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고치려다 병 생기겠다”…첫날부터 대혼란에 빠진 비대면진료
대구시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2일 “비대면진료를 원하는 초진 환자와 통화는 했는데 이 사람이 예외적으로 초진도 가능한 케이스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고, 다른 일반 환자들의 경우 재진여부를 파악하는 데도 비용과 시간이 꽤 들었다”며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EMR(전자의무기록)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해보니 너무 불편해서 앞으론 비대면진료를 아예 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섬·벽지 거주자, 장애인,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만 65세이상 노인, 감염병 확진자는 예외적으로 초진환자도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환자가 예외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환자가 플랫폼을 통해 증빙서류를 올리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범사업안이 시행 이틀 전 확정된 탓에 현재로선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장애인 등록증 등은 예민한 개인정보라 보안이 철저히 담보돼야 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 시스템을 갖추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업계가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마련해둔 창구에는 이날 100여건의 불만사항이 접수됐다. 대부분 의료진이 작성한 글이었다. 서울시 한 내과 전문의는 “환자의 신분 확인부터 앞선 의료기록 확인, 진료 후 수납까지 병원에서 해야하는 행정적 업무가 늘어나면서 비대면진료 자체가 어렵고 불편하게 됐다”며 “아픈데 병원에 올 상황이 안돼서 비대면진료를 요청한 환자에게 재진 여부를 확인하고 이에 해당이 안되면 거절해야 하는 게 의사 입장에서 마음이 안좋다”고 말했다.
부산시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만약 환자가 같은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비대면진료를 요청했는데 실제 진료를 해보니 병명코드가 달라 결국 초진으로 판명된 경우 병원은 진찰료도 못 받고 시간을 허비한 게 된다”며 “초재진 여부는 일단 진료를 해야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환자를 만나기도 전에 파악하라는건지 복지부 정책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잡해진 절차로 비대면진료 자체를 외면하는 의료기관이 늘면서 환자들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40대 여성은 “지난달 비대면진료로 내과에서 한차례 진단과 처방을 받았고 동일한 내역으로 이달 1일 진료를 신청했는데 병원에서 거절했다”며 “계도기간임에도 의사들이 어떤 부담도 갖기 싫어서 아예 안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시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은 “몸살 증상이 느껴져 평소처럼 비대면진료를 신청했는데 아무 설명 없이 계속 접수가 취소됐다”며 “병원 갈 상황이 안돼서 비대면진료에 의지해왔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계도기간을 대하는 복지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도 현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인천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아직 계도기간인데 복지부에선 의료기관이 알아서 새 지침을 따르라고 한다”며 “초진환자를 봐도 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시 내과 전문의는 “하도 답답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담당자와 직접 통화하고 복지부 자료도 확인했지만 이 기간동안 어떻게 진료를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3년여간 초재진 구분 없이 모든 환자에게 적용됐던 비대면진료 수가 코드가 1일 0시를 기점으로 돌연 사라진 것 역시 논란을 낳고 있다. 복지부는 이날부로 재진환자에만 수가 코드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앞서 복지부는 기존 제도와 새 사업안이 계도기간 내 함께 추진된다고 밝혔지만 초진 수가코드를 없애는 방식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초진환자에게 수가 적용이 왜 안 되는지, 그럼 계도기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묻는 의료진 연락이 빗발쳤다”며 “수가에 대한 공문이 각 병원에 전달된 것도 아니어서 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오락가락한 정책 방향과 현장을 무시한 지침 등에 국내 비대면진료 산업이 시작과 동시에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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