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발아래에 의원들 있는 그곳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처럼 베를린의 독일 국회의사당 꼭대기에도 둥근 돔이 있다. 한데 여의도와 달리 이 돔은 전망대로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공격으로 앙상한 뼈대만 남았던 것을 독일 통일 이후인 1999년 이렇게 리노베이션했다. 올라가면 도시 전경은 물론 아래층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다. 국회의원을 말 그대로 ‘국민의 발아래’ 두는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국민의 발아래’ 국회의원을 두는 원조는 호주 국회의사당. 주변이 모두 공원인데, 그 잔디밭이 의사당 지붕으로 연결된다. 호주·독일과 한국을 비교하며 저자처럼 개탄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국회의사당이라는 건축 자체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품어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건축가인 저자가 특정 시기 다녀온 건축 기행문이 아니다. 20대 시절부터 지금껏 접하며 감동과 충격을 받은 현대 건축을 두고 ‘이상형 월드컵’을 벌인 결과에 가깝다. 그렇게 뽑은 건축이 독일 국회의사당을 포함해 30곳.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를 비롯해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만한 건축부터 21세기에 지어진 루브르 아부다비까지 비교적 폭넓은 시기를 아우른다.
건물마다 저자는 재료나 공법, 건축가의 생애 등 해박한 지식을 자유로이 풀어내면서 감동의 이유를 드러낸다. 알기 쉬운 비유를 쓰는 것도 강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의 속성은 불국사 다보탑·석가탑과 견주고, 중국 베이징 CCTV 본사 건물의 과시적 성격은 ‘21세기의 고인돌’로 부른다. 국제주의 양식이나 하이테크 건축 같은 사조도 어렵지 않게 본문에 풀어낸다. 사진도 많다. 건축물의 안팎 공간은 물론이고 본문에 언급된 그림 등도 풍부하게 실어 놓아 한층 이해가 쉽다.
무엇보다 건축마다 담긴 생각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저자가 건축물을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라고 하는 대로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생각은 종종 건축적인 제약을 만났을 때 더욱 빛난다. 뉴욕의 시티그룹 센터, 홍콩 HSBC 빌딩 등이 그 예다. 몸 고생 없이 눈과 머리로 다녀오는 건축 기행, 생각 기행 같은 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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