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 보호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1〉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많은 책을 혼자 나른 적이 있었다.
배낭에 넣어 등짐으로 지고, 짐수레에도 가득 실어 밀어 옮겼다.
내 짐을 나 혼자 지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무거운 걸 혼자 다 나를 거냐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떠나 버린 사람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슬픔을 더 슬프게 하는 건
시만 한 게 없지
개 한 마리 데려왔을 뿐인데
칠십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는다
흰 슬픔 검은 슬픔 누런 슬픔
큰 슬픔 작은 슬픔
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
갈피를 꽂아 두었던
시의 가장 아픈 문장에
밑줄을 긋고 나니
남은 문장들이 일제히 눈가에 젖어든다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
― 김명기(1969∼ )
많은 책을 혼자 나른 적이 있었다. 배낭에 넣어 등짐으로 지고, 짐수레에도 가득 실어 밀어 옮겼다. 내 짐을 나 혼자 지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턱 앞에서 끙끙대고 계단에서 멈칫거릴 때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그때 한 택배 기사님이 멀리서부터 달려오더니 수레를 같이 밀어주었다. 이 무거운 걸 혼자 다 나를 거냐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힘을 보태준 것도 고맙지만 사실 그 질문이 고마워서 오래 잊지 못했다. 매일 이고 지고 나르던 그는 짐 지기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만이 남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힘듦과 절망, 아픔이나 슬픔 같은 것은 크고 깊어서 고작 상상 따위로는 닿을 수도 없다.
세상에는 보이지도 않은데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많다. 가끔은 안 보이는 그 짐을 남에게 들킬 때가 있다. 반대로 우리가 타인의 짐을 알아차릴 때도 있다. 짐이 짐을 알아볼 때, 그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고달픔을 나눈다. 짐의 총량이 줄어들 리가 없는데도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 가벼워진다. 그것을 김명기 시인은 “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고 썼다.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라고도 썼다. 이 말은 진심이고 진실이다. 슬픔에는 슬픔이, 아픔에는 아픔이 친구고, 이웃이며, 쉼터가 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유정 같은 사람 만날까 무서워”…여대생들 과외 앱 탈퇴
- 尹, 동티모르 대통령 만남 “양국 특별한 관계…협력 강화할 것”
- 北 2차 위성발사 움직임 포착…한미일 국방 수장, 사흘만에 머리 맞댄다
- 이재명측 “머릿속에 김문기 안다는 인식 계속됐는지 검찰이 증명해야”
- ‘특혜채용’ 선관위 “감사 수용 어려워”…감사원 “엄중 대처”
- 1231일 만에…‘일일 코로나 확진자 발표’ 3일 종료
- 전세계약 47%가 역전세… 곧 닥칠 ‘쓰나미’ 대비해야[사설]
- “한동훈이 노무현재단 계좌 추적” 발언 황희석, 벌금 500만원
- 美안보보좌관 “中-러와 전제조건 없이 핵 군축협상 의향”
- “혁신은 죄가 없다”… ‘타다’ 4년 만에 무죄 확정 [횡설수설/정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