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장벽은 중국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6. 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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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통해 中 이면 고찰한 英역사학자
줄리아 로벨

만리장성은 중국의 상징이자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실제보다 많이 과장되어 있다.

측정해보면 성벽이라 할 수 있는 모양을 갖춘 구간은 '만리'엔 턱도 없이 못 미친다. 하나로 죽 이어져 있지도 않다. 게다가 지금 벽돌로 만든 성벽이 남아 있는 것은 명나라 때부터 일부 구간만 보수한 결과다. 우리가 관광하러 가서 사진 찍고 돌아오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장성일 뿐 고대 중국과는 별 상관도 없다. 근현대에 들어와 중국인들은 서구에 밀린 자존심 회복을 위해 만리장성을 과장했고 세계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측면이 강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중국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줄리아 로벨은 만리장성을 통해 중국 이면을 추적한다. 그는 장성은 역사적 유물일 뿐 아니라 중국의 어두운 면을 감추는 장벽이라고 말한다. 기원전 200년께 진시황제가 흙으로 쌓아올리기 시작한 만리장성은 그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많다. 로벨은 중화사상에 빠져 완전하지도 못한 성벽을 쌓은 것은 오히려 그들의 나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장성은 중국을 읽는 거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교역이나 외교를 포기한 채 만리장성에서 위안을 삼고, 지금 그것을 미화하고 있는 중국인들 세계관이 만리장성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장성에 무관심하던 중국인들이 성벽에 관심을 보이고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어떤 요구를 채우기 위한, 완전히 도구적인 관점 때문이었다. 즉 실패한 혁명, 내전, 기근, 외침, 질식할 듯이 광범위한 빈곤 등 20세기의 힘든 시절을 견뎌내고 민족적 자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중국의 과거에서 위대함의 상징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로벨은 심지어 구습 타파와 중국 근대화를 부르짖은 쑨원마저도 만리장성 신화 만들기에 앞장섰다고 말한다.

"쑨원은 중국의 문을 활짝 열고 근대 서구의 기술과 투자를 받아들이자고 제안하면서도 중국인들의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쑨원은 민족적 자존심을 충분히 진작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삼차원적인 상징물을 찾았다. 중국의 전통이 천재성과 역동성을 발휘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이면서도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 만큼 모호한 것이어야 했다. 또 특정한 문제를 연상시켜서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이 대상으로 만리장성은 딱이었다. 하지만 만리장성 신화는 중국에 독이 된 측면도 있다. 여기저기 장성을 쌓아놓고 그들만의 아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현대 중국은 21세기 국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다. 성벽 안에서 소수민족이나 당 지도부와 생각이 다른 세력을 탄압하고 외국 포털을 비롯한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벽돌로 만든 장성 대신 인터넷 방화벽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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