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감사 거부" "국회 권위" "개딸 아미"… `그사세` 정치하나

한기호 2023. 6. 3.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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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자녀 채용비리 선관위, '아무튼 버티기'
감사 거부 근거 미약…강제력 無 조사만 고집
선관위 논쟁에 파행한 행안위, 고무줄 입법
강특법 늑장심사 지탄에 與부터 "지역민 동원" 탓
野강경파선 유권자 비하, 강성팬덤 옹호 선넘어
노태악(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치고 위원장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위원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 수용을 최종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정했다.<연합뉴스>
지난 5월24일 오전 국회에서 강원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안 등을 심사하기 위해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김교흥 1소위원장(행안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이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사세'라는 말이 있다. 2008년작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축약한 표현이다. 당초 작품에서 보여줬듯 일반시민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최상위 부유층·권력층의 생활을 가리켰다. 비교적 최근엔 일반시민 상식과 동떨어진 계층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정치권 안팎의 백태에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정'을 사명으로 여겨야할 헌법기구가 온국민에 박탈감을 유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월 초순부터 현재까지 박찬진 전 사무총장·송봉섭 전 사무차장을 비롯해 자녀 채용·승진 특혜 의혹을 받는 전·현직 고위 간부가 두자릿수로 불어나 있다. 애초 중앙선관위는 '아빠 찬스' 자체를 부인했지만 구체적인 경력직 채용 시기·경로, '아빠 동료 면접', '심사위원 만점 남발' 등 폭로가 계속됐다. 이에 자체 특별감사와 긴급회의를 갖는 등 방어선(?)을 물렸지만 '셀프 진단'에 불과했다. 5월말이 임박해서야 사무처 투톱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퇴직 공무원 혜택은 온존하는 의원면직으로 귀결됐다.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된 대법관이기도 한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아무튼 사퇴 거부'로 일관했다. 수주째 '감사원 감사 거부'로 버티는 데선 정치적 주판알 튕기기라는 의심까지 자아냈다.

선관위는 2일 감사원 직무감찰 거부를 못 박으며 헌법 제97조와 국가공무원법 17조를 들었다.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면서다. 그러나 감사원 존립 근거인 헌법 97조는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규정했다. 헌법내 선관위 근거조항은 114조부터 시작하고 공무원 신분 규정은 없다. 국가공무원법이 2조 1항에서 공무원을 큰 틀에서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양분하고 2~3항에서 사실상 늘공(일반직·특정직)과 어공(선출직·정무직)을 구분한다. 17조는 2항에서 '선관위 소속 공무원 인사 사무 감사'를 '선관위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고 규정한 정도다.

감사원법은 24조 1항에서 "정부조직법 및 그 밖의 법률에 따라 설치된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한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 대상으로 규정한다. 헌법과 '선거관리위원회법'에 근거한 선관위가 배제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감사원법 24조 3항은 1항에서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소속한 공무원"만 제외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2일 이 조항을 들어 선관위의 태도를 "전형적인 조직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바로 '그사세'다. 일각에선 감사원법 24조 위반 등에 따른 고발도 가능하단 말마저 나온다. 국가공무원법 17조만 받들자면 선관위는 위원장·사무총장이 자리만 비우면 채용비리 감사 성역이 되는 건지. 지난해 3·9 대선 코로나19 확진자 '소쿠리 투표' 논란을 부른 부실선거로 직무감찰을 거부할 땐 긴가민가했지만, '배 째라'가 민낯인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선관위는 "국회 국정조사, 국민권익위 조사 및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는데, 실질적으론 "감사원 감사 즉각 수용하라"는 국민의힘과 모든 면에서 척을 졌다. 권익위 조사와 국조엔 강제조사권이 없다. 권익위는 더불어민주당 재선의원 출신 전현희 위원장이 정권교체 이후 1년 넘게 '장관급 알박기' 투쟁을 해온 데다, 이달 말에야 임기를 다한다. 최근 전현희 위원장은 단독 기자회견을 열어 선관위에 전수조사 공문을 보냈다고 알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부위원장 3명을 끌어들인 '정치 중립' 흥정을 벌이려 했다. '김남국 코인 파문'을 공직자 무차별 전수조사론에 희석시키는 듯한 주장까지 잡음 투성이다. 선관위가 시사한 '수사'는 검찰 아닌 경찰에 고위직 4명 수사의뢰한 것을 가리킨 듯하다. 국조는 선관위 공격수인 여당보다 거대야당 의중대로 좌우될 공산이 크다.

