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소서… 구원을 갈구하는 인간이라는 슬픈 조건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3. 6.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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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영민의 문장 속을 거닐다]
‘어둠 속 빛이 돼주시고…’ 가호를 비는 절박한 기도

“어둠 속에서는 밝은 빛이 돼 비춰주시고, 병으로 괴로워할 때는 뛰어난 의사가 돼주시고, 고난의 바다에서는 커다란 배가 돼 건너가게 해주시고, 춥고 배고플 때는 옷과 음식이 돼주시고, 빈곤 속에서는 여의보를 내어 베풀어 주시고, 벌을 받게 돼 손발이 묶여 있을 때는 모두 풀어주시고,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는 용서받게 해주시고, 가뭄이 들 때는 큰 단비를 내려주시고, 독약을 먹었을 때는 해독제를 주시고, 호랑이와 이리에게 둘러싸였을 때는 사자가 돼 쫓아 주시고, 새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는 큰 봉황이 돼 구해주시니, 어디에서든 구해주시지 않는 경우가 없다(於黑闇處/爲明灯照, 於病苦中/爲作醫王, 於苦海中/爲作舡度, 於饑寒中/爲作衣食, 於貧困中/作如意寶, 於枷鎖中/作解脫王, 於囚罪中/作赦書樂, 於枯河中/降大甘雨, 於毒藥中/作大良藥, 於狼虎中/作大獅子, 於衆鳥中/作大鳳凰, 於一切處/無不救度).”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나온 ‘성불원문(成佛願文)’ 중에서

충남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 길이 10m가 넘는 발원문 두루마리에는 1346년 불상 조성 당시 시주한 107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화재청

“나, 사실 요즘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고 있어.” 꽤 오래전,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선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모순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오랫동안 학생운동에 매진한 사람이었다.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정치인의 타락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수동적이고 나른한 태도였다. 억압과 모순에도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을 그는 참기 어려워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패배주의적이라고 여겼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면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새해 복 많이 쟁취해라.”

그러던 그가 말한 것이다. “나, 사실 요즘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고 있어.” 그가 이렇게 변한 데에는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영향이 컸다. 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이 이상향이 아니라는 것은 판명되었으나, 그 공백을 채울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살하고 있었고, 그 선배의 정신 역시 길을 잃었다. 일련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인간의 힘으로 뭔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를 믿을까, 불교를 믿을까 고심한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기독교가 나을 것 같아.”

“왜죠?” “대략 살펴보니, 불교는 내 안에 불성(佛性)이 있으므로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고, 기독교는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나같이 별거 아닌 놈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어? 아무래도 내겐 기독교가 맞는 것 같아.” 불교나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거친 이해가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는 예나 지금이나 내 큰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론을 내린 그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지금쯤은 복을 많이 쟁취, 아니 받았을까. 연락이 두절된 지 이미 오래. 그의 마음을 지금 헤아릴 길 없다.

한때 영웅적인 사회변혁을 꿈꾸다가 결국 환멸에 빠져버린 그 쓸쓸한 마음을 기억하기에, 그와 비슷한 쓸쓸하고도 애타는 마음을 볼 때마다 당시 생각이 떠오른다. 얼마 전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長谷寺)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腹藏遺物)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상을 만들 때는 사리나 불경 등 다양한 물건을 불상 안에 넣어 봉안하곤 하는데, 14세기에 만든 금동약사여래좌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 중에는 ‘성불원문’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성불하기를 바라는 글이다. 길이 약 10m, 너비 49㎝ 넓고 붉은 비단에 정갈한 소원이 가지런히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소원 끝에는 불상 조성 사업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어지러이 적혀 있다(이 복장물에서 확인되는 발원자는 1000여 명이다). 빼곡히 적힌 이름을 바라보며 애타게 뭔가를 바라지 않고는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이 인간 조건에 대해 생각한다.

‘성불원문’이 전하는 당시 소원 내용 대부분은, 약사여래에게 바라는 “열두 가지 큰 소원”(十二大願)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고자 하는 부처님으로서,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에게 애원하는 내용 중에는 질병을 고치고 장애가 있는 몸을 온전하게 해달라는 것도 있지만, 추위·더위와 같은 일상 문제와 형벌과 굶주림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도 있다. 저 소원을 빌던 이들에게는 사회적 문제조차도 변혁 대상이라기보다는 신의 가호가 필요한 심신의 질병이었던 것 같다.

심리적 문제로 여기던 자살마저도 실은 사회적 문제라고 뒤르켐 같은 사회학자가 그토록 역설했건만, 사회적 문제를 심신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다니! 사회과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은 개탄할지 모른다. 이런 수동적이고 퇴행적인 자세가 다 있나! 어디 사회과학도만 개탄하겠는가. 종교가 단순히 마음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 포괄한다고 종교인들이 그토록 역설했건만, 매사를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다니! 사회적 책임에 불타는 종교인이 개탄할지 모른다. 이러한 개탄에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떠올린다. 사회변혁을 꿈꾸다가 마음 깊은 곳을 다쳐 끝내 종교에 귀의하고 만 이의 마음을. 이것저것 해보다가 어느 깊은 곳이 무너져 결국 타력을 찾아 나선 이의 마음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저 기나긴 ‘성불원문’ 말미에 어지러이 적힌 사람들 이름을 무심하게 보기는 어렵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불상 조성에 기금을 낸 이들의 명단을 통해 당시 유력자들의 네트워크를 밝혀낼 수도 있고, 사회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구체적인 소원 내용을 꼼꼼히 읽어 당시 사회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불원문’을 보며 가장 먼저 마음을 끄는 것은 생로병사를 자력만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었던 인간의 모습이다. 그 슬픈 인간 조건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픈 인간들의 애끓는 열망이다. 이 사바세계에서 살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지 않던 그 모순된 열망이다.

※'김영민의 문장 속을 거닐다’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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