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유품정리사가 말하는 ‘죽음 준비의 철학’[서영아의 100세 카페]

부산=서영아 기자 2023. 6.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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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
생전정리 잘하면 고독사도 예방
가수 현미, 팬클럽 덕에 고독사 면해… 유품정리에는 유족 위로하는 기능도
청소가 아닌 추모 위한 유품 정리… 고인의 품위 지키며 생전 의도 전달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요즘 고인들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 주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직 교장선생님의 유족들이 ‘처리해 달라’고 건네준 유품 중 평생 받은 상장 표창장, 세세한 이력 자료가 너무 아까워 추모 아카이브에 정리해 올렸더니 유족들이 무척 기뻐했던 게 계기가 됐다.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모든 죽음은 결국 고독하다. 하지만 고독한 임종을 거쳐 몇 날 며칠을 시신으로 내버려져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유기체에서 생명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시작되는 부패를 떠올리면 더욱 무참하다. 이런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인간의 위신도 존엄성도 무색해진다.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2021년에만 3378건 있었다. 5년 전보다 40%가 늘어난 수치다. 고독사가 우려되는 위험군이 153만 명이나 되고 이 중 50, 60대 중장년 남성이 가장 취약하다고 지목되기도 했다. 이런 발표들을 보며 ‘고독사’라는 일본산 신조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품정리사’라 불리는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53). 그를 만나러 지난달 22일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며칠 뒤 서울에서 강연 2건이 예정돼 있지만 당일 인터뷰 시간을 내기는 빠듯하다고 했다.

●지인들과 수시로 연락=고독사 예방

부경대 창업지원센터에 자리한 키퍼스코리아 사무실. 유품 촬영이나 분석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그는 4월 초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던진 원로 가수 현미 씨 얘기부터 꺼냈다. 보도에 따르면 현미 씨는 전날 저녁까지도 지인들과 소통했지만 다음 날 오전 방문한 팬클럽 회장에게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그래도 고독사를 피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몇 년 전 현미 선생님과 고독사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2019년 5월 방송)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혼자 사는 고령자가 고독사를 피하려면 매일같이 연락하는 지인을 주변에 많이 둬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선생님이 무척 공감하셨어요. 그걸 잘 실천하셨던 거죠. 그 덕에 선생님의 마지막은 외로웠어도 고독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정의된 고독사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그 시신이 일정 시간(최소 3일 이상)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반대로 4월 말 그가 유품 정리를 의뢰받은 66세 여성은 사망 뒤 3일 만에 처참하게 녹아내린 상태로 발견됐다. 자녀들이 외국에 있어 혼자 살던 고인은 침대에 누운 채 발견됐는데 아파트 전체에 난방이 가동되고 있었다.

―고독사를 막으려면 현미 씨 경우처럼 일상적인 연결망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군요.

“물론입니다. 다만 갈수록 고독사나 죽음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고 있어 곤혹스럽습니다. 일부 미디어에서 처참한 현장을 치우는 ‘특수 청소’ 위주의 자극적인 소재로 이용되고 있지요. 고독사라 하면 기괴한 현장이나 악취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돼버린 거죠. 망자들의 고독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 머문다면 사회적 의미가 없어요.”

―복지부 고독사 예방 실무협의회 전문위원이십니다. 이번에 정부가 고독사 예방 대책으로 이웃들에 게이트키퍼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 실효성이 있을까요.

“행정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주변 지인들과 연락 관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는 없지요.”

●중고품 판매업자, 폐기물 업자 난립도

고인의 유품을 모아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기 위해 촬영하고 있다. 키퍼스코리아 제공
초고령사회가 목전인데 1인 가구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독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황망하게 맞이하는 죽음일수록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김 대표는 고독사를 ‘생전정리’와 연결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전정리는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해 둬야 유족이 고인의 삶의 족적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이 일을 사후에 돕는 존재가 유품정리사다.

“한 사람의 죽음 뒤 집 한 채 분량의 유품이 생겨납니다. 유품정리사는 고인의 품위를 지키고 생전 의도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인이 남겨놓은 것들을 남길 것과 버릴 것, 팔 것으로 분류하고 유족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죠. 또 고인 삶의 기록을 통해 유족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이 과정에서 유족을 위로하는 역할도 하지요. 그러려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유품 정리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망자의 집은 대개 신속하게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예컨대 집을 상속받으면 내용물을 빨리 비워내고 처분하기를 원하는 유족들로서는 찬찬히 추억거리까지 골라내는 유품 정리 과정을 번거롭다고 느낀다. 비용도 일반 이사 비용의 2배 정도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내에 난립하는 유품 정리 업체 중에는 중고품 판매업자나 폐기물 업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고인의 짐을 한꺼번에 쓸어간 뒤 값나가는 물건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당장 돈이 안 된다면 추억이건 학술 예술적 가치건 정보건 쓰레기에 불과하다.

