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도, 뵈브 클리코도 “힙해진 한옥 문화재를 찾아라”
세계적인 브랜드들
한옥을 행사 트렌드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민속문화재 14호 휘겸재. 가회동 한씨가옥으로도 불리는 이곳 본채에 지난달 15일 큰 상이 펴졌다.
프랑스에서 온 피에르 카스나브 뵈브 클리코 와인 메이커와 그가 초대한 30여 명의 손님이 앉았다. 앞에는 신선한 아스파라거스와 완두콩 등으로 만든 음식과 프랑스 샴페인 뵈브 클리코의 상위 레벨인 ‘라그랑담 2015′가 놓였다. 라그랑담 2015의 출시를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휘겸재 입구에는 이탈리아의 아티스트 파올라 파로네토가 작업한 노란색 라벨이 인상적인 라그랑담이 한옥의 서까래 밑에 놓였다. 원목의 따뜻한 색감과 라벨의 디자인이 하나의 작품처럼 어울렸다. 뵈브 클리코 관계자는 “샴페인이 아트갤러리작품처럼 보이길 원했다”며 “라그랑담의 패키지와 잘 어울리는 공간을 찾다 이곳을 선택했다”고 했다.
◇한옥 문화재를 섭외하라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서울에서 행사 장소로 선호하는 곳은 청담동 레스토랑도, 성수동 카페도 아니다. 한옥으로 된 문화재다. 지난달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처럼 젊은이들은 한옥 문화재가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이미지나 광고 모델과 어울리면서도 행사를 하기 좋고 다른 장소와는 차별화된 유서 깊은 한옥들을 찾아 섭외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옥들도 각자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논란을 피하면서 더 돋보이게 해줄 기업을 고르느라 고심 중이다.
대표적인 곳이 지난해 9월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 휘겸재다. 조선 후기에 지어져 120여 년 역사를 가진 이곳은 개화기 이후 개량 주택의 초기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 휘겸재란 자신을 낮추고 굽히는 겸손한 생활 태도를 추구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넓은 집터를 넉넉히 채우는 행랑채와 전통적인 건축 방식과 근대적인 요소가 조화로운 본채로 구성돼 행사하기에 좋다. 한옥마을 중심가에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 뷰티 트래블 위크’ 행사를 시작으로 샤넬 VIP 고객을 위한 조향 마스터 클래스 행사 등이 열렸다.
◇RM·제니 등 화보 촬영
미국 CNN이 ‘아름다운 한국 명소’로 꼽은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도 많은 브랜드가 선호하는 장소다. 외국 귀빈들의 단골 방문 장소였으나 최근에는 엑소 카이의 구찌 화보, 방탄소년단 RM의 보그코리아 표지 등을 촬영한 곳으로 더 유명해졌다.
과거에는 연예인이 촬영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방탄소년단의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록’의 녹화도 진행할 만큼 많이 개방됐다는 평이다. 조성진은 박물관 내부에 피아노를 놓고 헨델의 미뉴에트 G단조를 연주했는데, 한옥 내에서의 피아노 울림이 더없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는 한옥의 이런 장점을 활용해 ‘스튜디오 기와’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광주 한옥마을, 남산골 한옥마을 등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랑랑이나 이루마, 미국 싱어송라이터인 제레미 주커와 영국 싱어송라이터 칼럼 스콧 등이 연주하며 노래한다. 이루마의 영상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돼 조회 수가 860만회에 이른다. 관계자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고, 촬영할 수 있을 만큼 크면서 의미도 있고 아름다운 공간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雲耕) 이재형 선생이 살던 서울 종로구 사직동 ‘운경고택’,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 등도 브랜드들이 좋아하는 장소다. 특히 당대를 주름잡던 정치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 윤경고택은 많은 숱한 제안서가 들어온다. 윤경고택 관계자는 “공간의 역사성과 기품 있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행사에 한해 허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샤넬은 모델인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와 제품이 잘 어울릴 장소를 찾다 양태오 태오양 스튜디오 대표의 자택인 서울 북촌 청송재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양 대표는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환상과 이국적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공간이 한옥이다 보니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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