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공주가 원작 파괴? 서아시아 인어공주도 있었다 [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영감의 원천]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
주인공 인어공주가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서 생긴 논쟁을 차치하고도, 일단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 국내외 평론가들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영국의 진보 일간지 ‘가디언’은 영화가 “밋밋하며 원작 애니의 만화적 마술은 없고 러닝타임은 너무 길다”고 평했다.
“원작 애니의 만화적 마술이 없다”
다만 평론가들은 인어공주 에리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 연기 등에서 대체로 호평을 하고 있다. 반면에 관객의 불평은 원작 애니와 외모가 다른 베일리의 캐스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에 대해 캐스팅 옹호자들은 “인종차별이다”라고 비난하고, 캐스팅 비판자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원작 파괴이기 때문이다”라고 항변한다. 그러면 캐스팅 옹호자들은 “그건 은연중에 동화 주인공을 백인으로 생각하는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캐스팅 비판자들은 “원작 만화 에리얼의 외모에 정이 들었기 때문인데 그걸 인종차별로 몰아가는 교조적 태도가 짜증난다”며 비난한다. 이러한 감정싸움이 국내외 소셜미디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어공주’ 캐스팅 비판자 중에 인종차별주의자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뉴스에서 혐오스러운 인종비하적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인종편견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원작 애니와의 괴리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페이션스 지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아프리카계 영국인 유튜버는 영국의 국민 애니메이션 캐릭터 ‘밥 더 빌더’의 얼굴이 조금 바뀌었을 때, 인종이 아니라 얼굴 디테일만 바뀐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내가 아는 밥이 아니야!”라며 분노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캐릭터의 이미지가 바뀌면 어린 시절 추억이 방해 받는 것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사판 에리얼에게 불평하는 것인데 그러면 무조건 인종주의자 취급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인어공주』는 해피엔딩 일색의 동화 속에서 최초로 접한 비극이었다. 자신이 왕자를 구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인어공주의 상황이 답답하고 결말이 속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동화를 싫어할 수 없었던 것은, 동화책 삽화와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지는 장면 장면의 환상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악당이 없는데도 비극이 일어나는 현실적 상황의 비장미가 어린 마음에도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본의 아니게 인어공주의 연적이 되는 이웃나라 공주가 악녀가 아닌 좋은 사람인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 읽은 완역본에서 인어공주가 단지 왕자의 사랑만이 아니라 왕자와 결혼하면 얻을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을 갈구했다는 것 (옛 유럽에는 물의 정령 인어를 비롯한 정령들은 자연 자체와 같아서 영혼이 없지만, 인간과 결혼하면 영혼을 갖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왕자와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물거품이 되는 대신 바람의 정령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영혼을 얻을 기회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욱더 이 동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안데르센은 실연을 겪은 뒤에 『인어공주』를 썼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내 인어공주가 불멸의 영혼을 타인의 사랑에 의존해 얻게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영혼을 얻는 건 운에 달린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에 자신을 투영했고, 연애에 대한 체념, 나아가 해탈의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동화를 보면, 처음에는 인어공주에게 왕자의 사랑을 얻는 것과 불멸의 영혼을 얻는 것이 동일한 문제였다. 그건 마치 사춘기 첫사랑 때 자신의 모든 막연한 이상과 동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동일시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인간은 성숙하고 이상과 사랑을 분리하게 된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가련한 여인의 최루성 비극이 아니라 해탈과 성장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 ‘인어공주’는 ‘악녀·악역이 없는 비극’과 ‘연애에 대한 깨달음과 성장’이라는 원작 동화의 감동 포인트를 모조리 뒤집어 버리고 아메리칸 스타일의 발랄한 소녀 인어공주가 나오는 선악대결과 해피엔딩 스토리를 만들어버렸다.
안데르센 원작은 해탈·성장 이야기
물론 유럽 동화이다보니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제니 하버(1893~1959)의 블론드 인어처럼 유럽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프랑스계 영국 작가로서 '황금시대'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에드먼드 듈락(에드몽 뒬락 1882-1953)은 인어공주와 왕자를 서아시아인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다. 요즘처럼 문화와 인종 다양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 즉 동방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인어공주를 구현하는 방식이 이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로마제국이 위대한 유산을 남겼듯 문화제국 디즈니도 ‘판타지아’(1940)나 ‘미녀와 야수’(1991) 등 경이로운 미학적 완성도의 걸작들을 남겼다. 그러나 디즈니가 문화제국이 됨으로써 발생한 문제도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인어공주를 비롯해 동화 주인공들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하나로 획일화해서 고정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구글 이미지에서 인어공주를 검색하면 디즈니의 에리얼이 압도적으로 많이 검색 상위에 뜨며 역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다양한 인어공주 이미지는 따로 추가 검색어를 입력하지 않으면 찾기 힘들 정도다.
즉,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의해서 유럽 동화와 미국 뮤지컬이 결합된 형식의 이야기가 전세계에 확산되고 동화 주인공으로서 서양인의 이미지가 고정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애니를 그대로 실사화하면서 인종만 바꾼 것에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며 불평한다는 이유로 ‘인종주의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며 훈계하는 것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디즈니는 서구 중심 이미지 제국주의에서 이제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제국주의를 할 셈인가?
앞서의 유튜버 페이션스 지나는 디즈니가 "게으르다"고 강력 비판하며 “새로운 흑인 공주를 만들고 그 공주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면 되지, 왜 어린 시절 친구 에리얼의 인종을 갑자기 바꿔?”라고 반문했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미 이런 노력들을 보였다. 다만 안전하게 수익을 증대하려는 방법으로 택한 기존 애니의 실사화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디즈니는 이런 안일한 PC를 버릴 필요가 있다. 반면에 관객은 기존 디즈니에 의해 각인된 서양인 동화 주인공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동화 주인공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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