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감찰거부 최종 결정…감사원과 정면충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의 직무감찰에 응하지 않기로 2일 최종 결정했다. 이에 감사원은 “선관위도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라고 즉각 반발하면서, 감사를 거부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뜻을 내비쳤다. 헌법상 독립기구(선관위)와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는 대통령 소속 기관(감사원)이 직무감찰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선관위는 이날 과천 청사에서 노태악 선관위원장 주재로 위원회의를 연 뒤 보도자료를 내고 “(감사원) 직무감찰에 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관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그동안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헌법 제97조를 근거로 삼았다. 이 조항은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 하에 감사원을 둔다’는 내용이다. 즉, 감사원의 직무감찰 범위를 ‘행정기관 및 공무원’으로 명시한 것이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행정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선관위의 주장이다. 선관위는 또 ‘선관위 소속 공무원의 인사 사무에 대한 감사는 선관위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총장이 실시한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17조 2항도 근거로 댔다. 선관위는 같은 이유로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 때 불거진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한 바 있다.
지난 5월31일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의혹 관련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감사원은 즉시 반박했다. 감사원은 선관위 결정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선관위가 담당하는 선거 관리·집행 사무 등은 기본적으로 행정사무에 해당하고 선관위는 선거 등에 관한 행정기관이므로 감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국회·법원·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감사원이 감찰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감사원법 제24조를 근거로 들어, 선관위 직무감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감사활동을 방해·거부할 경우 감사원법 제51조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감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면 처벌하도록 한 감사원법 조항을 활용해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감사원은 또한 2019년에도 경력 경쟁채용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선관위 공무원에 대해 직무상 책임을 물어 징계요구를 한 사례도 들었다. 이에 선관위는 당시 감사는 회계검사에서 파생된 사안이지, 직무감찰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헌법학자들은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이라고 볼 수 없다는 선관위 주장에 일단 힘을 실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은 행정부 공무원을 직무감찰하는 것이지, 행정부 밖의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된 선관위 공무원은 감찰할 수 없다”며 “선관위 공무원은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원법을 헌법에 반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무감찰은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것처럼 될 수 있다”며 “선관위도 독립된 헌법기관이고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감사원을 앞세워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법원·헌법재판소’를 감사원의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감사원법 조항 또한 “삼권 분립을 강조하기 위한 예시 규정일 뿐”이라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선관위를 감시하고 투명성을 높일 제도적 장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썩을 대로 썩은 선관위가 아직도 독립성을 부르짖는다”고 비판하고 “이런 선관위를 엄중히 꾸짖고 채용 비리를 철저히 검증할 수단은 국회 국정조사와 수사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국회의 국정조사,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검찰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선관위 전수조사에서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추가로 드러난 퇴직 공무원 4명의 자녀가 모두 부친 소속 근무지에 경력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확인한 자료를 보면, 인천시선관위 2명, 충북도선관위 1명, 충남도선관위 1명 등 모두 4명의 퇴직 공무원 자녀가 각각 부친이 근무하는 광역시·도 선관위에 경력채용됐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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