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국가대표 에이스’의 무게감 잊은 김광현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2023. 6. 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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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궁정홍'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궁정홍(29)은 2013년 열린 제67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때 마산고를 준우승으로 이끈 왼손 투수다.

사실 10년 전 황금사자기 때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투수는 궁정홍이 아니라 대구상원고 이수민(28)이었다.

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마산고에 궁정홍이라는 에이스가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야구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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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궁정홍’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궁정홍(29)은 2013년 열린 제67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때 마산고를 준우승으로 이끈 왼손 투수다. 궁정홍은 빠른 공 최고 속도가 시속 135km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이 대회 1회전부터 8강전까지 세 경기를 치르는 동안 2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10년 전 황금사자기 때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투수는 궁정홍이 아니라 대구상원고 이수민(28)이었다. 이수민은 이 대회 16강전에서 북일고를 상대로 9와 3분의 2이닝 동안 178개의 공을 던졌다. ‘혹사가 너무 심하다’는 우려가 나온 게 당연한 일. 궁정홍도 사정이 비슷했다. 궁정홍은 2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공을 348개 던졌다. 궁정홍에게 혹사당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자님, 저를 포함해 우리 팀 선수 대부분에게는 바로 지금이 우리 야구 인생 최고 전성기예요. 나중이 없는 친구가 더 많아요. 그런데 나중에 잘 던져야 하니까 지금 던지지 말라고요? 그건 운동장에서 같이 땀 흘린 동료들을 버리라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팀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또 마운드에 오를 겁니다.”

이 대답을 듣고 ‘에이스’라는 세 글자가 절로 떠올랐다. 에이스는 원래 적군 비행기를 5대 이상 격추한 공군 파일럿을 일컫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인류 역사상 적기를 가장 많이(352대) 떨어뜨린 에리히 하르트만(1922∼1993)은 이 격추 기록보다 자신과 함께 출격한 요기(僚機·wingman)를 한 번도 잃지 않은 걸 더 자랑스러워했다. 에이스는 팀원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김광현(35·SSG)도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국가대표팀 에이스라고 부를 만하다. 자신이 선발 투수로 나선 한일전이 끝나고 술집으로 향하면서 안산공고 후배 정철원(24·두산)을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탓에 정철원은 개인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기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제아’라는 낙인에 시달리게 됐다.

김광현은 2019 프리미어12 때만 해도 배팅 볼 투수와 불펜 포수들에게 사비로 용돈을 건넬 만큼 팀 안팎을 두루두루 챙기던 선수였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마지막 출전이던 이번 대회 때는 후배에게 나쁜 물을 들였다는 오명만 남기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광현이기에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아, 그래서 궁정홍은 어떻게 됐을까. 궁정홍은 황금사자기에 이어 그해 봉황기에서도 결승전 선발을 맡았지만 끝내 모교에 우승기를 선물하지는 못했다. 궁정홍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면 받은 건 물론이고 야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다. 만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야구 인생의 막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마산고에 궁정홍이라는 에이스가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야구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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