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5월, 돌아온 김남국 6월은…? [여의(汝矣)도록(圖錄)]

최우석 2023. 6. 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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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작지만 넓은 섬이다. 규모는 작은 섬(여의방죽 안쪽 넓이 기준 2.9㎢)이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대다수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의도에 거점을 튼 뒤 여의주(如意珠)를 거머쥐었고, 숱한 정치지도자가 이곳에서 명멸했다. 그래서일까.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의 유래는 ‘넓은 섬’이라고 한다. 여의도에서 펼쳐지는 정치인의 입과 동선에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서다. 세계일보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모멘텀이 될 순간을 포착해 【여의(汝矣)도록(圖錄)】 코너로 연재한다.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지난 5월 14일 국회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의원은 출근 후 페이스북을 통해 탈당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장면 하나

지난달 14일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사를 밝혔다. 조선일보가 김 의원이 가상화폐 지갑에 위믹스 코인 80만여 개를 보유했다는 보도를 한 지 9일 만이다. 김 의원에게는 잔인한 5월의 시작이었다. 이후 김 의원은 부실한 해명과 안일한 대처를 거듭했고, 결국 탈당으로 방점을 찍었다.

논란이 된지 사흘만에 김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코인 논란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한다. 가상화폐 투자금은 LG디스플레이 주식 매각대금으로 마련했고, 현금과 가상화폐 이체 내역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 잔액은 9억1000여만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사과는 없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돈봉투 의혹 등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기득권을 상대할 무기 중 하나인 도덕성이 무뎌지고 있었고 당 안팎으로 쇄신요구가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의원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러나 김 의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는 해명 하루 뒤인 지난달 9일에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김 의원의 첫 번째 판단 착오.

결정적인 판단미스는 지난달 14일에 나왔다. 사과문 발표 후 김 의원은 "당분간은 당의 조사에 적극 임하고, 혹시 추가로 요구하는 자료가 더 있다면 성실히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김병기 수석 사무부총장을 필두로 한 진상조사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돈봉투, 가상화폐 등을 비롯해 민주당의 쇄신을 논하기 위한 쇄신의원총회가 시작되기 전 김 의원은 돌연 탈당 의사를 밝혔다. 결국 당 차원의 진상조사는 물건너 갔다.

김 의원의 탈당 후 열린 민주당 쇄신의총은 그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박용진 의원은 “당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중에 이렇게 무책임하게 탈당을 선언해 버리고 당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당을 더 궁지로 모는 그런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화난다고 했다"고 격분했다. 자료제출이 부실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쇄신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거래소 전자지갑, 거래코인 공모수입 등 거래 현황과 관련해서는 관련된 요청 자료 제출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의원은 종적을 감췄다.

가상자산 투기 의혹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지난 5월 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지역사무소에서 나오고 있다. 안산=뉴스1
#.장면 둘

잠행을 이어가던 김 의원의 행적이 밝혀진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였다. 보수 성향 유튜브 '따따부따' 진행자인 배승희 변호사는 지난달 18일 경기 가평휴게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김 의원이 한 남성과 자동차 뒤에 서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가 검찰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거래 내역을 받아간 날로 추정된다.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김 의원에 대한 전 방위적인 압박은 더욱 심화했다. 지난달 8일 김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한 국민의힘은 지난달 16일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 단장인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가난한 척, 착한 척했던 그의 이중성을 반드시 파헤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돈봉투 의혹과 민주당의 윤리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겠다는 포석이다.

민주당도 지난달 17일 김 의원을 윤리위에 뒤늦게 제소했다. 국민의힘이 김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한 지 9일이 지난 뒤다. 이 대표의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라고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이 전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지도부의 ‘늑장대응’이 당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 대표도 더는 감쌀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대표 최측근인 ‘7인회’ 중 한 명이자 중앙대 후배인 김 의원이었지만 총선 승리라는 민주당의 최우선 목표를 넘을 수는 없었다.

민주당 지도부마저 돌아서자 김 의원에 대한 후속조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달 25일 ‘김남국 방지법’(국회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68명에 찬성 268명, 국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69명에 찬성 269명으로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민주당 위철환 윤리심판원장도 지난달 29일 MBC 라디오에 나와 "(김 의원이) 국회의원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 윤리심판원장까지 비판에 가세하면서 김 의원은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지난 5월 31일 국회 의원 사무실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장면 셋

지난달 31일 김 의원이 다시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탈당 선언 17일 만이다. 오전 내내 사무실에 있던 김 의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자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윤리위에 출석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김 의원은 ”윤리특위에서 결정한 절차에 따라 성실하게 소명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자진사퇴를 하겠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특히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 세탁 의혹과 관련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업비트 측에서 수상한 거래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질문에는 단호한 모습까지 보였다. 김 의원은 1분 남짓 언론에 노출됐다. 자금 세탁 의혹을 반박한 것 외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이런 김 의원의 짧은 등장이 상황을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김 의원이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당 안팎에서는 여전히 김 의원을 코너로 몰아넣고 있었다.

#.다음 장면은?

2일 김 의원은 문자로 일부 매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김 의원이 다시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문자에서 김의원은 업비트가 공식 입장을 내놓고 김 의원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허위 사실을 기반으로 한 보도가 방치되는 점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한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과 민·형사상 조치를 취해나갈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윤리위 자문위원단의 조사를 비롯해 수사기관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성실히 소명해나가겠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김 의원과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여러 사실을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앞으로 김 의원이 소명해나갈 사실이 그에게 새로운 6월을 만들어 줄지는 미지수다. 가상화폐 거래 자료는 방대하고 쉽게 모든 의문을 풀 수는 없다. 그 사이 김 의원을 향한 비판 여론은 점점 더 거세질 공산이 크다.

김 의원이 자진사퇴를 하지 않는다면 제명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현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국회 차원에서 의원을 제명한 건 헌정사상 1979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1명뿐이었다.

잠행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김 의원은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들었다. 언론을 상대로 민·형사상 조치까지 언급하며 강경 모드로 돌변했다.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 의원의 정치적 운명을 건 6월이 시작됐다.

최우석 기자 d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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