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19호실이 필요한 사람들
절대고독의 시간 필요하지 않을까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19호실로 가다’에 수록, 김승욱 옮김, 문예출판사)

이 단편소설은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매슈와 수전이 지식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벌어진 틈을 봉합하려 예의 바르게 노력하며 웃고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건지는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 수전은 자신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고 깨달았다. 결혼 후 12년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도. 그 집의 아무도 쓰지 않는 맨 꼭대기 방을 이제 ‘엄마의 방’이라 모든 가족이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다 곧 아이들이, 가정부가 드나들며 그 방은 또 다른 ‘가족실’이 되었다.
어디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를 꿈꾼 수전은 집을 나와 허름한 호텔의 19호실로 간다. 자신에게 ‘비이성적이라는 진단을 내린’ 남편 매슈에게 매일 아침 방값을 받아서. 19호실에서 수전이 무엇을 했나. 그녀는 눈을 감고 더러운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라는 이 반복적, 변주되는 문장은 하루 중 어느 시간,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의 열망과 황홀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절대적인 고독. 혼자 있는 시간.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고 수전에게도 그러했다.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자신으로서의 나를 느낄 수 있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는 19호실의 문을 두드리고, 탐정사무소 직원을 고용해 혼자 있는 수전의 시간과 장소를 흔들어 놓는다. 자신이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곳, 존재한다고 느끼는 유일한 방에서마저 수전의 평화는 깨져 버렸다. 이제 수전에게는 19호실에서의 네 시간만이, 그녀의 선택만이 남았다.
페미니즘, 인종 문제, 탈식민주의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었던 도리스 레싱은 이 단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수전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녀는 어딘가로 몰리고 있었다고. 수전을 내내 몰아붙인 것은 무엇이었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점검하듯 자주 짚어보고 확인하고 싶다. 나는 혼자였다, 당신은 혼자였다, 우리는 혼자였다. 이렇게 느끼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두 주체성을 가진, 자신만의 온전한 삶이 있기를 바라기에.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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