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 지위 흔들려 ‘불안정한 내쉬균형’ 땐 한국 직격탄

입력 2023. 6. 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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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1945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축 통화는 미국의 달러이다. 달러가 오랫동안 기축통화라는 사실은 경제학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개념에 아주 잘 부합한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미국 달러로 무역을 하고 있을 때 나만 다른 국가의 통화로 무역을 하겠다고 하면 아마도 당신은 거래할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한번 모든 국가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무역을 하기 시작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무도 달러 이외의 통화로 무역을 하지 않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경제학의 내쉬 균형이다. 경제학에서의 내쉬 균형은 한번 균형점에 도달하면 외부로부터 아주 큰 충격이 작용하지 않는 한 계속 그 균형 상황이 유지된다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미국의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는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인 1945년 유럽과 아시아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에서 여전히 활발한 생산 활동이 가능한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당시 세계의 각국이 무역을 함에 있어 자신이 상품을 수출하고 받을 돈으로 유일한 경제 대국인 미국의 달러 이외의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니 자연히 미국의 달러는 세계가 사용하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그리고 8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세계는 여전히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경제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위상은 80년 전과는 매우 다르다.

미 달러 가치 유지 위해 G7정상회담 생겨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G5 재무장관 회의. 왼쪽부터 서독의 게르하 르트 슈톨텐베르크, 프랑스의 피에르 베레고부아, 미국의 제임스 A 베이커, 영국의 나이젤로슨, 일본의 다케시타 노보루 재무장관. [AP=연합뉴스]
사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모범적인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재정 적자가 없어야 한다. 만일 미국 정부가 많은 빚을 진다면 세계의 시민들이 저렇게 빚이 많은 나라가 발행한 통화를 믿고 쓸 수 있는지 의심할 것이다.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해서 부도가 나면 그 국가의 통화는 휴지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축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만일 미국의 상품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형편없다면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상품을 사지 않을 것이고, 더 나가 미국인들도 미국 제품을 사지 않고 다른 나라의 제품을 사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서 무역 적자가 늘어날 것이고 결국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 따라서 미국이 모범적인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미국의 공장들이 세계 제일의 제품을 생산해 내야 하고, 미국 정부는 알뜰하게 살림을 해서 재정 적자를 피해야 한다.

1945년부터 시작하여 약 20년간은 미국이 이런 모범적인 기축통화국이었다. 오히려 당시 미국과 세계 각국의 걱정은 미국의 모든 제품이 압도적으로 품질이 높아서 미국인들이 수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전 세계로 미국의 달러가 퍼지지 못할 가능성을 많이 걱정했다. 어쨌든 유럽이나 아시아가 미국 달러를 이용해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미국 달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이런 나라들에게 미국 달러를 차관으로 빌려주거나 아니면 그냥 원조해주었다. 그래서 유럽과 아시아 등지의 국가들은 미국에서 받거나 빌린 달러를 이용해서 무역할 수 있었다.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무역의 내쉬 균형이 이렇게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를 경제학에서는 안정적 내쉬 균형(stable 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외부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는 내쉬균형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970년쯤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미국 경제가 더 이상 모범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과 독일 등의 국가들을 선두로 해서 어느새 미국 제품보다 더 싸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국가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달러가 내쉬 균형이기는 하지만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불안정한 내쉬균형(unstable Nash Equilibrium)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때 미국 재무장관이 유럽과 일본 재무 담당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달러는 우리 미국의 돈이지만, 당신들의 문제입니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

즉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미국보다는 유럽과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일 것이므로 유럽과 일본 국가들이 미국 달러 가치를 알아서 높이라는 말이다. 적반하장격인 발언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갑자기 달러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 유럽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미국 달러의 가치가 하락해서 각국은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달러가 아니라면 당장 어느 나라의 돈으로 무역할지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즉 당시에는 금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이 무역을 했는데 대공황이 닥치면서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침체하여 더는 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계는 무역을 할 통화가 사라져서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결국 세계의 무역이 60%가 감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국은 영국 식민지 국가들과 독점적인 무역을 하고 프랑스는 프랑스 식민지 국가와 독점적인 무역을 하면서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과 일본의 경제가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이런 경제적 충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불안정한 내쉬 균형은 한번 깨지게 되면 큰 혼란을 피할 수 없다. 경제학 교과서는 태연하게 한 내쉬 균형이 무너지면 경제는 다른 내쉬 균형을 찾아서 언젠가는 수렴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 경제에서는 이런 균형의 이동 과정은 너무도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세계의 선진국들은 미국의 경제를 도와서 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G7이라는 경제 선진국들의 정상회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불안정한 내쉬 균형을 여러 국가가 힘을 모아서 억지로라도 유지해 보자는 취지이다.

일본이나 독일이 자기의 경제가 아닌 미국의 경제를 돕는다는 것이 괴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미국의 달러가치가 하락하여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리면 세계의 무역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분을 삼키고 미국을 도왔다. 특히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서는 일본과 독일의 제품에 가격과 품질에서 뒤처진 미국의 산업이 크게 약화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과 독일이 자신의 통화를 파격적으로 절상하여 스스로 수출을 줄이는 행동을 했다. 그 결과 놀랍게 성장하던 일본의 경제는 장기 침체에 들어가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는 플라자 합의 이후 많이 회복되어 여전히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물론 당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의 냉전이 심각했던 시기였으므로 미국의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은 아니었으므로 현재와는 다른 측면도 있었다.

한국, 실리 얻는 지혜로운 해결책 찾아야

이런 과정에서 한국은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로서 미국의 경제를 살릴 힘이 없기 때문에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요구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현재는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그리고 SK 같은 한국을 선도하는 기업들에게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사실 2008년의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은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 내었고, 그래서 미국의 경제는 다시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최근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달러를 이용한 무역 결제를 못하도록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달러는 미국이 아닌 당신들의 문제이니 이를 해결하라는 뻔뻔한 요구를 미국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요구를 한국이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였다. 한국이 G8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제 강국이 되었다는 것은 그에 맞는 희생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기축통화의 균형이 무너지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제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므로 남의 나라인 미국의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이 미국 경제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달러를 대체할 다른 기축통화의 후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국도 현재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도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경제 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다른 측면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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