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도 거의 모든 사람 답이 ‘시간’이었다. 하루 24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사람에 따라서 시간의 결과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프로는 시간을 잘 경영하는 사람이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밑을 상상해보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발밑도 비슷하다. 내가 여러 분야 프로들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훨씬 더 절박하다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가로 살기 위해 처음 필요한 건 재능이고, 이후는 체력이라고 말했다. 고치고 고쳐서 더는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고치는 사람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할란 엘리슨의 말처럼 “관건은 작가 되기가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기”다.

쉽게 쓴 것처럼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쉽게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퇴고와 연습이 필요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는 프로가 듣는 최고의 상찬 중 하나다. 예전에는 열정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뜨거운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 열정이 포기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서늘한 인내심’이라는 걸 안다.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원치 않는 많은 글을 쓰고, 원하는 옷을 입기 위해 모델은 혹독한 식단 조절을 한다. “영감을 찾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는 소설가 필립 로스의 말처럼 프로는 ‘그냥’ 하는 사람들이다. ‘그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열정의 다른 이름인 ‘인내’가 만든다. 좋아하는 곳에 가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더 많은 곳에 기꺼이 가 본 사람, 우리가 그들을 프로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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