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과 ‘불새’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2023. 6.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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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레터]
1년에 100회 이상 연주한다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곧고 길었다. 조성진은 “같은 슬픔도 독일 음악에서는 ‘속으로 우는’ 느낌이고, 차이콥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음악에선 펑펑 울고, 드뷔시 등 프랑스 음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이 흐르듯’ 외롭다”면서 “악보에 없는 여백을 메우려면 음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폭우가 쏟아졌다. 2018년 가을이었다. 차들이 뒤엉키는 도로를 보자 마음이 바빠졌다.

약속한 1시간 안에 다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질문을 많이 준비했는데 그날의 기분은 날씨에 휩쓸리고 말았다. 조성진을 보자마자 즉흥적인 물음부터 던졌다. 조율되지 않은 악기처럼 엉뚱한 소리를 내길 기대하면서.

“비 때문에 퇴근길이 엉망이 됐네요. 클래식 라디오 PD라면 어떤 곡으로 위로하고 싶은가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은 잠시 답을 고르는 표정을 지었다. “흐린 날씨는 좋아하지만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별로예요. 좀 강렬한 곡? 처진 기분을 ‘불새’로 일으키고 싶네요.”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불새’는 왕자가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을 물리치고 공주들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1910년 초연한 발레 음악이다.

운전면허가 있는지 묻자 “재작년에 한국에서 땄다”고 했다. “차는 없는 ‘장롱 면허’지요. 운전해보고 싶긴 해요. 1년에 집에 있는 시간은 3개월 정도고 나머지 9개월은 연주 여행을 다녀요. 2021년까지 3년 치 일정이 이미 다 찼어요.” 그는 요즘도 연간 100회쯤 연주를 하고 공항과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조성진은 독주회 때마다 ‘쇼팽을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내가 만난 날엔 “2019년 1월에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쇼팽이 없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연주한다”며 좀 들떠 있었다. 지금은 쇼팽 말고도 다양한 음악의 길로 우리를 데려간다. 악보 위에서 그의 운전은 가속과 감속, 차로 변경과 코너링이 매끄럽다. 승차감이 편안하다.

조성진에게 10년 뒤쯤 도달하고픈 어떤 수준이 있는지 물었다. 허공을 응시하더니 “클래식 본고장 유럽에서 꽤 좋은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답했다. 목표가 소박하다고 하자 그는 정색했다. 피아니스트로 기억되고 또 보고 싶어진다면 엄청난 일이라고 했다. 오늘도 조성진은 52개는 희고, 36개는 검은 건반 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무대 위에는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와 연주자가 있다. 균형과 조화가 느껴진다. 삶은 전혀 다르다. 무질서하고 예측 불허다. 1일 최연소 호암상 수상 소식을 듣고 그날의 ‘불새’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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