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휴일 문 닫는 ‘소화병원’
작을 소(小), 꽃 화(花). 서울 용산구 서계동, 서울역 가까이에 있는 소화병원은 말 그대로 작은 꽃들을 위한 병원이다. 77년 역사를 쌓은 국내 첫 어린이전문병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6년 서울 태평로에서 소화의원으로 출발해 1966년 병원으로 커졌고 소아과 전문병원 지정을 받았다. 1981년 지금 자리로 옮기고 나서 종합병원으로 승격했고, 그 후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어린이 외래 환자를 가장 많이 받는 병원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전국에서 몰려온 아픈 아이들로 밤낮없이 붐벼 병원인지 시장통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다 저출생 여파로 어린이 환자가 급감하면서 소화병원은 침체·쇠락기를 맞았고 2015년에 다시 병원급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하지만 그런 위기에도 ‘손쉽게 돈이 되는’ 항목에 눈 돌리지 않고 어린이 진료에만 매진해왔다. 아이들 진료를 책임지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요즘 소화병원은 ‘오픈 런’이 벌어지는 곳으로 다시 유명해졌다. 병원 문 열기 전 이른 아침부터 번호표를 뽑고 줄 서서 기다리고 토·일요일에도 환자가 몰려든다. 최근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이 심각해진 와중에 주 7일 어린이 진료를 하는 ‘희귀 병원’이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희망이던 소화병원이 이달부터 휴일 진료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지금까지는 토·일요일과 공휴일 오전·오후 진료를 했는데 앞으로는 토요일 오전 진료만 남긴다는 것이다. 인력 부족이 원인이다. 의사 한 명이 그만둬 주말 병원을 운영할 여력이 없게 됐다고 한다. 병원 측은 ‘한시적 중단’이라고 했지만 어린이 병원 의사 충원이 쉽지 않아 언제 재개될지 모를 일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 병원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진 병원마저 의사가 부족해 휴일 가동을 멈춘 것이 국내 소아청소년과 진료의 현주소다. 동네 소아청소년과가 줄줄이 문 닫고 대학병원까지 진료를 접고 있는 어린이 의료체계 붕괴 위기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소화병원이 겪는 고통을 방치하면 안 된다. 휴일에 아픈 어린이가 응급실을 헤매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정부가 ‘작은 꽃’들을 지켜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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