●30대 후반, 아끼던 직원 사망에 인생관 바뀌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회사를 경영하던 김 대표가 유품정리사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2006년 아끼던 20대 직원이 휴가를 갔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충격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무렵, 우연히 일본 최초의 유품 정리 전문 회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무턱대고 방송에 소개됐던 ‘키퍼스’의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 대표를 찾아갔다. 당시 일본에서는 고독사 문제가 부각되고 장례 관련 박람회나 엔딩산업이 태동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사업으로서 승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3년간 일본을 오가며 연수를 마친 뒤 2010년 한국 최초의 유품 정리 업체 ‘키퍼스코리아’를 세웠다.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던 듯한데요.

“일본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에 접목하려다 보니 ‘그걸 왜 하느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왜곡이나 편견도 심했습니다. 직원들도 흩어져 갔죠. 그때 저 스스로 생전정리를 해봤습니다. 인생을 리셋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부분들을 되돌아봤지요. 그간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내팽개치고 너무 많은 외부 활동을 했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구나. 내 몸을 돌보지도 않았구나.’ 그래서 우선 운동을 시작했고 술을 끊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다른 일거리들을 안겨줬다. 그간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2018년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지택코리아)를, 지난해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김영사)를 펴냈다. 유명 강사가 됐고 방송 활동도 많은 편이다. 정부 정책에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 2019년부터 부산과학기술대 장례행정복지과 외래교수로 출강하며 후학을 키우고 있다. 이 중 요즘 가장 힘을 기울이는 것은 강연이다.

“월 10회 이상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여건이 되는 한 달려갑니다. 죽음에 대비하는 생전정리는 아예 문화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돈이 안 되고 몸도 피곤하지만 사명감으로 다닙니다.”

●“아끼다가 똥 됩니다. 좋은 물건부터 쓰세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웰에이징센터에서 주최한 주민 대상 강연회장에 가봤다. 타이틀은 ‘성공적인 인생 마무리를 위한 생전 유품 정리’. 강남구 거주 어르신 150여 명이 모였다. 어르신들 앞에서 당신들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 대표는 그런 금기를 노련하게 넘나들었다.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의 리액션도 유쾌했다.

유품 정리 과정에서 보고 들은 여러 사례들, 생전정리의 의미와 요령이 소개됐다. 예컨대 가진 물건 중 중복되는 것은 과감히 처분하고 좋은 것, 새것부터 쓰시라고 권한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죠. 어르신들이 남긴 집에서는 ‘언젠가 쓰겠지’ 하며 쟁여둔 물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대개 손톱깎이가 10개, 구둣주걱도 6∼7개 정도? 하하.”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자신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가타미와케’ 풍습처럼 지인들에게 미리미리 물건을 나눠주라는 조언도 했다. 또 혼자 사는 어르신은 주변에 본인 의사대로 사후 정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3명 정도 지정해 놓을 것을 권했다. 그러면 훗날 이분들이 서로 협의해 망자의 의사대로 정리해줄 수 있다는 것.

강연이 끝난 뒤 무대 뒤로 잔뜩 고무된 표정의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그렇잖아도 난 벌써 주변에 다 나눠주고 있어요. 이 나이 되니 새 옷도 별로 필요 없더라고.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 칭찬해 달라는 듯이 와서 말하는 멋쟁이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강의 참 좋았다”며 명함을 건네는 어르신도 있다.

한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매일같이 써온 가계부 수십 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자식들이 자꾸 버리자고 해서 갈등이 있다”고 하소연하자 김 대표는 “아이고, 그건 아깝죠. 기록물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응수한다. 수십 년간 꼼꼼히 기록된 가계부라면 그 시대의 물가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자료 가치가 충분할 것 같다. 곧장 서울역으로 향하는 김 대표와 전철역까지 동행했다. “이런 어르신들은 혼자 산다 해도 고독사 위험은 없지 않겠어요?”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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