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은 사람이다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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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죽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징용에 차출되어 탈출할 때, 죽을 고비를 제대로 넘겼지 이제 나는 식민지인이 아니다! 기쁜 눈물이 마르기도 전 다시 6·25가 터진 거야.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집 '모래의 시', '목련을 읽는 순서', '장미도 월식을 하는가' 등 펴냄.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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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죽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징용에 차출되어 탈출할 때, 죽을 고비를 제대로 넘겼지 이제 나는 식민지인이 아니다! 기쁜 눈물이 마르기도 전 다시 6·25가 터진 거야. 이번엔 인민군에 끌려가게 되었지 산기슭에서 단체로 똥을 누고 있었지 상상이 되니? 숲 그늘마다 빼곡히 앉아 똥을 싸는 청년들… 내장까지 다 버리고 싶었지 외로움의 빛깔은 어스름 빛이란 걸 알았지 문득 눈앞에 옻나무가 환하게 서 있더구나 어스름이 등불로 바뀔 때도 있지 그게 뭘 의미하겠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옻나무 순을 꺾어 천천히 밑을 씻었단다 밑이 뜨거워진 건 옴이 내장을 적셨기 때문이지 내장인들 얼마나 놀랐겠니? 온몸이 불덩이였지 좁쌀 같은 발진이 혀와 동공을 뒤덮었을 때, 죽은 나를 버리고 그들은 떠났단다 그때 아비는 죽음과 내기를 한 거야 아비는 부활을 모르지만, 죽은 뒤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 마른 등불, 혹은 끈끈한 옻나무 진, 그 사이로 흐르는 하얀 목소리, 그 흰빛에 싸여 부활은 천천히 걸어왔단다
죽음에게 시비를 걸다가 호되게 당했지 불경스럽게 말하자면 나는 우리 고을에서 최초로 부활한 농부였으니까
-시집 ‘나는 죽은 사람이다’(걷는사람) 수록
△1958년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집 ‘모래의 시’, ‘목련을 읽는 순서’, ‘장미도 월식을 하는가’ 등 펴냄.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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