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국제전 비화 과정 면밀히 추적

김용출 2023. 6. 2. 2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커밍스 대표작… 43년 만에 완역 출간
“남한의 북침설 검토 가치 없다” 일축
“일제 때 누적된 사회 모순의 결과” 주장

한국전쟁의 기원 1, 2-1, 2-2/브루스 커밍스/김범 옮김/글항아리/1권 4만원, 2-1권 3만5000원, 2-2권 3만5000원

1950년 6월25일 새벽, 한반도의 서쪽 옹진반도부터 개성, 동두천, 포천, 춘천, 주문진에 이르기까지 38도선 전역에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대대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선전포고가 없는 전쟁, 통일이 아닌 분단이 고착화된 전쟁, 이데올로기 결전을 가속화시킨 전쟁,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전쟁, 잊힌 전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전쟁의 시작이었다.
권위 있는 존 킹 페어뱅크상과 퀸시 라이트상 두 개의 상을 석권했으면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 역사해석이란 비판을 받으며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브루스 커밍스(사진)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마침내 한국어로 완역 출간됐다. 1980년대 국내 출판사를 통해 제1권이 출간된 적은 있지만, 책 전체가 완역된 건 이번이 처음. 미국에서 제1권이 출간된 1981년으로부터 43년 만이고, 제2권이 나온 1990년으로부터 34년 만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로 수많은 이들에게서 찬사와 함께 비판도 받았던 책은, 미국의 세계 정책이 국제협조주의에서 냉전으로 본격적으로 선회하는 1947년을 분수령으로 두 권으로 나뉜다.

제1권은 1945년 해방 이후 첫해를 다루면서 전쟁의 기원으로서 한국 사회의 내적 모순을 주목한다. 즉, 해방 후 남쪽에 들어선 미군정은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서 친일파를 지배기구에 그대로 등용하면서 통일정부 대신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나아간 반면, 북한에선 만주에서 유격 투쟁을 벌인 항일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친일 세력을 청산하면서 갈등과 대립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브루스 커밍스/김범 옮김/글항아리/1권 4만원, 2-1권 3만5000원, 2-2권 3만5000원
커밍스는 그러면서 미군정이 박정희와 김석원, 김창룡 등 일제에 협력한 친일 군인이나 경찰을 다시 고용하기로 한 결정이 가장 압도적이고 우선적으로 중요했고, 1945년 해방 직후 결성된 인민위원회 역시 매우 중요했지만 거의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2권은 1947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의 세계정책과 한반도정책, 소련과 중국의 움직임 등을 비롯해 국제적 측면을 살피는 한편 한국 내부 상황과 한국전쟁 전후 상황을 촘촘하게 다룬다. 특히,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지를 세 개의 모자이크론을 통해 살피고, 미국이 봉쇄를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된 전말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와 관련, 커밍스는 소련과 북한이 은밀히 침공을 준비했다는 기획 남침설과 남침 유도설,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의 북침설이라는 세 가지 모자이크를 검토한다. 그는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전통주의 학설에 이의를 제기한 수정주의로 비판받은 것과 달리, 책에선 남한의 북침설에 대해 “검토할 가치가 없다”고 분명하게 일축하고 있었다.

“세 번째 모자이크는 검토할 가치가 거의 없다. 남한이 38도선 전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북한은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았다”(2-2권, 339쪽)

다만, 그는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중소 규모의 유격전과 국지전으로 1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주목해 남침유도 가능성에 흥미를 가졌고,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책임론 역시 강하게 주장했다.

책은 이어서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과정 역시 면밀하게 추적한다. 딘 에치슨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을 자국의 안보 강화와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미군과 유엔군을 신속히 참전시키면서도 제한전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에 대해 지나치게 내전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완역을 보면 내전적 성격을 띤 국제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소 두나라의 대립으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문제 제기하기 위해 내전적 성격을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발발과 전개 과정, 휴전까지 한국전쟁 전 과정에 걸쳐서 미국의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분단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1945년 이후 이 유서 깊은 나라를 경솔하고 분별없이 분단시킨 미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촉발한 분열에 나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는 사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국을 분단시킨 내 조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책임감을 느꼈다.”

커밍스의 책은 한국전쟁 자체보다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국제적인 구조와 동학, 한국 사회 내부의 구조와 갈등에 집중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원, 한국전쟁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아울러 세계적 차원의 냉전 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정책 간 관계나 ‘국가안보회의 문서 68’를 중심으로 미국 안보체제 형성과 한국전쟁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남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것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거점으로 다시 복원하는 역코스 정책과 연결시키는 등 전후 동아시아 질서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론 해방 이후 한국전쟁 때까지 한국 사회가 겪은 격동적 변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촘촘하게 그린 ‘시대의 세밀화’를 볼 수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각종 이슈와 논란에 지레 겁을 먹고 원전에 다가가지 못한 ‘지적 나약함’이나 ‘기만의 순결주의’를 다시 반성하게 만들지도. 원제는 Origins Of The Korean War.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