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묻지마 범죄' 추적…"약자만 노렸다"
지금부터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서 좀 더 짚어보겠습니다. 부산의 돌려차기 사건도 그렇고 이번에 정유정도 그렇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연관도, 계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먼저 신진 기자입니다.
[신진 기자]
비틀대며 길 걷던 남성.
돌멩이 든 주먹을 휘두릅니다.
상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남성의 주먹을 맞은 여성은 그대로 쓰러집니다.
역시 이 날 처음 봤습니다.
연락처를 주지 않자 때렸습니다.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사건들, 지난 1년 간 알려진 것만 열 건이 넘습니다.
혼자 사는 직장인, 밤길 걷는 학생들은 두렵습니다.
[박모 씨/직장인 : 그냥 길 가다가도 맞을 수 있겠구나…]
[천은정/고등학생 :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면 어떡하지?]
언제 닥칠지 모르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무섭습니다.
[김영현/고등학생 : 굳을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박모 씨/직장인 : 저항도 못 해볼 것 같고…피할 수 없으니까 너무 무서워요.]
이런 범죄를 막겠다는 제도와 장치는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이모 씨/직장인 : 여성 안심 귀갓길이 있기는 한데 어차피 어둡잖아요. 내가 찔리고 나서 신고될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여성들은 매일 밤 이를 악물고 뛰거나
[박모 씨/직장인 : 지하철 내려서 집에 갈 때 무조건 뛰어가요.]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찾습니다.
[이모 씨/직장인 : 호신술을 배우려고 시도한 적도 있고…]
그래도 범죄를 막는 건 불가능하고 피해자는 늘어납니다.
노점에서 과일을 사다 모르는 남성에게 맥주병으로 폭행 당한 여성.
[묻지마 범죄 피해자 : 작정을 했대요. 오늘 내가 한 사람을 죽여야겠다… 너무 힘껏 때려서 굉장히 무거운 건물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줄 알고…]
일은 그만뒀고, 끊임없는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묻지마 범죄 피해자 : 밖을 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남자들이 걸어가면 멈추게 되고…]
20년 전부터 이런 사건을 뭉뚱그려 '묻지마 범죄'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명확한 정의도, 통계도 없습니다.
[앵커]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포는 커지지만 분석은 그만큼 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정의 자체도 헷갈립니다. 뉴스룸은 최근 3년간 묻지마 범죄로 알려진 사건을 전문가와 함께 분석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묻지마 범죄에는 더 묻고 따져봐야 할 특징이 있었습니다.
정해성 기자입니다.
[정해성 기자]
< 2020년 5월 서울역 >
이 30대 남성이 노린 대상은 여성이었습니다.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뒤 밖으로 태연히 나갑니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선 여성 어깨를 부딪히고 밀어버립니다.
이 남성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불안해서 그랬다"고 진술했습니다.
일반인들은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고 '묻지마 범죄'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랜덤(무작위)이 아니란 겁니다. 표적을 선택해요. 자기보다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JTBC가 최근 3년 사이 '묻지마 범죄'로 알려진 사건 10건을 분석해 봤습니다.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2022년 3월 전북 군산시 >
8살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이 60대 남성은 뒤따라 갑니다.
아이 치아가 흔들릴 정도로 때렸습니다.
< 2021년 1월 경기 의정부시 >
한 10대가 전철에 서 있는 노인 목을 조르고 넘어뜨립니다.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묻지마 범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가해자들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현실불만형도 있고 정신질환형도 있고 은둔형도 있고. 타인에 대한 정서적 감정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점입니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도 관계 형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윤호/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교도소 내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죠. 어울리기 쉽지 않고.]
극심한 취업난과 경기 침체로 원하지 않는 고립과 은둔이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어쩌면 이유가 있었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 억제할 수도 있습니다.
(VJ : 박태용 / 영상그래픽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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