선관위 국조가 실시된다면 국회 행정안전위가 주력이 될텐데, 마침 거야(巨野) 비토로 올스톱됐던 상임위다. 행안위원장이었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3월22일 전체회의 당시 박찬진 선관위 사무총장에게 "의원 질의 도중에 이석을 멋대로 한다"고 질책하기 전후로 기류가 험악해졌다. 윤심(尹心)에 가까운 장제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선거여론조사' 개념을 확대하고 응답률 5% 미만 여론조사 공표를 막는 등의 선거법 개정안이 4월 행안위 심사단계에 오르자 선관위는 반대 의견을 냈다. 5월초엔 행안위 여당이 '북한발 해킹'에 따른 국가정보원 보안점검을 선관위가 이유없이 거부한다고 폭로 반격했고, 선관위 채용비리도 뒤이어 불거졌다. 16일 선관위 현안질의에선 '민주당 탈당' 이성만 의원이 위원장(장 의원) 직접 질의를 가로막으며 막말 충돌하고, 민주당은 '위원장 사과' 요구와 함께 보이콧에 돌입했다.

'그사세'는 행안위 자체에도 있었다. 16일 파행 이후 강원 및 제주 특별자치도법 개정안 등 지방현안 관련, 비쟁점 법안 심사는 기약없이 미뤄졌다. 와중에 여야는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신고 대상에 넣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일명 김남국 방지법)만을 5월22일 행안위 제1법안소위 심사 대상에 올렸다. 정개특위에서 같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 심사를 병행키로 한 데다 '여론 눈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강원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안 상정 무산에 김진태 강원도지사와 도민·출향민 단체가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규모로 '약속 이행' 촉구 기자회견과 천막 농성을 개시하기도 했다. 특별자치도 출범 날짜(6월11일)는 고정인데, 4대 핵심규제 개선 등 '알맹이'를 채우기 위한 전부개정안 5월 통과가 정쟁에 가로막힌 탓이 컸다. 행안위 보이콧이 김남국 방지법에만 풀리는 잣대도 의문을 불렀다.

김진태 지사와 강원출신 여당 의원, 도민 등은 22일 행안위 소위 회의장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야당 간사 겸 1소위원장인 김교흥 민주당 의원과 다투기도 했다. 부담이 커진 여야는 천막농성 사흘차(24일)에야 행안위 1·2소위부터 전체회의까지 비쟁점법안을 처리하며 정상화했다. 그런데 회의록에 따르면 24일 1소위는 여야 불문 "국회의 권위"를 위한 자리였다. 울산 지역 초선인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이 강특법 전부개정안 심사가 너무 빠르다며 "일부 지역 일부 시민들이 동원됐다"고 '도합 3선' 김진태 지사에 포문을 열었다. 만약 '호남'이나 자신들의 지역이었어도 이처럼 '동원된 지역민'으로 단정했을까. 민주당에선 김교흥 의원이 적극 공감한다며 "나머지 도(道)도 이런 식으로 해버리면 '국회의 권위'는 무너진다"고 합을 맞췄고, 조응천 의원은 상황중계 기사에 "자괴감"을 느꼈다며 김 지사에 선(先) 유감표명을 요구했다.

박성민 의원은 또 "경내의 텐트는 어느 의원 명의로 했고…"라며 불같이 따졌다. 투쟁천막은 비례대표로 춘천갑 당협위원장을 맡은 노용호 의원 명의였고 그가 한기호 의원(춘천을)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대통령 술친구'로, 기존 '윤핵관' 이상으로 부각된 '실세 부총장'의 반응으로선 꽤 의외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10월27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강원 합동토론회 당시 "'강원경제특별자치도'를 추진해 강원도의 미래를 '도민들이 스스로 열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자치에 방점을 찍었다. 강원 지역구 현역 '윤핵관'이 여럿이지만 공약 철학 실현에 크게 기여했을까. 일부 의원은 국회 역할이 부재했다는 비판을 '민주당만 공격하라'고 맞받았고, 행안위 통과가 확정적이게 된 뒤에야 SNS로 축하 릴레이를 하는 데 그쳤다 . 원칙과 철학으로 일찍이 단일대오를 짜지 못한 모습이 아쉽다.

야권 내 '그사세' 정치는 굳이 말을 보탤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민주당 강경파 '처럼회' 일원인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은 지난 29일 '시사의 품격'이라는 유튜브에 출연해 "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어요. 너무 싫어 죽겠어요"라며 "피가 끓죠"라고도 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자기 세력을 뽑아주지 않은 국민들'을 이보다 노골적으로 비난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같은 날 한편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개딸(개혁의 딸·강성지지층), 재명이네 마을(개딸 팬카페)' 결별 요구에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BTS(방탄소년단) 보고 '아미(ARMY·BTS 팬클럽)를 그만두라'는 얘기가 가능하겠나"라고 대꾸했다. 이재명 대표와, 그를 지킨다며 비명(非이재명) 집단린치 논란을 부르는 조직이 연예인-팬클럽 관계 정도로 비유될 수 있을까. BTS·아미마저 유탄을 맞은 '그사세' 논리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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