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운 연구원 “딱 한 번만 더” 새벽 5시에 통신 문제 풀렸다

신수민 2023. 6. 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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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 총괄, 고정환 항우연 단장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은 지난달 3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자식 같은 누리호를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 그리고 연구진들의 멈출 줄 모르는 열정 덕분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1138초. 지난달 25일 오후 6시 24분 빨간 불꽃을 내뿜고 솟아오른 누리호(KSLV-II)가 위성 8기(차세대소형위성 2호, 도요샛 4기, 루미르, 져스텍, 카이로스페이스)를 싣고 가 비행을 종료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약 19분이지만, 이 시간이 10년 같았던 한 사람이 있다. 누리호 3차 발사 총책임자인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이다. 고 단장은 “19분간의 적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누리호의 성공은) 오로지 발사체를 개발한다는 자존심, 자부심 하나만 보고 달려왔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누리호 개발 총 책임자를 맡아 1차 발사부터 3차까지 진두지휘하며, 한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1t급 위성이 탑재가능한 우주발사체 개발·보유국으로 올라서는 데 힘써 왔다. 지난달 31일 항우연에서 만난 고 단장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하다.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이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웃음 뒤에는 지난 8년여 간의 고된 걸음걸이가 녹아 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의 말대로 19분에는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요구가 담겨 있었다.

본 궤도 안착 때까지 19분간 적막감 돌아

Q : 부담감이 컸을 텐데.
A : “(발사가 한 차례 연기됐기 때문에) 결과가 안 좋으면 ‘무리한 시도였다’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걱정했고, 지난해 2차 발사 성공으로 3차도 당연히 성공할 거란 국민적 기대도 부담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검증위성이 아닌 수백억원의 개발·제작비가 든 실제 위성을 싣고 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만 했다.”

Q : 발사 직후, 상황실 분위기는 어땠나.
A : “연구진 모두가 통신 헤드셋을 끼고 발사 상황을 듣는데, 하나 같이 긴장한 나머지 헤드셋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오르고 실시간으로 위성이 하나씩 분리될 때도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최종 성공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성공을 확인했을 때도 차분했다. 아마도 너무 긴장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Q :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A : “당초 발사 예정일이었던 24일, 누리호를 내릴까(지상 발사대 기립 상태에서)도 고민했다. 발사체가 기립된 상태에서는 지속적으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위성도 그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위성의 배터리 재충전 없이 발사를 밀어 붙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그러니까 발사 중단 이튿날인 25일 새벽 4시 30분까지가 최종 목표였다. 이때까지 문제(지상 설비 통신 이상) 해결이 안 되면 내리려고 했다.”

Q : 밤새 여러 생각이 들었겠다.
A : “발사 중단 이후 내 사무실에만 머물렀다. 문제 해결 기미가 있나 궁금했지만 연구진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작업실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사무실에 앉아 계속 작업실 CCTV를 쳐다봤다. CCTV 속 연구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박수를 치다가도, 어느 순간 머리를 쥐어짜더라. 안쓰러워서 작업실엔 더욱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새벽 3시쯤 됐나, 안 되겠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구진에게 그냥 쉬라고 했다.”

Q : 마음 속으로는 포기했던 건가.
A : “딱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연기한 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결해 보자는 의미도 있었고, 다만 몇 분이라도 머리를 식히고 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 한 가지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다른 게 안 보일 때가 있지 않나. 그러다 4시 30분쯤인가 한 연구원이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더라. 말리면 후회할 거 같아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5시께 감쪽같이 문제가 해결됐다. 통신 이상 문제가 오히려 연구진의 사기를 올렸고, 이게 결국 성공의 동력이 됐던 것 같다.”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은 지난 1·2차 발사 경험이 쌓아올린 결과다. 특히 세계 7번째 우주강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중량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자체 개발한 발사체로 쏘아 올릴 수 있게 됐다. 발사체 국산화율도 95%에 이른다. 누리호 1~3차 전 과정을 지켜본 고 단장은 “그간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돼 있어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고 단장은 “개발 초기에는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며 “수백 가지의 기술이 필요한데 알려주는 사람도, 물어볼 곳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Q : 어려움이 많았겠다.
A : “엔진부터 막혔다. 연소불안정 현상이 있었다. 점화를 시도하면 폭발해 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14개월이 걸렸다. 발사체 외형은 크고 얇은 원통형의 탱크를 연결해야 하는데, 탱크끼리 연결하는 용접도 쉽지 않았다. 용접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 계획보다 일정이 밀리면서 ‘개발은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Q :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텐데.
A : “생산 일정이 늦어지니 (항우연에) 납품도 안 되고, 개발에 참여한 민간 기업에게 지급할 대금도 못 나갔다. 성과를 내지 못하니 국회에서는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2015년, 2016년에는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몇 시간을 의원실 밖에 서서 대기한 적도 있다. 당시 외부 관계자들로부터 ‘당신들이 정말 할 수 있겠느냐’ ‘아마추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 때는 정말 다 포기하고 싶더라.”

Q :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도움을 요청한다고 하던데.
A :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누리호 3차 발사 과정을 인터넷 실시간 방송으로 본 모양이다. 성공 직후 축하 인사가 많이 왔다. 발사체가 아직 없는 나라에서는 ‘우리와 협력하자’는 연락을 주기도 했다. 우리보다 기술이 앞서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로 우리와 협력하고 싶어 한다. 이번 발사 성공으로 한국의 기술력이 일정 수준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 기술을 교환하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3차 발사 성공 전후는 꽤 차이가 있다.”
성공 후 기술 앞선 유럽서도 협력 연락 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3차 누리호 발사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앞두고 민간기업 300여 곳이 함께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형발사체 체계종합기업으로써 총괄 관리기업으로 참여했고, 한국항공우주산업·현대로템·현대중공업 등이 참여했다. 이들 대기업 몇 군데를 제외하면 대개 중소기업이다. 고 단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제품을 생산해도 판로가 발사체 3기뿐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며 “전문 연구진도 부족해 해당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항우연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고 단장은 “중소기업들이 수익률이 낮은 데도 우리를 믿고 적극적으로 나서 준 덕분에 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Q :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되나.
A : “누리호 4~6차 발사를 포함한 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민간 기업이 주도하게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도하고 기존 민간기업 300개사가 참여한다. 4차 발사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직접 부품을 주문하고 조립한다. 이번 3차 발사가 민간으로 주도권을 넘겨주는 단계인 셈이다. 우리 의무는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잘 이전하는 거다.”

Q : 차세대 발사체 개발은 어떻게 이뤄지나.
A : “누리호는 1.5t 정도의 위성을 고도 600~800㎞에 올려놓는 게 목표였다. 애초에 달이나 화성에 갈 정도는 안 된다. 앞으로 누리호보다 성능이 3.3배 좋은 발사체 개발이 진행된다. 2032년 1.8t의 달 착륙선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해 달로 보내는 게 목표다.”
고 단장은 “누리호를 보면 자식 같아 가슴이 찡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식 같은 누리호를 만들고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이었다”며 이젠 발사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대신 국민들께 감사 인사를 더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발사체는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드는 일”이라며 “이 같은 험난한 일은 오로지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정환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학·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항우연에 들어와 발사체 기술 개발에 나섰고, 2015년부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으며 누리호(KSLV-II) 1~3차 발사 전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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